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최대 1억짜리 국가 지원사업인 예비창업패키지를 깔끔하게 말아먹은 후, 여사장과 남사장은 되려 잘 되었다며 우리 스스로 더 적극적으로 파트너를 찾아보자고 외쳤다. 주변에 있는 모든 인맥과 사물을 기회로 삼아보자며 심기 일전한다. 국가지원사업에서 왜 떨어졌는지를 분석하고 반성하기 보다는 빠르게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으로 현재의 분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런 선택 전까지는 여사장과 남사장은 알지 못했다. 점점 쌓이는 실패의 경험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안과 걱정의 씨앗으로 커져갈 수 있음을.
그렇게 B씨는 우리와 더이상 함께 하지 않게 되었다.
[남사장]
"ㅇㅇ님~ 드릴말씀이 있어요."
평소에 했던 같은 말인데도 이상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데 B씨의 위 말이 딱 그랬다. 그동안 미팅 때 할말이 있다, 어쩌다 할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 날은 이 말 듣자마자 이별을 예상했다. 예창패에 실패했고, 보성 농장 섭외에 실패하고, 소소하게 시도했던 지원사업에서 줄줄이 탈락하면서 아무렇지 않았던 여사장과 남사장 그리고 A씨와 달리 B씨는 결단을 내렸다. B씨는 마케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했지만 우리처럼 초짜에게 마케팅을 맡기는 고객은 없었다.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영어 수업이 들어왔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와의 동행을 그만 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평소 꼼꼼하게 시장조사를 했고, 학부모 입장에서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아쉬웠다. 그러면서 다시금 꼭 성공하고 싶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 함께 했던 시간과 신경 써주신 부분에 대해 B씨에게 감사 인사를 다시금 드리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3인 체제가 되었다. 팀이 와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전진이라고 생각했다. 부단히 컨설팅 해 줄 곳을 찾다가 남한산성 카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꽤 넓은 부지에 카페와 펜션이 있고, 주변에서 부러워 할만한 넓은 주차장과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계곡을 끼고 있으며, 질 좋은 커피콩과 직접 로스팅하는 기술력도 보유한 바리스타 사장님 등 장점이 많다고 하는데 다른 카페에 비해 장사가 잘 안된다고 했다. 이때다 싶어 우리에게 맡기라고 했다. 카페 사장님들이 가지고 있는 컨설팅 업체에 대한 불신때문에 흔쾌히 우리와 함께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직접 찾아뵙고, 설득하기 위해 카페를 찾았다. 물론 우리도 카페에 대한 정보를 직접 얻고 싶었다.
카페 남사장님과 여사장님께서 다행히 카페의 가능성을 어필하는 나를 만족해 하는 눈치였고, 카페와 펜션 시설 모두를 찬찬히 보여주시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이 날 방문을 계기로 컨설팅을 위한 온라인 1차 미팅을 잡을 수 있었다.
<1차 미팅>
첫 미팅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납득시키는데 집중했다. 보성 때 우리의 경력과 경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기에 이번에는 우리 회사의 실무 경력 위주로 설명을 했다. 사실 에그 파트너스 이름으로 성공한 스토리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내 개인적인 역량을 어필하기도 했다. 개별 컨설팅을 통한 성공 사례를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우리가 제안할 수 있는 서비스의 범위를 명확히 했고, 해당 금액도 미리 제시했다. 그런데 또 다른 난관에 부딪쳤다. 남사장님은 까페가 잘 안되는 이유를 오로지 마케팅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계셨던 것이다. 마케팅에도 분명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까페와 펜션의 운영방식과 고객 대응, 시설물 유지 관리 보수, 메뉴와 단가, 타겟 고객 부재, 알바와의 관계 등 대화를 통해 발견한 문제는 마케팅 전략 이전에 해결되어야 할 기본적인 운영에 관한 것들이 많아 보였다. 마케팅을 잘해서 손님이 단기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는다고는 해도 장기 고객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기본기가 부족해 보였다. 우리는 한푼이 아쉬운 신생 회사였지만, 고객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솔루션을 제안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고객을 함께 동행하는 파트너로 여기는 회사다. 함께 성장하기 위한 창의적인 연결점을 찾아서 재미있게 일하는 회사. 그렇기 때문에 함께 할 파트너에게 지금 당장 달콤하다는 이유로 건강에 좋지 않은 설탕 덩어리를 제안할 수는 없었다. 딜레마다. 우리의 입장은 '설탕은 당장에 달콤함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몸의 면역 전체를 저하시키기에 사용을 절제해야 한다.' 였지만 이미 설탕의 단맛을 본 고객들은 설탕을 찾기에 바빴다.
우리 셋은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 각자 내적 갈등이 생겼다. 고객의 비위를 맞춰서 SNS 마케팅 계약만 따야 하나 아니면 어떻게든 고객을 설득해야 하나...
<2차 미팅>
컨설팅을 못하더라도 고객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가자고 여사장과 이야기를 했고, 여사장은 최소한 SWOT 분석을 할 수 있도록 설득해보자고 했다. 절대 양보가 없을 것 같았던 카페 사장님 내외는 마케팅을 비롯한 우리가 발견한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분석 작업을 무료로 해주겠노라는 제안은 거부하지 않으셨다. 여사장의 따뜻한 설득으로 펜션에서 무료로 1주일동안 머물면서 SWOT 분석을 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좀 더 디테일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 얻은 결과였다. 그렇게 SWOT 분석 보고서를 만들었다. SWOT 분석 보고를 마무리 하려는 시점에 까페 남사장님이 한마디 하셨다.
"나는 돈 욕심 없어요. 컨설팅 받고나면, 매일 300만원 매출 가능하죠?"
[여사장]
싸늘하다.
예창패를 말아먹은 뒤, 팀 내 분위기도 사뭇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더이상 국가에 의존하지 않겠다며, 예창패 지원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미루어 둔 법인 설립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과정에 B씨가 나가는 등 우리 팀에는 변화가 찾아왔고, 어떤 의미에서는 법인이라는 회사의 체계와 원칙과 질서가 만들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기에, 사적인 감정과는 별개로 매우 긍정적인 발전 과정이라 여겼다.
그러던 중 남사장이 엄청난 프로젝트를 물어왔다. 말 그대로 잡힐 생각이 전혀 없던 물고기를 물어온 것이다. 독일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의 부모님이 남한산성에서 까페를 하시는데 수입이 일정하지가 않아 고민이 있으시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까페와 함께 하는 펜션 운영까지 병행하기에 많이 지쳐가고 계시다고. 젊은 사람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나가는 펜션 사업인데다가 레드오션 중에서도 포화상태인 남한산성에서 까페를 하고 계시니 고민이 많으실 수 밖에 없었다.
남사장은 이번에도 미남계(?!)로 까페를 운영하고 계시는 실질적인 소유주인 아버님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우리 팀은 혼자서는 결코 잡을 수 없는 미팅 기회를 다시 한번 얻게 되었다. 어른들은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을 선호하셨지만 일정상 어쩔 수 없이 1차 미팅을 줌으로 진행했다. 이번에는 지난 보성 미팅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처음부터 파트너십 계약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고,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정확한 내용과 금액에 관해서도 깔끔하게 정리를 한 뒤, 서면으로 미리 출력하여 준비했다. 그리고 2차 미팅은 내가 직접 까페를 방문했고, A씨와 남사장은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긴장은 했지만, 온라인으로만 진행하는 것보다 전달력도 좋았고, 내용 이해도 좋았고,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진행이었다.
무엇보다 좀 더 확실히 까페 경영의 문제점과 해결점을 제시할 수 있도록 전라도에 거주하는 A씨와 경상도에 머물고 있던 내가 함께 일주일정도 펜션에 숙박을 하며 SWOT분석을 하기로 했다.
남한산성 2차 미팅을 가기 며칠 전, 갑자기 배가 너무 아프고 식은땀이 나서 먹은걸 게워냈다. 토하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는 제대로 장염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증상이 있었지만 남한산성으로 가서 2차 미팅을 잘 마쳤고, 다음 일정인 <SWOT 분석을 위한 1주일간 머무르기> 전까지는 치료를 받는게 좋을 듯 하여 병원을 찾았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장기 휴가를 쓰기 위해 보고서며, 집안일이며, 소소한 일들을 몰아서 했던 내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보성으로 회사 브리핑을 가고, 또 부자들이 그랬듯이 어떤 순간에도 운동도 놓쳐서는 안된다며 운동을 했고, 남한산성에 계약서를 들고 2차 미팅을 다녀오느라 장염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계속 일정을 소화했다. 장염 따위야 한번 게워내고 하루 이틀 잘 익힌 음식만 먹으면 낫겠거니 무시를 하고는 2차 미팅을 진행했었다. 그렇게 애써 몸상태를 무시했지만 장염이 낫지를 않아 결국은 병원을 찾았던 것인데, 검사결과가 나오자마자 의사선생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입원수속을 진행시켰다. 그대로 일어나서 바로 입원실로 가란다. 죽을 병도 아닌데 집에서 내원할 수 없냐고 사정을 했지만 단호하셨다. 이렇게 장염이 심한데 질질 끌면서 병원도 안오는 사람은 집에 놔두면 제대로 치료가 안 된다는 말씀이셨다. 아니, 일리있는 말씀이지만, 제발 속옷이라도 좀 챙겨오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다. 막무가내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서 노트북과 속옷을 챙겨 나왔다. 집에서 병원으로 향하는 중에 병원 원무과에서 왜 아직 입원을 안 하냐고 재촉까지 받았다. 그렇게 곧 죽어도 일은 할 거라며 노트북을 챙기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컨설팅에 진심이었다. 실제로 병원에 입원해서 링겔 수액 5개를 동시에 맞으면서도 휴게실에 노트북을 펼치고 우리 팀 회의에는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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