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일상은 맨밥처럼

반찬투정

2023.09.13 | 조회 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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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영국 런던에서 시작되어

런던에서 시작된 편지

구독자님, 한국에서 띄우는 첫 편지입니다.

이곳에 온 지도 2주가 다 되어가네요.

무거운 캐리어를 나르며 생겼던 근육통도 사라지고, 시차도 적응했고, 이제는 제법 어엿한 한국인(?)이 됐습니다. 나름 오래 떠나있었던 만큼 이곳도 한편으로는 낯설고 새로울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모든 게 꼭 어제처럼 그대로라 마치 영국에서의 시간이 꿈인 것 같아요.

혹시 '파리 증후군'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 괴리를 견디지 못할 때 겪는 심리 장애인데요, 저도 한국 생활에 딱히 커다란 환상이 있던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금방 시시해지는 일상에 어쩌면 한국도 멀리서 그리워할 때가 더 좋았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뭐, 이것조차도 한국에 있기 때문에 런던을 그리워할 수 있는 거지만요. 꼭 시소 같아요. 내가 앉아 있는 곳은 낮고 시시해서 높은 반대편으로 가면 다시 낮은 곳에 앉아 높은 곳을 보고 있는... 아무튼 얄궂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춘기처럼 주변 모든 것들에 불만을 품고 사는 요즘이에요. 왜인지 전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단,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은 제외) 이런 기분을 처음 느껴보는 건 아니에요. 해치우기 위해선 아마도 열렬히 빠져들 뭔가를 찾아야겠죠. 지금껏 그래왔듯이요.

일상은 맨밥처럼 아주 중요하면서도 밍밍하고 시시해요. 적당한 이벤트들은 각종 반찬이 되어 삶에 맛을 더해줍니다. 지금 이런 기분은 그러니까, 반찬 투정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설명하기 어렵지만 밥상 위에 배추김치, 무김치, 갓김치, 열무김치, 백김치, 파김치만 올라와 있는 기분입니다. 다 갖췄는데 묘하게 빈정이 상해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오네요. 기분도 이런 마당에 차라리 장단 맞춰주는 날씨가 고맙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구독자님과 같은 시간, 같은 날씨에 있다고 생각하니 왜인지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드네요.

편안한 밤 보내고 계시길 바라며, 더 가까워진 곳에서 행운을 빌어요.

 

수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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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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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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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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