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남사장과 여사장이 한국을 방문하기 전으로 잠깐 거슬러 올라가 보자. 우리 에그 파트너스는 여러번 이야기 했지만 여사장과 남사장은 독일에서, A씨와 B씨는 한국에서 창업을 준비하였다. 그러다보니 독일에서는 주로 밤 11시부터 새벽까지, 한국에서는 썸머타임 영향으로 새벽 6시에 만나 줌 (Zoom) 회의를 진행했다. 그렇게 다들 각자 위치한 나라에서, 직장인으로서 또는 엄마로서의 역할 이외에 시간과 노력을 추가로 사용하여 글로벌 경영 컨설팅 창업 준비를 하였다.
일주일에 1번 모여서 그랬던건지 뭔지, 우리는 만날 때마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초반 몇달간에는 브레인스토밍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찾은 문제점들, 우리가 만든 해결책, 비즈니스 모델 등 그 주제와 내용을 제한하지않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모았다. 좀 더 효율적으로 아이디어를 관리하기 위해 회의록도 작성하고, 다양한 온라인 툴도 사용했지만 차고 넘치는 아이디어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방향성"이 없었다.
"다음주까지 이 책 읽고 오시면 좋겠어요." 리더 A씨는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을 추천했다.
[여사장]
"비즈니스는 너무나 재미있다!"
인생의 목표가 없었을 때 나는 귀찮다는 이유로 매일매일 라면을 먹었었고, 주기적으로 폭식을 했다. 사는게 재미가 없는데 건강은 챙겨서 뭐하리. 하루라도 빨리 죽으면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많았다. 무언가를 장기적으로 계획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금 당장. 내 코앞에 닥친 문제들이 내 눈앞을 가려서
먼 미래의 일을 보거나 꿈 꾸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했다.
그런 내가 일련의 깨달음을 얻고 나서 부를 향해 가겠다는 (부자가 되겠다) 다짐을 한 후, 내 인생은 느리지만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회사일 하나 처리하기에도 벅차다며, 회사 다닌다는 핑계로 가족과 친구를 다 버린 것도 모자라 내 자신도 버렸다. 말 그대로 주변만 챙기지 않은게 아니라 나 스스로도 챙기지 않았고, 그냥 포기했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뭐가 그렇게 불만이고, 힘들고, 불가능하다고 징징 거렸는지 솔직히 기억도 잘 안나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게 살았었다.
지금은 직장생활은 기본값이고, 퇴근 후 운동을 가고, 책을 읽고, 자기계발 세미나를 듣고, 창업 준비로 온라인 회의에 참석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변화다. <비즈니스 다이어리>라는 콘셉트로 비즈니스 에세이를 쓰며 글로써 나의 변화를 적은 글을 읽은 주변에서는 마치 내가 마음만 먹으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대단한 실천가처럼 평가하던데 큰 오해다. 실제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 이러한 변화의 시작은 너무나도 미미하게 시작되었다.
목표를 정하고 적으라고 하는 김승호 회장님이나 켈리 회장님의 조언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언문을 적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만의 비즈니스를 하겠다."
선언문을 적는 것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데까지는 얼마나 걸렸을까? 독자들에게 여쭙고 싶다. 과연 나, 여사장은 얼마나 빨리 선언문의 내용을 행동으로 옮기고, 결과를 봤을까? 질문의 뉘앙스로 봐서 대략 길었다고 생각을 할텐데 잠깐 생각해 보시라.
3개월? 6개월? 10개월?
몇 달 정도로 짐작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일 듯 싶다. 1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하지만 장장 2년이 걸렸다. 목표를 선언하고, 매일 아침 목표를 보고 읽고 쓰고, 아침 명상을 하고, 성공 데일리 루틴을 지켰다. 혹시라도 100권 자기계발서 읽기 목표를 중간에 포기할까 싶어, 환경설정용도로 아예 유투브 계정도 만들어 버렸다. 북튜버로 읽은 책을 1주일에 1개 업로드 하는 형식으로 구독자를 만들었다. 평소 남한테 폐 끼치는게 죽기 보다 싫어서 남 눈치 보는 것 때문이라도 (구독자분들께 죄송해서라도) 그만두지 못할 내 성격을 알기에 이러한 환경설정을 해 버렸다. 그렇게 "1년동안 100권 읽기" 독서 목표도 이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만의 비즈니스를 시작(!!!)만 하는데 무려 2년이나 걸렸다. 자기계발 서적이나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 어떤 사람들은 참 쉽게 결정을 내리고, 쉽게 퇴사하고, 쉽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 처럼 보이는데 나는 2년이 걸렸다. 왜 그랬을까?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그만큼 내 안에 이제까지의 못된 습관들이 덕지덕지 굳어 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결단과 선언으로부터 행동에 옮기기까지의 연습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었고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살던 나 같은 인간도 변하고자 하니 시간은 걸렸지만 변하긴 한다는 점이다.
만약 "선언 - 행동 - 변화" 3단계를 효율적으로 하고 싶은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환경설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누구랑 함께 하는가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답해주고 싶다. 지나고 보니 에그 파트너스 사람들을 만나서 2년만에라도 행동으로 옮겼지, 아니였다면 나는 여전히 직장인으로 자기계발에만 돈을 쓰고 있었을지도...
글에서도 몇번 이야기 했고, 실제로 A씨에게도 많이 이야기 했지만 나는 A씨를 정말로 좋아했다. 알면 알수록 나에게 없는 그것을 가진 A씨가 멋져 보였다. 어린 나이에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 모습 자체가 존경스러웠다. 좋아하는 연예인 따라 하듯이 A씨를 보면서 나 역시 행동으로 좀 더 빨리 행동으로 옮기려고 했었다.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팀원 중 가장 아꼈던 B씨. B씨는 영어 선생님의 경력이 육아로 인해 단절된 가정주부였지만, 전혀 다른 분야에 기꺼이 도전을 하고, 당장 금전적으로 이익이 없는 창업 준비에 시간을 내고 있었다. 아이들 픽업 전 잠깐 짬을 내어 맥도날드나 까페에서 이어폰을 꼽고 회의에 참석하는 그 모습을 좋아했다. 예전에 교사로 활동하셨던 분 특유의 책임감이었을까? 아니면 훌륭한 인재였을까? 두 아이의 엄마임에도 항상 제시간까지 맡은 시장조사를 그냥 해오는 것을 넘어 꼼꼼하게 문서로 정리하여 파악하기 쉽게 공유해 주었다.
그러다 우리가 시그니엘에서 만나기로 한 날, B씨는 오는 길에 폐지를 줍는 노인분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고, 안타까운 마음에 만원짜리 한장을 손에 쥐어 드렸다고 했다. 노인분은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큰 돈을 이렇게 주냐며 정말 고마워 하셨다고. 울컥하는 마음에 그 자리에서 지갑에 있는 현금을 더 드렸다고 했다. 그냥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생각만 하는게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데 수초가 걸리지 않았다. 우리 에그 파트너스가 하는 일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따듯함을 전달하는 일이기에 B씨는 진정한 사업 파트너라 생각했다.
남사장을 포함해 좋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모이기 시작하니 뭔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까지는 조금씩 쉬워지기 시작했다. 행동력이 좋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우리의 비즈니스의 행동력도 우사인 볼트처럼 쭉쭉 나갈 줄 알았다. 정확하게는 실천자체는 빨랐는데 결과를 볼 수 없었다. 행동력이 좋아 아이디어가 자꾸 행동으로 옮겨지기 시작한 아이템에 비해 결과를 본 아이템이 없었다. 점점 산으로 가는 사공 많은 배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공들이 배가 산으로 올라감에도 즐겁다며 강으로 갈 생각을 안했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내가 처음 한 말을 정정해야 겠다.
"비즈니스가 재미있는게 아니라 아이디어 회의가 너무나 재미있다!"
[남사장]
비즈니스의 시작은 아이디어일까?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모인 4명 중 비즈니스를 해본 사람이 없어서 막무가내로 아이디어 회의부터 했다. 너무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점과 솔루션이 나와 이를 어느정도 제한하기 위해서 A씨의 영향으로 농산업 분야로 그 주제를 한정했다. 농산업 역시 익숙한 주제는 아니였지만 신기하게 주제를 제한했음에도 우리 머릿속 아이디어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 아이디어만으로는 세계 초일류 농산업을 만들고도 남았다. 비록 한국에서 보성도 제대로 설득 못했지만, 아이디어 회의 때만큼은 한독 네트워크를 이용한 농업 경영 인재 양성 시스템과 스마트팜, 농장의 스마트화/디지털화 등 농산업 전반에 대해 솔루션을 내 놓으면서 자화자찬했다. 서서히 우리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나? 우리는 전혀 몰랐다.
우리가 가진 것은 너무 중구난방이라 A씨는 팀의 리더로서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이라는 책을 통해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독서로 시작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당연한 선택지였다.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은 우리가 흔히 아는 시제품(프로토타입)보다 하나 더 앞선 프리토타입을 통해 아이디어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전에 검증해야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 방법론을 제시한다. 빠르고 저렴하게 진행한 프리토타입을 통해서 얻은 나만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의사결정에 활용하라고 한다.
당시에 이 책을 읽고 충분히 팀원들끼리 나눴다. 저자가 말한 것을 흉내내기 위해, 우리의 아이디어를 먼저 알리고, 반응을 통해 나름 커뮤니케이션 카드와 같은 시제품을 만들었다. XYZ 가설도 세우고, 빠르고 저렴하게 진행도 했고,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수정 보완도 했는데 왜 우리는 보성도, 외국인센터도 설득 못하고, 예창패도 떨어지고, 이후에 있을 어떤 사건 (곧 에피소드에서 다룹니다. 궁금하시다면 구독 부탁드려요!)에서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을까? 이 글을 쓰며 다시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에 대해 팀 회의 때 정리한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충격적이다. 그때는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헛점이 너무 많았다.
가장 큰 실수는 소극적 고객테스트 였다. 노무사님과 외국인센터를 만난 것 까지는 좋았지만 이메일로만 전국에 있는 외국인센터에 연락하고 기다린 것은 우리만의 데이터를 만들기에는 너무 소극적인 행동이었다. 보성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한민국 지역 농산업의 문제를 해결을 목적으로 가설을 세웠지만, 실질적으로 전국을 대상으로 아이디어를 검증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접근하기 유리한 곳에서만 검증 받으려 했다. 큰 마음 먹고 한국행을 선택한 것 치고는 안일한 선택이었다. 여사장과 내가 보성까지 가기 위해 들인 교통비만 400만원 이상이었다. 우리는 최소한 400곳은 방문해서 우리 아이디어를 물었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한국에서 100만원 광고비를 들이면서 아이디어를 검증 받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아이디어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유튜브나 인스타 같은 매체인데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구시대적으로 기관이나 업체에 이메일 보내는 것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했다. 참고로 그때 보낸 이메일은 약 30곳? 정도 되는데 답장은 한두개 왔나? 그마저도 다른 부서로 연락해 보라는 전달사항이 다였다. 그럼 우리는 왜 아이디어가 검증되었다고 착각 했을까? 노무사와 외국인센터 딱 2곳의 피드백을 받았을 뿐인데 말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너무나 성급했다.
대문자 XYZ가설은 쉽게 말해 예상 타겟 고객의 수와 행동을 숫자로 표현하는 가설 설정 방법이며, 소문자 xyz은 XYZ의 세부 액션플랜을 위한 가설을 작은 단위로 쪼개어 빠르게 테스트할 수 있도록 하는것에 그 목적이 있다. 가설은 괜찮았다. 다만 검증이 부족했다.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을 그대로 따라 하기로 하고, 따라 한 것 같았는데 왜 그때는 이러한 부족함이 보이지 않았을까?
오해하지말자. 비즈니스가 책을 보고 해도 어렵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남사장과 여사장의 메일리 뉴스레터는 우리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비즈니스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 생생한 경험담을 나누고 싶어서 만들었다. 무엇보다 비즈니스를 하는 우리도 이 글의 독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비슷한 눈높이에서 비슷한 생각을 한다고 전달하고 싶다. 세상에 성공한 많은 사업가들의 성공스토리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지금 막 시작한 초보 사업가들이 생생하게 겪어내는 너무 작은 일상의 도전들을 다루는 콘텐츠는 보지 못했기에....
그러니 비즈니스를 막연히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과정들이 얼마나 즐거운지도 우리 비즈니스 에세이를 통해 꼭 알았으면 좋겠고,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 꼭 기록으로 남기면서 복기할 것을 감히 조언하고 싶다. 이렇게 글로 우리들의 사소한 도전 에피소드를 정리하다 보니 정작 가장 많은 혜택은 우리가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 여사장과 나는 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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