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장]
독일 10월 날씨는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종잡을 수가 없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가 더웠다가 추웠다가, 비나 눈이 올 때도 있고 심지어 우박을 경험할 수도 있다. 10월에는 24시간 동안 사계절을 전부 경험할 수 있다. 아마 이런 이유로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야외 스포츠 행사는 주로 9월에 거의 다 끝내는 것 같다.
오죽하면 옥토버페스트도 이름이 10월 축제인데 9월에 하겠나?!
하지만 우리는 10월 26일에 호기롭게 날을 잡았다. 올해 안에 행사를 열고 싶은 열망과 더불어 최근 잘 진행되고 있는 메인 프로젝트들을 신경 쓰느라 축구 일정을 계속 미뤘다ㅠ 다음에는 꼭 여름 전이나 8월 말, 9월쯤에 하고 싶다.
아무튼, 10월 25일까지 전형적인 독일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계속 흐린 날씨가 이어지고 있길래 비만 안 오길 바랐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당일에는 정말 오랜만에 깨끗하고 청명한 하늘과 화창한 날씨, 적당히 선선하면서 바람도 거의 없는 정말 축구하기 딱 좋은 날씨가 우리를 맞이했다.
좋은 시작을 등에 업고, 대회 1시간 전부터 본부 테이블을 세팅하고 각 팀의 주장을 만나 일정과 규칙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 후, 무엇보다 다치지 않게 대회를 즐길 수 있도록 독려하며 축구 대회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2팀이 나와 총 5팀으로 대회를 치렀고, 대회는 풀리그 방식(참가팀끼리 한 번씩 경기를 하는 방식)으로 순위를 정한 후, 순위에 따라 정해진 토너먼트를 치러 우승을 정하도록 했다. 상금이 없는 대회였지만, 다들 축구인이라면 갖고 싶어할 우승컵과 득점왕, 대회 MVP라는 명예를 위해 열심히 경기에 임했다. 정말 다시 한번 참가 팀들에게 감사드린다.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대회는 계획대로 잘 진행되었다. 레드카드가 2번 정도 나오는 열정 넘치는 장면도 나왔지만, 순간적으로 화를 냈을 뿐 경기장 밖에서 다시 화해하는 등 경기 운영에 대한 불만도 따로 없어 심판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여사장 덕분에 나도 한국 2팀으로 출전해 경기를 소화했는데 놀라운 점은 내가 경기를 하는 동안 여사장이 구경 온 사람들, 쉬고 있는 선수들에게 다가가 우리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대단하시다. 의외로 현장에서는 온라인보다는 옛날 방식의 종이 양식지가 효율적이라며, 종이를 들고 우리 협회 회원을 늘렸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한국 팀들은 3위와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예멘은 5위, 2위는 인도네시아, 우승은 마다가스카르가 차지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우리 한국 2팀에 5골로 득점왕 선두가 있었는데, 결승전에서 마다가스카르 공격수가 2골을 넣으면서 득점왕도 넘겨줘야 했다. 내심 우승컵 중 한 개는 우리가 가져가길 희망했는데...
대회 이후에는 협회 센터에서 뒷풀이가 있었다. 센터가 아직 100% 완성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지 확인차 피자와 핫도그, 맥주를 잔뜩 준비해 뒷풀이를 했다. 평소 종종 한국 팀들과 축구를 하곤 했지만, 사석에서는 처음 만났다. 우리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축구와 독일 생활 등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준비한 축구 대회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이번 축구 대회는 우리 이름으로 사람을 모아 진행한 의미 있는 이벤트였다. 축구 선수뿐 아니라 구경 온 사람까지 합쳐 약 100명 정도가 모여 함께 즐겼는데, 첫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독일과 유럽에 있는 언론에서도 우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신기하면서도 더욱 동기부여가 되었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매년 대회를 개최할 생각이고, 2025년 여름에는 우리와 협약을 맺은 축구팀 구장에서 3대륙 월드컵을 열 예정이다. 벌써부터 즐겁다. 몸을 잘 만들어놔야겠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축구라는 주제로 열린 행사였기에 다음에는 여사장이 좋아하는 주제로 열리는 이벤트도 한번 적극적으로 추진해보면 좋을 것 같다.
[여사장]
당신에게 전문 지식이 없는 분야로 프로젝트 하나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마무리해 보라는 미션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내가 겪어 본 99%의 사람들은 모두 입으로는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더 잘할 수 있어"라는 말을 쉽게 내뱉으면서도, "그럼 정말로 결과와 상관없이 프로젝트를 한번 진행해 볼래?"라고 물으면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거의 100%의 확률로 "내가 그 분야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없다" 혹은 "실패할 것 같다"고 전망한다.
즉,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전문성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남사장이 축구 대회를 진행하면서 설명해 준 토너먼트와 리그의 차이를 모르겠다. 남사장 입장에서는 워낙 기본적인 상식이라 알아 두는 게 행정 진행에 도움이 되기에 열심히 설명해 주셨는데, 내 입장에서는 들어도 모르고, 몰라도 아쉽지 않을 만큼 관심조차 없는 내용이었다. 그 정도로 축구라는 아이템은 나라는 인간과는 일절 관련이 없는 분야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잘 아는 분야도 아니며, 수익성이 뛰어난 분야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프로젝트를 이어 나가는 이유는 뭘까?
첫 번째로는, 행사를 통해 지역 사회에 우리 협회의 존재를 알릴 수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경험을 통해 업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며,
세 번째로는 해보지 않은 행사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기회가 있는 법이다. 이번 행사를 통해 교포 신문과 독일 온라인 미디어 채널에 우리 협회의 존재를 알릴 수 있어서 마케팅 홍보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으며, 한인 커뮤니티 내에서는 실제 행사를 주최하는 협회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행사에 참여한 분들 중 다수가 협회에 가입했다. 이처럼 행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오래 걸렸을 작업을 한 번의 행사를 통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밖에도 협회 사업과 관련하여 도움이 되는 정보와 인도네시아 대학과의 컨택 가능성도 높일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축구팀 선수 중 1명이 우리의 협회 소개를 듣더니 기꺼이 한 대학을 소개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행사가 매우 즐겁고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기에 우리를 좋게 봐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날씨 또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10월이 전년보다 훨씬 더 따뜻해서 야외 활동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으며, 함께 참여한 국제 팀들도 다들 너무나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해 주어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행사였다.
축구 경기의 룰을 모르는 나는 채점이나 경기 진행 순서와 같은 실무 행정을 남사장이 만들어 준 경기 진행 안내서와 자동 채점 기능이 들어있는 엑셀 파일에 의지했다. 다시 한번 정확한 업무 분담과 업무 지시, 그리고 디지털 자료의 활용이 얼마나 업무 노동 강도를 완화할 수 있는지 피부로 깨달았다.
행사를 통해 영업이익을 남겼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수지타산이 맞는 장사였다고 평가한다.
때때로 수익이 나지 않는 프로젝트를 어떻게 이어 나갈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나는 이렇게 비유해 보고 싶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미래에 반드시 한 번은 크게 아플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아이들에게 음식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며 키우지는 않는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아플 수도 있음에도 말이다.
대신에 건강히 잘 자랐으면 좋겠고,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사회에서 훌륭한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당장은 모든 지출이 출산 전에 비해 더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자식에게만큼은 최선을 다한다. 이와 같은 현상을 이성과 논리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사업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사업가의 시선이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나에게 수익을 만들어 주지 못하더라도, 이 아이템의 성장 가능성, 그리고 사업체의 성장 가능성, 무엇보다 나 스스로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사업은 영양가 있는 좋은 프로젝트들을 거름삼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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