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레터#58 | 크리에이터는 무엇을 제공합니까? / 차우진

에어컨을 켤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동시에 안도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솔직히 너무 복잡한 마음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서요. 기후 문제를 해결하거나 해소하기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한편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을 벗어나고 싶기도 합니다. 구독자님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

오늘은 요즘 제가 집중하고 있는 고민이랄까... 주제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링크드인에서 쪽지를 하나 받았는데요. 인도의 음악 산업 관계자가 팬덤과 음악 비즈니스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해왔습니다. 그 중 한 질문이 꽤 오랫동안 머리에 남아 있어서, 그 얘길 해볼게요. 

일단, 음악 듣고 시작하시죠? 싱어송라이터 미루의 "언더독 찬가"란 곡입니다. 이 음악은 직관적인 메시지를 레게 리듬에 담은 곡인데요, "우리는 패배하지 않는 종류의 꿈을 꾸죠 / 우리는 가시밭길 위에서도 춤을 추죠 / 우리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 손을 맞잡았을 때 가장 커다랗죠"라는 가사가 선명합니다. 100개가 조금 넘는 댓글 대부분이 '듣다가 울었다'는 걸 보면 모두 이 노래에 위로받는 것 같아요.  

크리에이터는 무엇을 제공합니까? / 차우진

인도 친구의 질문은 이런 거였습니다. 

이 질문, 흥미롭지 않나요?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입장에서는 아티스트와 팬, 그리고 브랜드의 연결을 신경쓸 수밖에 없겠죠. 특히 지금처럼 콘텐츠의 가치보다 부가가치가 더 중요해지는 상황에서는요. 물론 아티스트와 콘텐츠는 다르니까 일단 아티스트를 좀 더 앞에 두고 크게 3개의 방향으로 생각해봤어요. 

하나, 서비스. 아티스트의 지속가능성은 팬으로부터 나오죠. 그렇다면 아티스트는 팬에게 무엇을 제공할까, 이런 질문이 생겨요. 음악으로든, 그림으로든, 글로든 자신의 결과물로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모든 행위를 '서비스'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아티스트는 일종의 서비스 제공자로 볼 수도 있겠죠. 

둘, 메시지. 아티스트가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그 서비스의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하면 그건 바로 '메시지'인 것 같아요. 음악이나 그림이나 글을 통해서 아티스트가 전달하는 것은 결국 특정한 메시지니까요. 그런데 이 메시지가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닐 겁니다. 다소 우울한 것도 있고, 슬픈 것도 있고 때로는 폭력적인 것도 있을 거에요. 중요한 건 메시지 그 자체가 아니라 메시지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관점일 겁니다.     

셋, 사용자 경험. 그러니까 결국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티스트는 팬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서비스는 메시지를 담는데, 이 과정을 통해 팬에게 전달하는 건 일종의 '사용자 경험'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거 너무 '아티스트'를 물성화하는 관점일까요?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기반으로 맺어지는 비즈니스 모델은, 결국 경험적인 것으로 수렴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결론을 내기는 조금 거시기해요. 진짜 중요한 걸 놓치는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조금 더 생각해보면 서비스, 메시지, 경험이 모두 겨누는 곳은 '관계'인 것 같습니다. 관계는 마음에서 시작되겠고요. 그래서 팬이 아티스트에게 쓰는 것은 돈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이걸 콘텐츠 비즈니스로 넓혀볼 수도 있을 거에요.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 네이버 웹툰 등을 거론하면서 '콘텐츠 비즈니스는 사용자의 시간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한다'는 얘길 자주 하잖아요? 그런데 콘텐츠 창작자, 크리에이터, 아티스트들도 그럴까요? 저는 콘텐츠 비즈니스와 크리에이터 비즈니스 모두 '시간'을 목표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결정적으로 크리에이터 비즈니스는 사용자의 시간 너머의 것, 다시 말해 '마음'을 겨냥한다고 생각해요.

이거 좀 나이브하고 낭만적으로 들리죠? ㅎㅎ (이래뵈도 제가 평.론.가.인데 말입니다.... ㅠㅠ) 그러나 저는 오히려 요즘 우리는 너무나 이성적이고 분석적이고 데이터적인 것에 매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성보다 감성을, 분석보다 감각을 회복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쩌면 우리에겐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 세상을 처음 만난 시선이 필요할 지도 몰라요. 그때 비로소 다른 게 보일 것 같고요.

암튼, 얘기가 좀 돌아가는데, 하고 싶은 말은 이거에요. 콘텐츠 비즈니스의 핵심을 '크리에이티브'라고 할 때, 그걸 기반으로 삼은 비즈니스의 목적지는 사용자의 마음입니다. 마음을 건드리는 건 편의성이 아니라 메시지고요.

지금 이 레터를 보는 구독자님이 뭔가를 만들고 그걸로 '넥스트 레블'을 지향한다면 어떤 메시지를 남길지, 전할지, 담을지 고민하면 좋겠어요. 늘 응원하고 있어요. | 차우진

오늘의 엔딩송은 싱어송라이터 숨비의 "럭키 스타"입니다. 그야말로 저의 취향인데요, 저는 이걸 (구식 평론가답게) '가벼운 우울의 심연'이라고 불러요. '숨비'란 말 뜻도 '잠수(潛水)'의 순 우리말이고, '숨비소리'도 해녀들이 오래 참았던 숨을 수면에 올라와 내뱉는 소리죠.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턱 밑에서 파도가 찰랑찰랑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발 끝이 바닥에 안 닿아서 살짝 무섭고요.

숨비는 얼마전 <싱어게인>의 스타, 이승윤이 인스타그램에서 언급하는 바람에 꽤 화제가 되기도 했나봐요. '고마운 사람들'에 언급됩니다. 그 곁에는 싱어송라이터 전유동의 이름도 있네요. (옆방같은 '뉴스레터 <오일링>'에 글을 씁니다) 

여튼.

지금 구독자님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요. 이런저런 생각 속에 라디오 채널 맞추듯 이리저리 자신의 주파수를 맞춰보아요. 다음 밤에 만나요, 말 많고 고독한 디제이였습니다. 

📻밤레터의 미드나잇 선곡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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