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려는 비즈니스 분야 중 하나는 통상 비영리 단체와 일을 했었기 때문에 영리단체가 들어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이에 멘토는 이렇게 조언한다.
"비영리 단체 하나 만드세요."
"사업할 때 비영리 단체도 필요한가요?"
"필요하면 만들어야지요."
그렇다. 비즈니스에서는 상황에 따라 필요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 그래서 비전이나 가치, 목적 의식을 분명하게 해야 하는 거구나?! 그게 없으면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부러지겠구나.
[여사장]
'돈을 많이 벌고 싶은데, 사회적으로 임팩트도 줘야 되네!'
에잇, 도대체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추어야 할까?
지난 주, 독일 뮌헨에서 진행되는 창업 연수 프로그램에 1주일 정도 참여했다. 거기서 마케팅 강연을 듣는데,내 사업소개는 너무 돈 이야기만 들어가고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임팩트가 부족해 보인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뭐야, 지금 뭐 착한 척 가면이라도 쓰라는거야 뭐야?'
그냥 좋게 받아들이면 되는 의견을, 수면부족으로 까칠했던 나는 기분 나쁘게 받아들였다.
그래도 브레멘 지역의 창업 프로그램 보다 뮌헨이 훨씬 재미있다고 느꼈던 점은 독일인의 참여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점이었다.
아니 독일에서 독일어로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독일 사람이 많이 참여하는게 특징이라니!?
독일은 이민자의 나라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상당히 적극적으로 이민자, 난민을 받아들여 이제는 어디를 가든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꼭 보게 된다. 그리고 창업 세미나 처럼 국가 지원과 연계된 행사 참여자들을 보면 뮌헨보다는 브레멘 지역의 외국인 참여율이 더 높다고 느껴진다.
독일은 도시 보다 더 큰 개념으로 주 단위로 지역이 구분되어 있는데, 내가 예전에 살던 브레멘은 독일 전역에서 도시의 채무정도가 가장 심각한 주 였다. 도시의 채무가 심각하다는 뜻은 도시가 가난하다는 뜻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채무가 많다는 것은, 일단 돈을 그만큼 가져와서 쓰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 자체의 유입이나 투자 자체가 경직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브레멘에도 몇몇의 백만장자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주민 복지를 위해 아주아주 많은 기부를 한다.
야, 니가 거기 오래 살기만 했지 백만장자를 만나보기나 했냐구?
응. 내가 만나봤어. ㅋ
유학생 시절, 그 당시에도 나에게 귀인이었던 지금은 뮌헨 산다는 그 친구가 나에게 알바 자리를 소개시켜 줬다. 개인 가정 집 청소를 일주일에 두 번 하는 일이었는데, 본인은 정말 체력이 안된다며 함께 하자 제안했다.
자녀가 없는 노 부부의 집으로, 정말 소박하고, 정말 솔직한 말로는 너무 낡은 집이었다.
청소를 하면서 제일 불편한 점은, 싸구려 청소기와 제일 저렴한 도구들만 사용할 수 있어서 청소가 제대로 안 된다는 점이었다. 다 떨어져 가는 헝겊을 버리지 않고 계속 쓰고, 향기도 안좋은 싸구려 세재만 최소한으로 쓸 수 있어서 청소를 해도 광이 잘 안 나서 재미가 떨어졌다.
그 분들이 백만장자라는 걸 스스로 말하고 다닐 리는 만무하고, 내가 그들이 백만장자라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이 분들이 북 유럽으로 여행을 갔는데, 평소 세계의 구리 동전을 모으는 특이한 취미가 있었던 요하임 할아버지께서 여행지의 어느 은행에 들어가서 작은 금액을 구리 동전으로 바꾸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서 북유럽 은행 직원의 반응이 재미있었는데.
극도로 혐오한다는 표정을 보이며,
'우리 나라에서는 환경을 생각해서 구리 동전은 안 쓴지 꽤 됐어요.' 라며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말을 면전에서 하지는 않았겠지만, 유럽 안에서는 짠돌이들로 유명한 독일인들을 비하하는 듯한 인상을 받으셨다고.
팁 문화가 있는 유럽에서 여행을 가면 흔히 청구된 요금의 끝자리 작은 센트는, 올림을 하여 지불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당시 스마트폰이나 전자결제가 없던 시절 끝자리 1센트 하나까지도 맞추어 지불하면서 절대 팁을 내지 않으려는 짠돌이 독일 할아버지로 오해받은 것이 상당히 기분이 상하셨던 것이다. 브레멘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부자로 이미 소문이 났고 (길 하나에 이 분들 집이 2개가 있었으니 뭐,,, 동네 사람들은 다 알았겠지.) 자식도 없으니 어디 가서 하소연 할 곳이 도무지 없으셨던 거다. ㅎ 그렇게 나와 내 친구를 세워놓고 그 날은 청소 대신 그 하소연을 들어 드렸다.
그 때 이런 말씀을 하신거다.
"아니 우리가 정말 검소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서 그렇지, 사실은 정말 돈 걱정 없는 사람들이거든. 독일에 부동산만 20개가 넘게 있는데, 내가 뭐가 아쉬워서 몇 센트를 안 주려고 그 짓을 하겠어!? 독일 사람이라면 색안경 끼고 보는 그런 일들이 정말 너무 싫단다."
"오,,, 할아버지, 그럼 해외 부동산도 있어요?"
20대의 나는 공감과 경청이라는 치료분야의 기본 원칙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바로 사심 가득한 질문을 치고 들어갔다. 옆에 있던 뮌헨 친구가 뭘 그런걸 물어봐 라는 눈빛을 주었으나 눈치 없는 나는 지금 할아버지가 삐진것 보다 내가 하고싶은 팩트체크가 먼저였다.
"어, 해외에는 근데 그렇게 많지는 않아..."
할아버지는 갑자기 조금 주눅이 들어 보이셨다. 당당하게 어. 내가 해외에는 더 많이 있지! 라고 대답하고 싶으셨던 듯 하다 ㅋ
"오, 미국 부동산도 있어요?"
"거기에는 딱 하나 있어."
"그렇군요."
할아버지가 황급히 주제를 바꾸고 싶어 하셨지만, 이미 늦었다. 이젠 내 친구도 합세했다.
"할아버지, 얘 청소 진짜 잘하잖아요. 해외 부동산 건물 청소할 거 있으면 맡겨요. 얘 지금 영국가고 싶다는데요 ㅋ"
"어, 지금 런던 브릿지 앞에 작은 원룸 하나가 비어 있기는 하지. 지금 가면 비워져 있어서 쓸 수 있는데 열쇠를 줄까?"
"에이, 아니예요. 농담 이었어요.ㅎㅎ "
내 친구는 옆에서 옆구리를 찌르면서 '야, 열쇠 그냥 받아' 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날 알바를 끝내고 나오면서 친구가 소리를 질렀다.
"야, 그렇게 기세 좋게 해외 부동산 있냐고 묻더니 왜 막상 열쇠 준다니까 쫄고 난리야!? "
막상 열쇠를 주면서 가보라고 하니까, 그러면 안 될거 같았다. 그 분들의 호의를 불필요하게 이용하고 싶진 않았다.
어쨋든, 이러한 계기로 브레멘 시에 얼마나 많은 기부금이 들어가는지 그리고 진짜 백만장자가 브레멘에도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든 부자들이 다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이 요하임 할아버지네를 보면 확실히 사회적인 임팩트가 돈을 투자하는 명분이 되고 힘을 가진다.
나는 착한 사람인 척 굴면서 돈을 벌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돈을 쓰는 사람들 에게는 그들의 돈이 착하게 쓰일 것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남사장]
오늘은 친구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대학교 때 인기가 많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여자에게만 인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남자애들한테도 인기가 많았다. TMI지만 교수님도, 식당 이모님들도, 우리 부모님도, 만나는 사람마다 내 친구를 좋게 봤다.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았을까?
적어도 외형적인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그가 못 생겼다는 것은 아닌데, 외모 때문이라면 그 친구보다 더 잘 생긴 친구들의 인기가 더 많아야 하는데 그들의 인기는 내 친구보다 별로 였다. 여자 아이들 왈, 그의 외모는 그냥 딱 보통 정도라고 하더라.
그럼 어떻게 그는 사람들의 호감을 잘 얻을까?
그와 함께 산적도 있고, 맨날 붙어다니면서 그의 행동을 유심히 본적이 많은데, 그는 어느 누굴 만나도 분위기 좋게 이야기를 잘 끌어간다. 상대가 재미 있어 할, 상대의 관심을 끌만한 주제를 금방 찾아서 이야기에 녹여내는 것이 일품이었다. 독서는 아예 하지도 않는데 어찌 모든 것을 다 조금씩, 대화할 정도로 알고 있으며, 어쩌면 저렇게 말이 청산유수일까? 오해 하지 말 것이 마냥 샤바샤바 한다는 말이 아니다. 분위기와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결국 상대는 내 친구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있다. 상대가 그것을 싫어할지라도 말이다.
주변 평가에 의하면 내 친구의 인기비결은 진정성이었다. 식당 이모에게는 못 물어봤지만 주변 사람들은 내 친구의 언행에서 그의 진실한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했다. 친구에게 물었다.
"모든 일에 진정성을 어떻게 담는 거야? "
"진정성? 몰라. 그런적 없는데?"
당사자는 모르는 진정성이라…. 흥미로웠다. 그는 이어서 이런식으로 말했다.
"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냥 할 뿐이야."
오글오글하지만 그때는 쿨내 진동이고, 본받고 싶었다. 실제로 어느정도 내 인생에 영향을 미쳤다. 이제 와서 보니 비즈니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보다 남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내 딸들이 나보다 더 나은 곳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다. 나의 이런 진정성을 남들이 알게 하기 위해서는 그냥 필요한 것을 해야 한다. 어쩌면 고민할 필요도, 고집을 부릴 필요도 없는 이야기다.
영리 단체가 필요하면, 영리 단체를, 비영리 단체가 필요하면 비영리 단체를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특히 우리가 다루는 프로젝트들의 대부분은 한국과 독일 사이에 정부 기관이 다루었으면 좋았을 내용을 주제로 하고 있고,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위해 후원하거나 지원하던 분야이기 때문에 수익성이라는 말이 어색할 수 있다. 이 '수익성' 때문에 파트너들이 주저한다면, 수익성을 지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 그게 필요하니까.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생각이 복잡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나의 진정성을 알아보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지우고 쓰길 반복하다가 내 친구와의 일화가 떠올랐고, 진정성은 내가 임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꾸준히 하는 것이고, 그럼 자연스레 인기 많은 사업가가 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나의 비즈니스는 오늘도 조금 성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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