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독일에 처음 왔을 때 먼저 와 있던 선배님들에게 많은 조언을 들었다.
그 중 하나가 독일에서는 안 꾸미고 다녀도 되고, 그래서 편하다는 것.
독일 사람들은 맨날 같은 옷 입고 다니고, 날씨도 안 좋으니 기능성 옷 대충 입으면 되고,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어느정도 동의하고 어느정도 동의하기 어렵다.
독일은 우리나라 만큼 유행에 민감하거나 어떤 트랜드가 주도하거나 하지 않는다.
오래된 옷과 가방을 들고, 예쁘고 멋있기 보다는 편하고 기능성이 탁월한 옷이 더 인기가 많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아예 안 꾸미고 다니고, 대충 입어도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남사장]
여기서 말하는 패션은 오뛰뜨구르나 하이엔드 패션,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 브랜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옷을 입는 행위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TPO라고 생각한다.
T> Time, 시간
P> Place, 장소
O> Occasion, 상황
언제, 어디,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알맞게만 입어도 패션때문에 손해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패션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좋든 싫든 간에 외적인 모습은 타인으로 하여금 판단하게 하고, 개인 이미지가 된다. 한번 결정된 이미지는 쉽게 바꿀 수 없고, 이미지 추락은 쉽지만 상승은 어렵기에 보여지는 모습이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그래서 첫 만남에서는 더욱 신경 쓰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패션이 이미지가 되다 보니, 퍼스널 브랜딩으로도 활용하기 좋다. 이러다 보니 신뢰감을 주는 코디, 활동성을 강조한 코디, 스마트한 직장인 코디 등 다양한 컨셉의 스타일도 나오는 것이다. 무조건 비싸고, 좋은 옷을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어울리고 맞는 상황을 설정하여 스타일하는 것이 필요하다.
독일 이야기를 해보자. 다시 말하지만 독일이 한국보다 패션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널널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결코, 막 입고,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면 안된다. 항간에는 독일 친구들이 안 꾸며서 내가 너무 꾸미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하는데, 이는 독일 TPO를 제대로 파악을 못한 것이고, 이런 일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항상 날씨가 안 좋다 보니 비싼 명품 옷보다는 기능성 옷을 아우터로 입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우터로도 개성과 멋짐을 표현할 수 있지만 독일에서는 철저히 기능성으로 뛰어난 옷을 더 선호한다.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 사람이 많아 적어도 방수는 기본이다. 하지만 실내에서는 어떨까?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를 봐도 그렇고, 다른 회사나 세미나 등을 통해 코디를 보면, 신경 써서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날씨와 상관없이 풀정장으로 다니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출퇴근할 때 자전거를 타기 때문에 편한 옷을 입고 회사에 와서 회사용 옷으로 갈아 입는 사람도 있다. 학생들을 보면 정말 학생처럼 입고, 작업하는 사람들은 작업복을 입는다. 즉, 꾸밈 정도가 우리보다 덜 유난스러울 수는 있지만, 절대 안 꾸미지 않는다. 최근 부동산을 보러 다니면서 다시금 확인했지만, 부동산 중개인이 왔을 때 단 한 명도 수수한 차림이 없었다. 다들 차도 좋은 차에 좋은 가방에 깔끔한 옷에 좋은 신발에. 명함도 어찌나 단단하고 아름다운지.
워낙 피지컬이 좋아 대충 입어도 멋있는 유럽인들 사이에서 내가 살아남는 방법은 무난하면서 최대한 깔끔하게 입는다. 예를 들어, 남방을 입어도 다려서 입고, 청바지 무릎이 안 나오게 하며, 찢어진 청바지보다는 핏하게 입고, 신발은 항상 깨끗하다. 독일에서는 좋은 옷을 입는 것보다 'gepflegt' 라고 해서 잘 관리된 것을 중시 여긴다. 개인적인 경험일 수도 있지만, 잘 관리된 스타일을 한 상태에서는 관공서 일은 물론이고, 환불/교환 같은 상황에서도 일처리가 더 잘되는 기분이다.
패션은 이제 더 이상 추위를 막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이미지를 외부에 알리는 첫 단추이다. 특히 내가 남들로 하여금 보여지고 싶은 이미지를 조정하기에 어찌보면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내 스스로에게도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를 설정해서 심리적으로 원하는 삶을 살도록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니 꼭 독일에서도 신경써서 옷을 입도록 하자!
[여사장]
2021년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관광학 전문 역사학자이자 스위스 뇌샤텔 대학 명예교수 로랑 티소가 분석한 5개 국가의 부정적 선입견과 이런 관념이 발생한 원인을 유추해본 내용을 바탕으로 독일의 패션에 관해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유럽 내에서 독일인에 대한 선입견 중 하나는,
>>독일인은 늘 양말에 샌들을 신고 여행한다<< 이다.
한국에서는 일명 ‘아재룩’으로 평가되는 양말에 샌들 조합. 유럽에서는 양말에 샌들을 신은 사람을 마주치면 독일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 처음 독일에 와서 양말에 샌들 조합을 보았을 때. 아니 정확히 말해서 버켄스탁 매장에서 샌들과 정장 양말 같은 걸 함께 파는 걸 직접 목격 하였을 때 꽤나 충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이야 나도 독일에서 10년이상을 살았기에 할말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지만. ㅎ
티소는 독일 사람들이 샌들을 즐겨 신는다는 편견이 생긴 건 1774년 독일 브랜드 버켄스탁이 ‘가장 편리한 신발’이라는 주장과 함께 세계 최초로 ‘곳곳이 뚫린 신발’을 탄생시킨 이후부터라고 설명했다.
보수적인 독일 사람들이 버켄스탁에는 자부심이 있어서 그런지, 다른 슬리퍼나 샌들은 하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지만, 버켄스탁 만큼은 언제 신어도 용서받는 국가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 날씨가 우리 한국과는 좀 달라서 사실 여름이라고 해도 그렇게 습하지 않고, 대구처럼 더워지진 않기 때문에 샌들을 생존을 이유로 신어야 하는 환경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독일 사람들 중에는 아주 더운 여름에도 긴 팔, 긴 소매의 정장 차림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게 하나의 유럽식 매너라고 여기는 듯 한데, 사실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렇게 긴팔 긴바지 정장을 7,8월 한 여름에도 입는 보수적인 독일 정서에, 샌들이라니. 샌들이라니!? 아니 어찌 사람이 경박하게 발가락을 내어놓고, 앞 뒤가 뚫린 신발을 신을 수가 있는가!!?
그래서인지 버켄스탁이 처음 샌들을 제작했을 때에는 크게 너무 지나친 혁신성 때문이었는지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100년이 흐른 지금은 독일의 국민 신발이 되었다.
독일인들의 버켄스탁 사랑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예전 브레멘 직장에서 여름이 되면 여자 동료들은 정말 80%가 다들 버켄스탁 슬리퍼를 신었다.
그렇다고 정말 슬리퍼에 추리닝을 입은 감성으로 질질 끌면서 다니는 건 절대 아니고.
몸에 꼭 맞는 긴 바지와 셔츠, 벨트, 단정하게 빗어내린 머리 혹은 깔끔하게 올백으로 묶은 머리에 신발만 버켄스탁 샌들로 약간의 자유를 허용하는 정도였다. 아무리 옷차림에 한국보다 관대한 독일이라고 해도 직장에서의 예의는 깎듯이 지킨다.
*참고로 내 예전 독일인 룸메이트 친구는 주말에 슈퍼에 장을 보러 갈 때에도 슬리퍼나 추리닝은 절대로 입지 않았다. 장을 보러 가더라도 최소한 청바지 혹은 면바지와 같이 제대로 된 외출복을 입고 나가는 것이 예의라고 부모님께 배웠다고 들었다. 독일도 가만히 보면 유교 마인드가 있다. 독일 유교 마인드.
물론 요즘에는 룰루레몬의 영향으로 레깅스를 입고 돌아다니는 분들도 있다.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들이 있는 반면, 아니 어떻게 레깅스, 즉 운동할 때나 입는 옷을 외출할 때 입을 수가 있지? 라고 생각하는 부류도 존재한다. 이렇게 의견이 갈리는 것은 세계 공통일 듯.
여행이 대중화된 1930년대 말, 샌들에 자부심이 강했던 많은 독일 여행객들은 양말을 신고 사계절 내내 샌들을 착용하고 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이 모습이 우스꽝 스럽다고 여긴 다른 유럽 국가 사람들이 그 때부터 ‘독일인들은 늘 양말과 샌들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고착화시켰다고.
독일에서는 지금도 버켄스탁에 양말을 신고 어느계절에 어딜 돌아다녀도 아무도 당신을 비웃거나 차림새로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버켄스탁과 양말을 센스있게 매치하는 트렌드도 생겨나서 잘만 신으면 예전의 독일 패션에서 보던 재앙은 일어나지 않는 듯 보인다.
결론적으로 독일은 한국에 비해 트렌드에 민감하지 않고, 옷차림에 대한 패션의 기준이 상당히 낮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참 살기 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꽤 지루한 동네가 될 수 있다.
독일에 오랫동안 살고 계신 분들을 보면, 극히 소수만을 제외하고 독일 패션에 상당히 동화된 모습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는데 역시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걸 내 모습을 통해서도 새삼 느낀다.
독일에서 10년이상 산 사람 같지 않게 남사장은 늘 옷을 깔끔하게 입는다. 존경스럽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사업가 마인드를 가지고 적어도 커피 자국이 있는 티셔츠나 무릎이 튀어나오는 추리닝 바지와는 작별을 고하려고 한다. ciao 챠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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