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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포켓몬 덕후의 조금 울컥하고, 많이 다정한 기록

『포켓몬 생태도감』을 읽고 - 황동만

2026.07.16 | 조회 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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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SST

황동만님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포켓몬 덕후는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군요. 재미있는 글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록과 사회에 글을 보내주세요. 여러분의 경험과 통찰을 1,000명이 넘는 독자와 나눠주세요. 


올해는 포켓몬스터 30주년인 해라, 덕후들에게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이에 맞춰 포켓몬 빵의 초판 띠부씰 100종이 다시 출시되었고, 역시 빵은 남편 주고 띠부씰만 챙겨 모으는 중이다. 그런데 어렵게 구한 스티커를 아기에게 뺏겨 유치하게 짜증을 내다보면 문득 현타가 온다.

내가 포켓몬에 빠진 중학생이던 1999, SBS에서 만화영화가 방영되면서였다. 하라는 공부는 하고 동생과 띠부씰을 모았고, 2002 한글판 게임이 나온 뒤로는 게임 하느라 바빴다. 대학생 때까지도 정신연령이 낮은 덕에 몰래몰래 그러고 놀았다. 그러니 올해 30주년 맞이 포켓몬 생태도감 한국판 출간 소식을 접했을 , 소개도 읽지 않고 주문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포켓몬도감’. 단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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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생태도감』과 사은품으로 받은 포켓몬 카드. 최애 포켓몬(잠만보와 망나뇽) 2마리나 받다니!! 쵸럭키

 

사실, 포켓몬스터 게임 안에는포켓몬 도감이라는 것이 있다. 새로운 포켓몬을 만나거나 잡으면, 포켓몬의 이름과 생김새와 짧은 설명이 도감에 자동으로 채워지는 도구다. 그리고 저마다 고유한 번호가 붙는다. 1 이상해씨, 2 이상해풀, 3 이상해꽃, 4 파이리, 5 리자드, 6 리자몽…. 번호는 게임을 만든 사람들이 미리 정해 것이라 세계 어디서나 똑같고, 한번 정해진 뒤로는 바뀌지 않는다. 이상해씨는 언제나 1번이다. 나는 예전에 번호를 순서대로 외우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인데, 그때는 그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25번이 피카츄라는 것은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세대를 거듭하며 메가진화나 리전폼, 다이맥스 같은 낯선 변화들이 쏟아지며, 포켓몬은 어느덧 1,000종이 넘는 대가족이 되어버렸다.

비록 숫자는 감당 만큼 불어났어도, 명색이 '도감'이니 당연히 내가 알던 번호 순서대로 채워져 있어 익숙할 알았다. 그런데 목차를 펴자, 번호가 없었다. 책은 포켓몬을 번호가 아니라, ‘포켓몬의 모습과 형태’, ‘포켓몬의 생활’, ‘포켓몬의 관계’, ‘포켓몬의 이동 능력으로 구분해 두었다. 번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지로 묶여 있었다.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장부터 어긋났다

알던 것을 다시 만나는 일

그런데 곰곰이 보면, 책이 알려 주는 개별 정보는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포켓몬 하나하나의 습성은 게임 도감에도 적혀 있고, 공식 사이트에도 나무위키 등에도 공개돼 있다. 이를테면 잠만보가 매일 400kg 먹이를 먹고,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졸다가 자면서도 계속 먹는다는 이야기 같은 .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찾아볼 있는 정보다.

그러니까 책이 일은알려 주기 아니다. 흩어져 있던 것을다시 묶기. 낱낱으로 알려져 있던 습성들을, 먹는 방식이며 사는 곳이며 서로 맺는 관계라는 새로운 기준으로 한데 모아 놓았다. 그러자 익숙했던 포켓몬들 사이에서 몰랐던 결이 드러났다. 새로 알게 것들도 많았지만, 그보다 이미 알던 것들이 전혀 다르게 읽히는 편이 놀라웠다.

예를 들면, 스콜피는 건조한 토지에 살며 1년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기다릴 있고, 또도가스는 대기 중의 오염된 성분을 흡수하고 배설물 대신 깨끗한 공기를 내보낸다. 어떤 포켓몬들은 태양 빛에서 에너지를 얻어 먹이를 찾지 않아도 되고, 먹이를 몸에 저장하거나 나무 구멍 등에 보관해 생존하는 포켓몬들도 있다. 포켓몬의 유형을 먹이를 구하는 방식으로 나누기도 하고, 포켓몬의 개체 수가 늘거나 주는 것도 천적이 많은가, 자기 몫의 먹이가 충분한가에 따라 다름을 제시하기도 한다. 따로 알고 있을 때는 그저 각자의 설정이던 것들이, 기준 아래 모이자 서로 견주어지고 설명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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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생태도감』 32-33. '먹이를 구하기 위한 여러 가지 연구'. 물을 뿜어 먹이를 떨어뜨리고, 절벽에 거꾸로 매달리고, 불똥을 흩뿌려 튀어나오게 하고…. 인간이나 포켓몬이나 먹고 사는 힘들구나

 

같은 것을 모아 두더라도 어떤 기준으로 묶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태어난다. 기록학자 조앤 슈워츠와 테리 쿡은 점을 이렇게 짚었다. “아카이브를 통해 과거는 통제된다. 어떤 이야기는 특권을 얻고, 어떤 이야기는 주변으로 밀려난다.”(각주1) 무엇을 앞에 세우고 무엇을 뒤로 보낼지 정하는 순간, 기록을 정리하는 사람은 이미 하나의 이야기를 빚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이론에만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미국 아키비스트협회(SAA) 만든 아카이브 자료기술표준(DACS)마저 기록의 집합을 식별하는 일을 두고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아닌지를 선언하는 자리라고 적어 놓았다.(각주2) 『포켓몬 생태도감』은 말을 아주 귀엽고 정확하게 실연해 보인 셈이다.

박사가 포켓몬을 연구하는 법

책을 만든 사람의 이력에서 한참 눈을 없었다. 기획을 맡은 요네하라 요시나리는 동물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로, 슴새나 알바트로스 같은 바닷새에 기록계를 매달아 움직임을 계측하는바이오로깅이라는 방법으로 무인도까지 가서 새를 연구했다. 그러다 2019년부터 주식회사 포켓몬으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각주3)

진짜 살아 있는 새에게 기록장치를 붙여 데이터를 뽑던 사람이, 집요한 방법을 통째로 들고 와서 있지도 않은 가상 생물의 생태를 따진 것이다. 학위와 연구 경력을, 좋아하는 세계 하나를 끝까지 밝혀 보는 아낌없이 쏟아붓는 진지함. 나는 그게 어쩐지 뭉클하고, 조금 부러웠다.

생각해 보면 포켓몬이라는 자체가 그런 마음에서 태어났다. 초기 기획자 타지리 사토시는 어릴 곤충을 채집하던 아이였는데, 고향이 도시로 변하며 더는 곤충을 잡을 없게 되자 가상의 생물을 만들어 세상과 나눔으로써 시절을 되찾으려 했다고 한다.(각주 4) 사라진 것을 어떻게든 남기고, 좋아하는 것을 이해해 두려는 마음. 채집하고, 기록하고, 다시 묶어 읽는 일은 결국 같은 마음의 다른 얼굴인지도 모른다.

완전하게 모으거나, 다르게 읽거나

올해 8월에는 이와 결이 정반대인 책도 나온다. 바로 『포켓몬 공식 전국도감 1996-2026』이다. 1996 탄생부터 2026 현재까지 등장한 1025종의 포켓몬을 빠짐없이 담아냈다고 한다. 출판사가 내건 홍보 카피는 “’완전성보존성 겸비한 공식 도감”. 기록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단어 앞에서 잠깐 멈칫할 수밖에 없다. 완전하게 모으는 것과보존하여 오래 남기는 , 그것이야말로 아카이브의 세계가 평생을 좇으면서도 좀처럼 이루지 못하는 숙원이기 때문이다. 한쪽은 모든 모았다 선언하고, 다른 한쪽은이미 가진 것을 어떻게 다시 읽을 것인가 말한다. 포켓몬 30주년인 올해, 수집을 위한모으는 도감 성찰을 위한다시 읽는 도감 나란히 만들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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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30 역사를 담은 『포켓몬 공식 전국도감 1996-2026』이 2026 8 7 일본에서 발매된다. B5, 448p. 컬러 구성. 구매링크: amzn.to/4ukgeWU

 

사실 나는 모으는 도감 주는 맹목적인 열망을 누구보다 안다. 2016, 포켓몬 20주년 기념 나노블럭 한정판이 나왔을 나는 삼십대였다. 피카츄, 파이리, 이상해씨, 꼬부기. 개를 모으면 설계도를 받을 있다는 구성 앞에서, 나는 기어이 현해탄을 건넜다. 가족들의 계속되는 질타에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해서 챙겨 놓고도, 지금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본가 어딘가에 처박혀 있거나, 어딘가로 영영 사라졌을 것이다.

모으는 일이 내게 남긴 것은 정작 아무것도 없었다. 기를 쓰고 손에 쥐었던 실물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졌는데, 역설적이게도 다시 읽는 일은 사라진 것들을 도로 데려왔다. 『포켓몬 생태도감』의포켓몬의 관계같은 장을 넘기다 보면 잊은 알았던 풍경들이 슬그머니 되돌아온다. 중학생 동생과 나눠 갖던 띠부씰, 새로운 나오면 서로 갖겠다고 투닥대던 어느 날의 오후. 미뇽을 망나뇽으로 진화시키겠다고 키보드를 두드리던 지독한 근성 같은 것들. 

기록이란 무엇을 남겼는가의 문제만은 아니다. 남긴 것을 어떤 기준으로 묶어 두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같은 것을 남겨도 다르게 묶으면 다른 것이 보이고, 다른 것이 떠오른다. 책이 나에게 돌려준 것도 새로운 지식이 아니라, 다르게 놓였을 때에야 되살아나는 오래된 기억이었다.


각주1) Joan M. Schwartz and Terry Cook, "Archives, Records, and Power: The Making of Modern Memory," Archival Science 2 (2002).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BF02435628

각주2) Society of American Archivists, Describing Archives: A Content Standard (DACS), "Statement of Principles" (2019). https://saa-ts-dacs.github.io/dacs/04_statement_of_principles.html

각주3)  주식회사 포켓몬 , 요네하라 요시나리 기획, 기노시타 치히로 그림, 이선희 옮김. 『포켓몬 생태도감』. 대원씨아이, 2026. 

각주4) "The Ultimate Game Freak," Time, 1999. https://web.archive.org/web/20160201213811/http://content.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2040095,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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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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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난돌의 프로필 이미지

    모난돌

    0
    약 23시간 전

    아이가 포켓몬을 엄청 좋아해서 좀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세계가 있는줄 몰랐네요. 역시 기록의 원동력은 대상에 대한 사랑인가봅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ㄴ 답글
  • RNR의 프로필 이미지

    RNR

    0
    약 23시간 전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ㅎㅎ 대통령기록 빠순이(?)로서 읽는 내내 대통령기록도 지금처럼 적당한 공개가 아니라 다양하게 묶이고 정리되어서 이용자에게 보다 더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도감의 이야기지만 아카이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글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ㄴ 답글
  • 줍줍의 프로필 이미지

    줍줍

    0
    약 17시간 전

    기록과사회에서 포켓몬 생태도감을 만나다니..! 올해 30주년 한국에서 이뤄지는 행사에 취해있는 한 독자로서 행복한 소재를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포켓몬 도감을 아카이브로 바라본 적이 없는데 공유해주시는 글을 통해 오 이거 완전 획기적 아카이브였잖아? 싶기도 합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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