💉포토카드의 기쁨과 슬픔(1) | 포카판 입성, 후회하냐고요?

매주 수요일은 덕질 경험기부터 음악/영화/웹툰 리뷰에 이르기까지, 저의 동료들이 쓰는 아티클이 실립니다. 오늘은 '포토카드의 기쁨과 슬픔'. nn년째 SM엔터 덕질 외길을 고집해 온 핑크블러드의 덕질 에세이에요. 4주에 한 번 연재됩니다.

2020년 어느 날 새삼 덕통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기존 덕질과 달리 3세대 돌의 덕질에서 제일 새롭고 놀라운 건 바로 ‘포토카드’(=포카)였다. 이전 세대 최애(=가장 좋아하는 멤버)의 그룹 앨범에도 포카는 있었으나 무관심했다. 최애의 포카가 나오면 좋지만 뭐 안 나와도 상관없었다. 그때는 포카를 따로 보관해야 한다는 개념조차 없었으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포카는 요즘 돌판 덕질의 중심이자, 돌덕들의 욕망이 향하는 가장 대표적인 굿즈였다! 일단 난 오랫동안 최애 포카를 뽑자고 앨범을 수십 장씩 사는 문화를 몰랐고, 알고 나서도 이해가 잘 안 됐다. 덕질에서도 내 지갑 사정과 수고로움을 먼저 생각하고 효율을 계산하곤 했던 나로서는… 말이다...

근데 궁금했다. 도대체 뭐길래 사람들이 저렇게 진심일까? 상당히 괴로워하는 것 같은데 동시에 꽤나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재미를 나만 놓친다면 왠지 억울할 것 같았다. 또, ‘내 최애 내 손으로 뽑기’가 그렇게 짜릿하다는데 나도 그 기분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이게 바로 내가 포카판에 발을 들인 이유다.

후회하느냐고? 가끔 한다. ‘최애를 뽑고 말겠어!’라며 앨범을 여러 장 주문해놓고, 원하는 포카도 얻지 못한 채 속속 쌓여가는 앨범을 볼 때. 또 다음 달 명세서 두려운 줄 모르고 일단 긁었던 카드값이 코앞에 다가올 때. 어쩌면 최애가 나올지 말지 기약 없는 앨범을 사느니, 그냥 포카만 사는 게 더 싸고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 

하지만 이게 포카 수집을 멈추게 할 만큼 치명적인 이유는 되지 못한다. 앨범 쌓아둘 데가 없다? 그럼 종류별로 한 장씩만 사면 된다(이게 뭔 소린가 싶겠지만 이 판에서 이 정도면 ‘가성비 덕질’ 한다는 소리 듣는다). 중고 장터나 트위터에서 최애 포카 교환을 구하거나, 내게 온 포카를 판매해서 소진하는 방법도 있다. 여러 방법으로 쌓이는 앨범과 안타까운 마음을 어느 정도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다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 내 돌(=남돌이라 위험도가 조금 더 높다… 이해하신다면 같이 웁시다 ㅠㅠ)이 무슨 일을 저지를 지는 알 수가 없다. 강제 탈덕할 수 있다는 불안함을 늘 조금쯤 안고 산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내 돌이 좋고, 관심이 가고, 더 알고 싶고, 매력을 끝없이 찾아내고 싶다. 이왕이면 그(들)의 좋은 점을 본받아 내 삶에도 적용하고 싶다. 그래서 이번에도 새 앨범 공구(=공동구매)를 몇 개 탔다. 최애 포카야, 이번엔 길을 잃지 말고 잘 찾아오렴!

첫 포카를 뽑았다! 

입덕 후 바로 포토카드의 세계로 들어가진 않았다. 늦덕이라 밀린 음악, 무대, 자컨(소속사에서 기획·제작하는 자체 제작 콘텐츠), 팬 영상 등을 복습하기 바빴다. 나날이 마음이 깊어지니 그제야 돈 쓸 데를 찾게 됐다. 앨범 모으기가 출발이었다. 

평소 ‘재고포비아’라는 악명을 지니고 있을 만큼 발매 당시에만 출고하고 재고를 거의 남겨두지 않는 SM의 특성상 나온 지 불과 2~3년 된 앨범도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웠다. 온·오프라인 매장을 샅샅이 뒤지다 우연히 원하는 앨범을 발견하면 뛸 듯이 기뻤다. 

내 간절함과 무관하게 최애는 통 안 나왔다. 이 짓을 한 지 한 달쯤 돼서야 간신히 손에 쥘 수 있었다. 그것도 정확히는 포토카드가 아니라 다른 구성품(*액세스 카드)이었지만 내 새끼 얼굴이 박혀 있다는 것만으로 감동이었다. 냉정한 랜덤의 세계에서 내 최애가 나온다는 건 예상보다 더 반가웠다!

정확한 날짜는 몰라도 최애를 뽑았을 때의 그 벅참(들)은 생생하다. 빗속을 뚫고 산 데뷔 앨범에서 최애가 뾱~!하고 나왔던 날, 혹은 1/23이라는 극악무도한 확률을 뚫고 갈망 포카를 뽑았던 날, 혹은 머글(=덕후가 아닌) 친구들 앞에서 앨범을 뜯었는데 최애가 나와서 기쁨을 나눴던 날, 혹은 같은 앨범 두 장 시켰는데 최애가 연달아 두 번 나온 날, 혹은 다른 버전 앨범을 뜯었는데 열어보는 족족 최애가 나타났던 날 등등. 어떤 때는 이 기쁨을 혼자 간직하기 아까워서 친한 친구들에게 동네방네 알린 적도 있다.

앨범을 까 보기 전엔 알 수 없다는 그 또렷한 막막함 속에서 나는 나름대로 규칙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초반에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사준 앨범에서 최애가 더 자주 나와서 대리 구매를 부탁해볼까 했던 게 첫 번째다. 특정 사이트나 공구 시에, 밖이 아니라 집에서, 나 혼자가 아니라 엄마랑 같이 앨범깡을 했을 때 최애가 더 자주 나오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어쩌면 '최애 포카 총량의 법칙'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의심도 들었다. 어떤 앨범에서는 진짜 한 장도 나오기 어려웠는데 다음 앨범에서는 어렵지 않게 전종을 모았기 때문에... 구매한 앨범이 수십 장에 이르고, 판매처도 다양해진 요즘엔 그런 규칙이 점점 희미해져서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는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최애가 컴백한다. 지난 앨범에서는 포카가 거의 기근이다시피 했는데 이번엔 다르리라고 믿고 싶다. 공구 탄 앨범 중에서 최애 포카가, 이왕이면 2장 이상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하겠다. | 핑크블러드 

※ 수요일 코너 안내 (이제부터 매주!)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4명의 필자들이 1주일 씩 돌아가며 글을 씁니다. 월 1회 연재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사정에 따라 주기나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답니다~;;;)

1) 핑크블러드의 덕질 에세이: 요즘 덕질은 '포카'가 핵심인데요, 이걸로 도대체 뭘 어떻게 할런지보다, 이 판에 막 빠져든 사람의 기쁨과 슬픔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저는 엄청 궁금했어요. ㅋㅋ 

2) 랜디 서의 음악 리뷰: '시사인'과 '위버스 매거진', '아이돌로지'에 글을 쓰고, 저와는 '360리뷰'를 진행한 랜디 서 평론가가 주목하는 싱글/앨범에 대한 리뷰입니다. 좀 더 입체적으로 음악을 감상할 계기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3) 임희윤의 북유럽 음악: 동아일보 문화부의 임희윤 기자가 쓰는 북유럽 음악에 대한 칼럼입니다. 대중적이지 않은 북유럽의 메탈이나 재즈, 팝을 가지고 장르부터 앨범 아트웍에 이르는 광범위한 얘기를 합니다. 어디가서 아는 체 하기 좋은 내용이 아닐까(ㅋㅋ) 싶네요. 

4) 강남규의 영화 이야기: <지금은 없는 시민>의 저자 강남규님이 쓰는 영화/드라마/웹툰 리뷰입니다. 특히 저는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써달라고 졸랐습니다. ㅎㅎ 크리에이터든 비즈니스든 혹은 콘텐츠든 뭐가 됐든 결국 함께 사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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