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모처럼 <비즈니스 4주 챌린지>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남사장과 여사장은 멘토의 조언에 따라 아이템을 기획하고 점검하는 동시에, 독일에서 기업인수를 위한 후보 업체를 찾느라 분주했던 7월 어느 날.
여사장은 강릉세계합창대회 통역 봉사를 끝낸 후, 독일에 들어오자마자 비즈니스 모델 벤치마킹을 위해 독일 쾰른 행사장에 출장을 간 상태 였고, 남사장은 <경단녀 프로젝트>, <독일 유학/취업 개인 컨설팅> 등으로 정신 없을 때 A씨가 단톡방에 짤막한 메세지를 남긴다.
" ...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네요. 혹시 이번주에 두분 시간을 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여사장]
'별거 아니겠지.'
평소에 워낙 차분하던 A씨 였지만 A씨도 결국에는 20대의 젊은이 였기에 죄송한 말씀이라는게 30대 후반의 남사장과 나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겠거니 넘겨짚었었다.
당시에 나는 이미 연 초에 몇백만원을 주고 예약해 놓은 독일 쾰른 자기계발 행사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런 형태의 자기계발 세미나를 한국에서 본 적이 없었기에, 언젠가는 하나의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지역 축제의 일환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였기에 수도권 집중 과밀화가 특징인 대한민국에 균형개발을 위한 하나의 좋은 솔루션으로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검토가 가능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1박 2일 행사에서 1일차 강연들을 들은 뒤, 기분좋은 설레임으로 A씨를 줌으로 만났다.
아무생각 없이 그저 반가웠다.
그런데 눈치없는 내 눈에도 A씨의 안색이 꽤나 안 좋아 보였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A씨는 대표 자리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거 같다는 의사를 힘겹게 밝혔다. 남사장은 일단 보류의 시간을 갖고, 2주 뒤 다시 이성적으로 논의해 볼 것을 제안했다. 나는 그런 남사장의 이성적인 판단에 감탄했다. 나라면 감정이 앞서 그런 대안을 제시할 수 없었을 듯 하다.
A씨가 사임 의사를 밝혔을 때, 그 이유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A씨를 사기꾼, 배신자라고 낙인찍었다. 엄청난 분노가 일었다. 지금 중요한 행사에 내 정신을 오롯이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이게 무슨 일인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는지.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잠이 오지를 않았다. 살의가 일었다.
지금까지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으며 그래서 A씨가 잘 되기를 누구보다 바랐다. 때로는 나와 의견이 맞지 않아도, 회사의 입장에서 대표의 의견을 먼저 존중하려 했고 그게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한 마디 상의조차 없이 그만 두겠다니! 기본적인 매너도 갖추지 않는 이런 사람이었나. 아. 내가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구나 라고 그 때부터는 자아비판을 시작했다. 최대한 대범하게 굴어보려, 다음 날 중요한 행사에 집중하려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나쁜일은 한번에 몰려왔다.
애써 눈물을 삼키며 세미나를 듣고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10년간 함께 지낸 룸메이트에게 메세지가 왔다.
'아무래도 넌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것 같아. 너 예전에는 그렇게 자기계발이니 세미나에 돈 쓰지 않았는데 니 분수에 맞지 않게 돈을 갖다 바치는 걸 보니 좀 걱정이 된다. 나는 너가 돈에 눈이 멀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이든 상관없지만, 잘 될거 같지는 않다. 심리학을 전공한 내 눈에는 너가 정상이 아닌거 같아. 아무튼 니가 행사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면 되도록 서로 마주보고 대화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 '
한방 크게 얻어맞는 느낌은 들었지만, 어제보다는 괜찮았다. 그 새 맷집이 늘었다.
정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을 대부분 책으로 학습한 나는 이런 일도 대운이 몰려오기 전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 겪는 일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이론으로 알고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그냥 '이제 곧 대운이 들어오려나 보군.' 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애써 웃어 보았다.
[남사장]
전화보다 문자로 소통하는 것이 점점 익숙해지다보니 이모티콘이나 점(.), 물결(~) 하나에도 말하는 사람의 의도나 뉘앙스를 바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나 평소와 다른 글이라면 더욱 이상함을 느낀다.
제일 먼저 떠나간 B씨가 할 말이 있다고 했을 때도 그랬고, 갑자기 죄송하다며 보낸 A씨의 카톡을 본 이날도 그랬다.
"또 헤어지려나?"
하지만 B씨와 다르게 A씨는 우리 팀의 수장이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최근 우리에게 이전과 달라진 것을 생각해봤다. 멘토가 생긴 것 말고는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멘토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나 싶었지만 역시는 역시다.
그렇게 우리 3명은 늘 만나던 줌 미팅에서 만났지만 그날의 주제는 늘 하던 이야기가 아니였다. A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팀에서 나가야 할 것 같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참으면서 활동을 했는데 더이상은 무리일 것 같다고 했다. 하긴 정확한 기간은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A씨가 우리와의 프로젝트를 대함에 있어서 예전 같지 않았다고 생각은 들었었다.
오늘 이야기를 들었다고 바로 헤어지는 것 보다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A씨가 회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미를 주고 싶었다. 몇 주 몇 달이 되어도 좋으니 대표 사임이라는 중요한 결정을 아픈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하지는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 동안의 업무는 여사장과 내가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고 판단했었다. 헤어짐을 결심한 애인을 붙잡기 어렵 듯 시간만 끌었고 결국 헤어지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나가는 마당에도 나와 여사장은 A씨를 붙잡고 솔직한 피드백을 부탁했다. 나와 여사장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일한 시간이 꽤나 있는 A씨의 피드백은 우리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가지 긍정적인 부분, 부정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골자는 아래와 같다.
처음에는 수면시간까지 갈아 넣는 나를 비롯해, 퇴사까지 하고 본격적으로 24시간 비즈니스만 생각하는 여사장과 함께 빠른 일처리가 장점이었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이러한 업무 스타일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미팅마다 바뀌는 아이디어, 1주일동안 만들어와야 하는 결과물, 한국에 있던 A씨가 혼자서 처리 해야할 행정적인 일 등.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심적 압박감과 따라주지 않는 건강 상태가 더 이상은 스타트업의 업무량을 따라가기 어려운 듯 보였다. 그리고 A씨는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생각보다 더 진전이 없는 회사 매출에 대한 고민도 덧붙였다.
법인 설립이 5월이었다. 고작 2개월만에 대표가 사임이라니!? 아마도 A씨의 피로는 법인 설립 이전부터 쭉 축척 되어 온 듯 하다.
여사장과 나의 기억 속에서 커뮤니티 사업의 아이디어는 처음부터 A씨로부터 나왔다. A씨의 비전에 도움이 되기 위해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하였고, 실제로 프로그램으로 기획하여 위임까지 한 상태였다. 그 중 몇몇 프로젝트들은 이제 막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여 작지만 수익화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것을 전부 취소하게 되었다. A씨는 생각보다 모이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커뮤니티 활동이 예상처럼 순탄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나에게는 얼마짜리 사업이든 몇 명이 모였든가와 상관없이, 금액을 지불한 내 고객들에게 서비스가 취소된다고 번복하는 것이, 고객과의 신뢰를 깨트리는 것이 죽기보다 더 괴로웠다. 그렇게 진행하던 몇개의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시중지 및 취소되었다.
그럼에도 나쁘게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20대 젊은이가 독일에서 산전 수전 다 겪은 30대 후반 직원들을 데리고 경영을 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웠을까? 대표라는 직함이 처음에는 멋지게, 나중에는 무겁게, 그리고 마지막에는 무섭게 느껴졌으리라.
여사장과 내가 둘 다 독일에 있던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라, 대표 사임과 관련된 행정업무와 관련해서는 A씨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죄송했다. 감사하게도 건강이 좋지 않던 상황에도 불구하고 회사 등기변경 및 중요 서류 전달과 같은 행정 업무를 마무리 하고 떠나면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회사 이름부터 바꾸어야 하나?'
앞으로 여사장과 둘이서만 회사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다. 지나간 것 보다는 앞으로 해 낼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은 빨리 흘렀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제는 그 때의 일을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뉴스레터로 적어낼 수도 있게 되었다.
나와 여사장이 이렇게 성장 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준 A씨에게 이제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건강히 다시 웃으며 사업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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