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뉴스레터가 나가지 않는 일요일 아침이 아직도 좀 어색한데 마지막 뉴스레터가 나간 지 벌써 한 달이나 되었네요.
어리버리 항해기를 읽으신 독자님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올 여름 세일링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미국에 올려놓은 배로 돌아가 중단된 항해를 이어나갈 계획이랍니다. 이른바 어리버리 항해 시즌 2!
영어에서 'seasoned sailor'는 '노련한 세일러'라는 뜻인데, 이렇게 시즌을 나누면 우리도 노련해질 수 있는 걸까요? ㅎㅎ.. 아재농담은 뒤로 하고, 노련한 세일러까지는 아니더라도 올해엔 좀 덜 어리버리하기 위해 항해에 관련된 공부를 슬슬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혼자 공부하는 것은 역시 좀 심심한데요, 그래서 공부 도우미를 영입했습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화제가 되고 있는 ChatGPT라는 녀석입니다. 직접 물어보니 본인 소개를 이렇게 하는군요:
물어보는 것마다 척척 대답을 하는 AI에게 항해 관련 질문을 하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답에 대해서 팩트체크는 해야 하지만 대화를 하면서 배우는 점들이 정말 많더군요! 노련한 세일러 친구와 대화하는 사이에 새로운 개념을 접하는 경험과 아주 비슷했습니다. 이 친구에게 마리나이(MarinAI)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항해 준비 도우미로 채용했습니다. 월급은 없지만 요즘 인기 폭발이라, 무료 자문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대에는 대기줄이 좀 있습니다.
VHF
외면하고픈 '요트의 시스템'이라는 복잡한 화두를 안겨준 것이 아무래도 작년의 첫 스키퍼 경험이었는데요, 특히나 북태평양 항해에서는 이 부분의 무지가 내내 큰 부담이었습니다. 요트 시스템 중에서도 궁금하던 통신장비부터 공부를 시작합니다.
미국 해안에서 약 100nm 떨어진 북태평양에서 오프쇼어 항해 항해를 계획하고 있는데, 어떤 통신 장치를 배에 준비해야 하니?
작년 코르시카 항해 마지막날이었죠. 아침 일찍 섬을 떠나 60해리 정도 떨어진 이탈리아 반도를 향해야 했기에 육지와 가장 가까운 지점의 외진 만에 닻을 내리고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지역이었는데요, 인터넷에 접속해 기상 상황 업데이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심상찮은 강풍이 불었습니다. 최근 이 지역 기상예보들이 정확하지 않아 긴장이 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추세가 안좋은것 같으면 좀더 안전한 만으로 닻을 옮겨야 했죠. 이때 우리의 구세주가 VHF였답니다. 핸드폰은 안 터져도 VHF기상채널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거든요. 우리와 같은 만에 멀찍이 닻을 내렸던 친구들 배와도, VHF가 없었으면 그 강풍 속에 고무보트 노 저어 다니며 통신할뻔 했답니다.
이번 미국 항해를 하면서는 이렇게 예외적인 상황에서나 요긴한 줄 알았던 VHF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어리버리 북미 항해 8 - 도와줘요 코스트 가드
이 항해 이후에야 궁금증이 생긴 VHF, 마리나이에게 물어보기로 합니다.
VHF에 대해 자세히 말해줄래? 오프쇼어 항해용은 다른 특별한 기능이 있어야 하나?
그렇다면 DSC 호출과 16번 채널에 하는 조난 호출이 다른 점이 뭐야?
우리 VHF무전기에도 당연히 DSC 버튼이 있었으나,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던 저는 그게 그냥 조난신호 버튼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EPIRB처럼 활성화되면 바로 구조대가 달려오는...
별로 위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혀가 대책없이 꼬이던데 진짜 조난 상황에서는 배 좌표를 읊는것 조차 쉽지 않을 것 같더군요. 이때 기본적인 배 정보와 좌표를 이미 포함한 메세지를 보내주는 기능은 참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배 MMSI를 기기에 미리 등록해 두어야겠죠. (MMSI는 "Maritime Mobile Service Identity"의 약자로, 선박이나 해양 기기에서 사용되는 전화번호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코스트 가드에게 에스코트 요청을 할 때에도 DSC를 사용해 호출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마리나이의 답은:
"안됩니다. DSC는 안전 관련된 호출에만 사용해야 합니다."라는군요.
긴급 상황이 아니어도 DSC 버튼을 누를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럼 어떤 경우에 쓸수 있는거니?
아, 루틴 콜을 제외하고는 메이데이(Mayday, 생명이 위험에 처한 상황), 판판(Pan pan, 위급한 상황이지만 즉각적인 대응 필요없음), 세큐리테(Securite, 안전과 관련된 정보 전달) 급의 호출에만 사용하는 기능이군요.
마스트에 VHF 안테나가 설치된 일반적인 40피트 세일링 요트의 경우, 고정형 무전기와 휴대용 무전기의 수신 범위 차이가 많이 나니?
막연하게 알고 있던 고정형(설치형) 무전기와 휴대용 무전기 성능 차이가 이렇게 크군요. 단순히 안테나 위치 때문인 줄 알고 있었는데 출력의 차이로 인한 성능 차이도 새로운 정보입니다.
'제대로 튜닝된' 안테나라는 게 무슨 뜻이지?
그럼 DSC 버튼을 누르고 통화 유형을 선택한 다음에는 음성으로 통신하는거니? VHF 일반 통신처럼 말하는 동안 무전 버튼을 누르고, 놓아야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 있는거야?
재미있으셨나요?
마리나이의 단점이라면 한쿡어가 촘 미숙해서 한국어로 질문을 하면 답변의 수준이 확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질문하고 받은 답변들을 한국어로 바꾼 뒤 좀 다듬었습니다. 더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서 만나보세요.
편안한 일요일 되셔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