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이미 보성에 위치한 이름 있는 녹차사업가와 인연이 있던 A씨.덕분에 우리는 첫 번째 프로젝트를 "보성 녹차 해외 판로 구축"으로 정했다.
남사장과 여사장이 독일에 거주하고 있었고, A씨와 B씨는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초기 사업 자금을 위해서 국가지원사업을 시도 하였다.
[남사장]
<친구의 친구> 컨셉으로 모인 우리 넷은 A씨의 제안으로 농업의 발전을 위한 컨설팅을 시작했고, 이를 대표할 수 있는 팀명 부터 정했다. 농업을 영어로 하면 'Agriculture'인데 현장에서 줄여서 '에그'라고 한다고 했다. 미래의 확장성을 위해 소리는 비슷하지만 좀 더 여러 의미를 담기 위해 Egg 라고 정했다. 컨설팅 고객을 파트너로 생각하여 컨설팅 한다는 의미까지 부여하여 '에그 파트너스'가 탄생했다. 정확하게는 아직 등록을 한 상태가 아니라 비공식적이지만 우리 4명은 소속감도 가지게 되었고, 우리나라 농업 발전이라는 큰 꿈을 같이 꾸게 되었다.
대망의 첫 프로젝트는 녹차 브랜드의 해외 판로 개척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일이었다. 국가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독일을 비롯한 해외 진출을 위해 홈페이지 제작, SNS 콘텐츠 기획 및 운영, 홍보자료 제작 등을 내용으로 하는 기획서를 작성하여 국가지원사업에 지원했다. 아무래도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소소하게 들어가는 유지비용이 있기에 돈이 필요했고, 우리의 아이디어를 평가받고 싶은 마음에 국가지원사업을 선택했다.
다행히 첫 국가지원사업에 지원한 것인데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그렇다.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4명이 나눌 정도의 수입은 아니었지만 유의미한 결과물에 우리 팀은 환호했다.
이 기세를 몰아 보성 녹차농장에 본격적으로 영업을 하기로 했다. 아직 타겟 시장이나 업체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우선, 우리를 알릴 수 있는 회사 소개서부터 만들었고, 독일 유명 차 박람회 참가, 고부가가치 전략 등을 비롯하여 한국과 독일에서 할 수 있는 프로젝트 제안도 함께 담았다. 지금은 이렇게 몇 줄로 당시 상황을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만드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캔바(Canva)라는 플랫폼 활용도 어색했지만, 어떻게 우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워낙 우리 4명은 아이디어가 많았다.
업체를 만나서 컨설팅 계약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핵심 역량 사업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았다. 그 중 우리가 한국 지역 농산업에 대한 방향성을 6차산업 콘텐츠 (6차산업이란 농촌의 부가가치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산업으로 농산물같은 1차의 유무형 자원을 활용하여 2차 제조가공으로 다양한 제품을 제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농촌과 제품을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3차 체험관광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로 선정하여 집중하였는데 당시 치유농업과 같은 6차산업 콘텐츠가 핫 트렌드 였기 때문에 잘 타겟팅을 했다고 생각했다.
여사장의 전공 중 하나인 미술치료를 이용해 녹차농장과 연결하여 독자적인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프로그램의 메뉴얼화를 통해 쉽게 운영하고, 확장시킬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나저나 여사장은 갑자기 녹차 박사가 되어 소름 돋았다. 차 산업에 대한 정보와 트렌드 등을 현장에 있는 사람만큼이나 알고 있는 것 같아 신뢰감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심지어 갑자기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다며, 독일의 차 문화와 소비 패턴 등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대단하다. 아무리 역동적으로 비즈니스를 하려고 모였지만 동전 뒤집듯이 이렇게 휙휙 할 수 있는 것인가? 여사장의 행동력에는 거침이 없었고 이 부분은 지금 우리의 최고 장점 중 하나이다. 남사장 또한 그런 점을 많이 배우고 있다.
A씨가 섭외한 보성녹차농장이 있다고 들었고, 여기 대표님을 직접 만나 우리를 홍보하고, 준비한 프로젝트들을 소개하여 컨설팅 계약을 따자고 했다. 설득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팀원 전체가 보성에 모이기로 했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가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돈과 상황과 이해관계 등 많은 것이 요구되었지만,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표의식과 확보하지 못한다 해도 이런 경험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아 기꺼이 남사장과 여사장은 비행기에 올랐다.
[여사장]
"커피와 차는 공존할 수 없다."
이 생각에는 사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 차도 같이 즐겨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대한민국은 절대적으로 커피의 나라이고, 차를 마시는 젊은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다. 화가 많은 민족이라 그런지 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대니, 더이상 설명은 필요치 않아 보인다.
당시에 나는 독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하루에 엄청나게 쓴 독일식 블랙커피를 세 잔 이상 흡입하던 시기였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두통에 시달릴 정도로 커피 혹은 카페인 중독증이 심했다. 그만큼 커피를 달고 살았고, 차를 멀리했다. 이상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중간에 차를 마시면 어지럽고 속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상관 이랴.
리더인 A씨가 제안한 아이템이면 그냥 닥치고 하는 거다.
프로젝트 아이템이 정해진 날부터 바로 녹차에 관한 독일 서적을 아마존에서 주문했다. 녹차의 역사와 재배지에 대해 공부했다. 또한 녹차 밭과 연관 지어 해볼 수 있는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내 전공을 살려서 치유와 농업이 공존할 수 있는 일종의 치유농업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려고도 해 보았다. 그리고 독일에 차를 팔려면 독일 현지에서 소비자들이 어떤 종류의 음료를 어떤 식으로 즐기는지 현장에서 관찰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그냥 지나치던 동네 작은 까페에서 당시 내 독일인 룸메이트와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이런 까페에서 일해 봐도 재미 있겠다' 라고 생각했다. 동네에서만 10년째 까페를 하고 있는 곳이라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앉아 계시지만, 가격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사장이 참 재미있는 인도 사람이었다. 그렇게 별 생각없이 일 주일 후, 다시 운동을 마치고 지나가던 길에 바로 그 까페에서 아르바이트 구함이라는 쪽지를 보았다. 나는 운명이라 생각했고, 그 쪽지를 보자마자 내 룸메이트를 꼬셔서 커피한잔 마시고 가자고 했다. 그리고 사장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 까페에서는 상대적으로 드물게) 젊은 여자 손님 2명이 지난 주에 이어 또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니 사장이 아주 반가워 하며 버선발로 우리를 맞았다. 사장이 커피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저 쪽지 떼도 될거 같다." 라고 말했다. 아시아 여자가 난데없이 남의 업장에서 쪽지를 떼라 말라고 하니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도계 자영업자 사장이 약간 어이 없이 되물었다.
"왜?"
"내가 여기서 일 하려 구요. 그러니까 딴 사람 뽑지 마요."
아마 까페 사장은 당시에 내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터였다. 정규직으로 직장 잘 다니고 있는 30대 직장인이 왜 파트타임으로 동네 까페에서 알바를 한단 말인가!? 독일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나는 사장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은데, 태어나서 돈 만져본 일이 없다. 장담컨대 당신은 적어도 한 가게의 사장이니 현금은 나보다 훨씬 많이 만졌을 것이다. 허드렛 일도 좋으니 자영업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보고 배우고 싶다."
여담이지만 내 당돌하고 열정적인 출사표에 꽤나 감동을 받았던 사장은, 나 때문에 자기도 백만장자가 되겠다며 돈돈 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분 와이프 말씀에 의하면, (나는 사장도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 때문에 변해서 백만장자가 되기 위해 일을 더 많이 하는 바람에 가정에서 와이프 분과 보내는 시간이 많이 줄었는 후문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여기다가 우리 녹차를 팔아볼까? 라고 생각하며 투잡을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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