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경의 핫아메리카노 | 요즘 극장에선 좀 재밌는 일이 벌어집니다

TMI.FM의 DJ 홍수경(Janis Hong) | 영화 잡지 기자로 일하며 한국 영화계의 대소사를 기록하다가 미국🗽뉴욕으로 이주, 각종 영화 및 팝 컬쳐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영어권 음악만 듣던 팝 덕후가 뒤늦게 미국에서 케이팝 팬으로 거듭났고, 최근에는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 등의 작품 덕에 한국과 미국의 접점에 집중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북미주재원으로도 활동 중.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막을 내린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극장 영화는 [존 윅 4]입니다. 수많은 열성 팬을 거느린 시리즈로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나 [샤잠! 신들의 분노]으로는 뭔가 부족했던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죠. 

미국 극장에는 '구독제'가 있습니다

미국은 지역 물가에 따라 영화 관람료가 달라지는데요. 제가 사는 뉴욕은 그 중에서도 제일 비싼 곳입니다. 만약 [존 윅 4]를 맨해튼 극장에서 아이맥스로 보고 싶다면 25달러가 넘는 가격(=정확히 26.99달로, 한화로 35,491.85원)을 지불해야 합니다. 저희 동네는 외곽이라 일반 상영관 가격은 16.29달러(=22,249.80원)로군요. 여기에 팝콘과 음료를 곁들이면 비용은 두 배로 뜁니다. 그런데 보통 영화는 두 명이 보죠? 음... 한국에서 점심 오마카세를 먹어도 되는 가격이네요... 🤤

그렇다면 미국 사람들은 이 가격을 모두 지불하고 영화를 볼까요? 우선 저는 미국 극장 체인 AMC가 제공하는 구독제를 활용합니다. 얼마 전 한 매체에 미국 극장의 구독제에 쓴 적이 있어요. 제가 있는 뉴욕은 영화 구독 가격도 가장 비싼데요. 어쨌든 한 달에 25달러를 내면 아이맥스를 포함 일주일에 최대 3편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구독 취소 관련 별 제한이 없었지만 이제는 3개월 구독이 기본이고, 취소할 경우 6개월 동안 재구독은 할 수 없어요. 

구독제라고 해도 극장과 배급사와 수익 배분율 원칙은 예전과 같습니다. 극장으로선 관객 수에 따라 수익을 정산해야 하니 극장 입장에서는 구독제가 손해일 것 같았지만... 관람료 부담이 적어지자 관객들은 기꺼이 스낵을 구매하기 시작했어요! 스낵 판매가 중요한 극장 측은 이런 심리 효과를 반깁니다. 구독 회원 수가 증가하고 극장 관객 수가 예전보다 안정화되면서 광고 세일즈도 더 활발해졌죠. 

물론 한국과 미국의 극장 수익 구조 및 소비 문화가 많이 다르기에 함부로 다른 국가의 상황을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미국식 극장 구독제를 소개한 이유는 이 방식에 대한 옹호라기보다는 극장이 관객의 접근을 유도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주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이후 관객의 눈높이는 높아졌고 선택은 더 깐깐해졌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극장으로 데려와야 할까요? 

관객에게 OTT와 극장이란?

OTT를 구독 중인 관객 입장에서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일주일에 한 번은 극장을 찾았던 열혈 영화 관객으로서 제 상황을 예로 들어 볼게요.

일단 저는 미국의 주요 스트리밍 서비스를 대부분 구독 중입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HBO 맥스, 애플TV 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피콕, 훌루를 보고 있어요. 화제의 한국 드라마를 보기 위해 웨이브의 미국 버전이라 할 수 있는 Kokowa같은 앱도 간헐적으로 구독합니다. 작년에 런칭한 파라마운트 플러스는 아직 구독하지 않고 있는데요, 작년에 OTT가 대대적으로 구독료를 인상하는 바람에 무엇을 취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인상된 가격으로 구독 중입니다. 한편 [아바타: 물의 길]을 마지막으로 저는 극장 구독을 끊었습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동시에 ‘시간’의 문제이기도 해서 그랬어요.

2021년 스태티스타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하루 콘텐츠 소비량은 2020년 700분으로 그중 470분, 약 8시간을 디지털 미디어에 사용했습니다. 2018년을 기점으로 디지털 미디어가 전통 미디어(TV, 라디오, 신문, 잡지) 소비 시간을 넘어섰고 팬데믹을 거치면서 디지털 미디어가 급격히 상승해 전체 소비 시간의 60퍼센트를 넘어선다고 예측했어요. 조사 당시 가장 인기있던 소비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한 영화와 시리즈 시청, 독서와 오디오 북이었습니다. (오디오북? 아마존은 오디오북 관련 '라이브 녹음'을 위해 소극장도 인수했습니다)  

스트리밍 구독을 늘어나면 봐야 하는 콘텐츠도 늘어납니다. 그런 상황에서 극장 방문 시간은 애써서 만들어야 합니다. 극장 구독제를 유지한다면 본전을 뽑기 위해 한 달에 두 번 이상 극장에 가야 하죠. 여기에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하는 영화까지 챙겨본다면? 개인의 시간과 비용이 한정된 상황에서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예술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리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영화들은 어느새 스트리밍 플랫폼에 올라와 있습니다. 

팬덤, 호러, 콘서트, 애니: 요즘 극장 영화들

그렇다면 어떤 순간에 극장이 우선시될 수 있을까요? 작년 미국 극장에서 극명하게 나타난 흥행 트렌드는 팬덤이 확실한(+되도록이면 보편적 가치를 전달하는) 속편, 공연 실황, 일본 애니메이션 그리고 공포 영화였습니다. 단순한 팬덤이면 안 됩니다. 구매력 있는 팬덤이어야 하죠. 망작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흥행은 보장됩니다. [존 윅 4]는 팬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라는 성찬과 함께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고, 키아누 리브스가 거부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속편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은퇴한다고 해도 이 이야기 포맷은 다른 배우를 통해 계승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탑 건: 매버릭]와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의 각색상 후보 지명이었어요. 원작 소설이나 만화가 아닌 오리지널 각본을 기반으로 다른 방향의 속편을 만들었다고 해서 ‘각색'으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크리드]가 [록키] 시리즈를 현대화했듯 앞으로도 이런 IP 전환을 새로운 창작으로 업계가 용인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속편'과 ‘리부트'가 오리지널이 될 길이 열렸고 흥행에 성공한 IP는 시간을 초월해 돌고 돌 예정입니다. 작품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다수의 팬들 덕분이죠. 

공연 실황과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에도 팬덤의 역할이 큽니다. BTS 등 슈퍼스타의 공연 실황 상영은 한시적 이벤트이고, [주술회전]이나 [원피스 필름 레드] 등 일본 애니메이션은 약 2주 정도 상영되는데 거의 만석입니다.

저예산 공포 영화의 흥행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스마일] [블랙폰] [바바리안] [테러파이어 2] [메간] 등 2022년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저예산 공포영화들이 연이어 안타 내지 홈런을 쳤습니다. 올해는 [코카인 베어]가 성공했죠. (네, 제목 그대로 어쩌다가 코카인을 흡입한 곰이 미쳐 날뛰는, 믿거나 말거나 실화 바탕 영화입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유명해진 배급사 A24도 작년에 [X]와 [펄]이라는 공포 영화로 화제를 얻기도 했고요. 이 공포 영화들은 마케팅 비용도 없어 홍보도 부족한 가운데 입소문으로 관객 몰이를 해서 더 신기합니다.

분석자들이 꼽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호러 영화에는 코미디 요소가 가미되어 있고 적당히 무섭고 공감할 만한 사회 풍자도 녹아 있어 부담없이 보러 갈 수 있습니다. 대형 스크린과 고품질 사운드는 공포 효과를 극대시키죠. 마치 테마파크 ‘귀신의 집'처럼 친구 혹은 가족들과 공포 체험을 함께 하며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겠죠.

영화 관객 분석 전문 회사 MOVIO는 2022년 호러 영화 관객이 평균 관객보다 어리고 여성 비중이 좀더 많다고 발표했습니다. 에버랜드의 공포 체험 입장료 가격이 1만원임을 감안한다면 1시간 30분에 2만원이 안되는 가격은 괜찮은 수준인 듯해요.  

팬덤 소비와 공포 체험만이 현 극장의 가치일까요? 챗GPT에게 ‘극장에 가야 하는 이유'를 물어 보니 오락, 소셜라이징, 도피, 예술 감상, 문화적 체험 때문이라고 요약해줍니다. ‘극장 말고 다른 오락’으로 아웃도어, 스포츠, 독서, 음악 감상, 소셜라이징도 들었는데 ‘그럼에도 극장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되물으니 ‘개봉작에 대한 한정된 창구, 경험 공유, 추억, 도피'라고 대답합니다. 꽤 정확한 대답입니다. OTT 콘텐츠도 추억과 도피감은 제공할 수 있지만, 극장의 개봉작 파워는 아직 건재하고 호러 영화 트렌드에서도 볼 수 있듯 경험 공유 공간으로서도 여전히 효과가 있습니다. 

극장으로 가는 OTT와 콘텐츠 제작사들

최근 애플의 극장 영화 10억 달러 투자 발표는 ‘개봉작 독점 창구'로서 극장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재작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오리지널 영화 [코다]가 애플TV플러스 구독자 유입에 큰 도움이 되었고, 때문에 화제의 영화가 여느 콘텐츠보다 구독자 유치에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요인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극장 개봉작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최고 인기 콘텐츠 중 하나이고 구독자 이탈을 막습니다. 배급사들은 계열사인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독점으로 개봉작을 공개하고, 타 플랫폼의 경우 라이선스 가격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합니다. 넷플릭스는 사업 초기에 점점 인상되는 라이선스 가격으로 고심하다 자체 제작을 결심하며 콘텐츠 시장 지형을 바꿔 놓았습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와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뿐 아니라 저명한 감독들의 영화에도 꽤 많이 투자하기 시작했죠.

애플도 꽤 오랫동안 오리지널 영화를 만들어왔지만 극장 개봉 없이 스트리밍으로 공개하곤 했습니다.(아십니까, [크리스마스 스피릿]? [해방]? [맥베스의 비극]? 이런 영화들이 있었답니다...) 앞으로는 ‘극장 개봉작'으로 오리지널 영화의 아이덴티티를 더 강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정해진 작품은 두아 리파가 주연하고 매튜 본 감독이 연출하는 [아가일],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킬러 오브 더 플라워 문]입니다. OTT가 극장을 오히려 이용한다? 어떤 효과가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독립영화 배급사 A24는 라이브 행사를 강화하기 위해 아예 오프 브로드웨이 소극장을 인수했습니다. 넷플릭스도 일찌감치 미국 대도시의 몇 개의 극장을 인수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한 개봉 규정 적용 공간 및 행사 공간으로 활용 중입니다. A24의 소극장 인수 목적 중 하나는 작가와 배우를 위한 무대 작품을 공개하여 창작자와 더 돈독한 관계를 다지겠다는 것입니다. 제작 영화 상영 행사 여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저명하거나 주목을 받는 창작자를 모시기 위한 조건에 극장이 추가된다니 신선한 아이디어입니다. 극장이라는 공간 활용과 관련해 다양한 이해관계가 오갑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미국 극장가의 현재를 다시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팬데믹 시기에 사교 공간이 제한되면서 여러 거대 극장 체인은 파산 위기에 처했습니다. 실제로 파산한 극장도 많지만 기적같이 살아 남은 극장은 팬데믹 이전 수익을 회복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죠. 2022년만 놓고 보면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들이 관객을 다시 불러 모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극장 구독제와 유연한 가격 정책은 관객이 좀더 수월하게 극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관객이 팬데믹 이전과 같은 관객인지는 따져볼 문제입니다. 세상이 변했고 관객도 변했다는 사실을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회에는 넘쳐나는 콘텐츠 시장에서 콘텐츠 정리에 나선 '어떤 분'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Stay tuned! 🗽DJ 홍수경 | FB 

📻 에스파 - Hold on tight (영화 [테트리스] OST)

애플TV플러스가 3월 31일 ‘테트리스' 게임의 복잡했던 라이선스 분쟁을 다룬 영화 [테트리스]를 공개했습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태런 에거튼이 러시아 프로그래머가 개발한 게임의 저작권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소련'에 들어가는 게임 회사 대표 헹크 로저스를 연기합니다. 배경은 1988년이에요.

테트리스는 소련 과학 아카데미 소속 프로그래머가 개발했기 때문에 정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라이선스 계약이 온전하지 않은 시대에 새로운 게임 플랫폼이 개발되면서 정체불명의 계약 관계가 얽히게 됩니다. 특히 닌텐도 휴대용 게임기가 등장하고 구소련 체제가 무너지는 시기에 테트리스는 게임 세계의 유니콘이 됩니다.

테트리스의 메인 테마는 디제이 애런 하이벨이 게임 사운드를 토대로 믹싱한 ‘Benevolence’입니다. 이 곡과 함께 테트리스 샘플링을 섞은 에스파의 신곡 ‘Hold on Tight’ 또한  [테트리스] 사운드트랙 수록곡으로 공개되어 현재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테트리스 게임을 하고 싶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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