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친구의 친구> 라는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관계에 관한 책이다. '느슨한 유대관계'를 강조하는데 커뮤니티 운영과 참여에 대한 바이블과 같은 책이라 생각한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특별한 재주도 없고, 전문성이 없는 사람도 관계를 통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본인에게 없는 능력을 가진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통해 서로를 보완하면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이 말로 인해 더 이상 재능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아이디어가 없어서 등 사업을 하지 못하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변명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였다.
[남사장]
정확한 시점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22년 3월쯤 <친구의 친구>만 믿고(?) 무작정 운영하고 있던 독서모임방에 함께 프로젝트를 하자며 모집 글을 올렸다. 내가 운영하던 온라인 독서모임 카톡방에는 150여명이 있었고, 그 중 약 15명 정도가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했다. 약 10%의 참여.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모임의 목적은 메타버스에 독서모임을 만들어 유료 서비스, 광고, 뉴스레터 등 비즈니스 모델을 붙이고자 했다. 당시 자기계발과 함께 메타버스도 정말 핫 키워드였기 때문에 이를 반영한 것이고, 2D 기반 메타버스 중 하나인 '게더타운 (Gather Town)' 플랫폼을 이용했다. 메타버스에서 24시간, 언제든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함께 읽고 쓰고 나누면서 성장하는 것을 꿈꿨다.
호기롭게 시작했다. 각자 역할도 나누고, 1주일마다 모여 진행상황도 공유 했다. 없는 시간, 있는 시간 쪼개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러나 한주 한주가 지날 때마다 모임 인원은 점점 줄어 들고 있었고, 줄어드는 사람만큼이나 외로운 운영을 했다. 내가 열심히 하면 사람들이 참여하겠거니 했고, 무엇이 문제인지도 몰랐고, 함께 하기로 하고 아무 반응도 없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거나,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2022년 7월 14일. 정말 감사하게도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하려고 했던 A씨에게 프로젝트를 접겠다고. 죄송하다고 카톡을 보냈다. 그렇게 나의 첫 <친구의 친구> 모임은 실패로 끝났다. '메타독서관' 아이템 실패에 대한 상실감은 사실 별로 없었다. 배운대로 실패가 기본값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잘 운영하지 못하고, 대응하지 못한 부분에서는 실망했다. 역시 독서만 한다고 해서 실력이 느는 것이 아니더라. 직접 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카톡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A씨가 메인으로 진행하는 <친구의 친구> 모임을 다시 내가 운영하던 독서모임방에 홍보하여 사람을 모았다. 나와 A씨가 다시 함께 하였고, 이 때 B씨와 여사장이 합류하여 총 4명이 모였다. 첫번째에 비하면 아쉬운 참여율이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첫번째 모임보다 훨씬 더 잘 운영되었고, 유의미한 결과물도 만들 수 있었다.
A씨는 20대로, 지방 농업산업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고 싶어했다.
B씨는 두 아이의 엄마로, 경력이 단절된 영어 선생님이었고, 다시 경제활동을 희망했다.
여사장은 한동안 독서모임에 꾸준했다가, 또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가 이 모임을 계기로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여사장은 그간 독서 내공이 상당해진 느낌이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자기계발이나 부자 관련 주제로 많이 읽은 티가 팍팍 났다.
<친구의 친구> 개념을 이해하고, 적용하고 싶은 4명이 모여 비즈니스를 직접 해보기 시작했다.
[여사장]
독서모임을 시작하고, 어느덧 1년이 흘렀고, 그 사이 "1년동안 독서 100권"이라는 목표도 이루었다.
나만의 원칙으로 잠을 줄이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늦은 시간에 열리는 독서모임 참여를 최대한 자제했다. 그러다보니 남사장이 이끄는 독서모임에는 어쩌다 잠이 도통 안 오는 날 정도에만 기웃거렸다. 그러던 중 독서모임 카톡방에서 <친구의 친구> 콘셉트로 아이디어를 실행한다는 프로젝트 공고를 보았다. 모집 공고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사업 어쩌고, 느슨한 관계 어쩌고 했었던 것 같다.
친구가 없는 나는 <친구의 친구>라는 책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책 내용도 당시 나에게는 별 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런데 왜 그 그룹에 들어갔냐고? 느슨한 유대를 기반으로 네트워킹을 한다는 콘셉트가 좋았다. 나처럼 사람 보는 기준이 지랄맞고 평소에 친구 없는 인간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이겠구나 싶기도 했다.
또 한가지 이유로는,,, 그간 자기계발분야 책만 집중적으로 읽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무조건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 마음에 안 들어.'
'귀찮아서 그냥 안 할래'
'있어 본적은 없지만 너무 작은 소모임에 들어가는 건 별로야.'
지난 날의 허세와 버릇이 올라 올 때 마다, 반항하듯이 나의 에고의 외침을 힘껏 무시했다.
그렇게 1년 전의 나였다면 뭔가 폼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절대로 하지 않았을 작은 규모의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그룹에는 나 보다 딱 열살 어린 A씨가 모임을 주도하고 있었다. 본인이 책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현실화 시켜보는 실험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A씨는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었던 것처럼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도 차분하게 자기 소신과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세상 풍파에 초연한 듯 흔들리지 않는 목석 같은 신뢰를 주는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어린 나이에 독서를 하고 그룹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늘 사람이 불편하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것에 공포마저 있던 나는 A씨를 보며 알 수 없는 경외감 마저 느꼈다.
그리고 곧 B씨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일하는 방식으로는 B씨가 훨씬 좋았다. (다음에 이유를 공개하겠다.)
나는 좋은 말로 하자면 자기주장이 강한 인간이고, 강한말로 하자면 싸이코다.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한 방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보기 보다는 단칼에 잘라내는 스타일이었다. 예전에는 그랬었다. 하지만 1년동안 자기계발, 부자, 성공철학을 다룬 책들만 100권을 본 내가 아니던가? 더 이상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던 나는 내가 원하는 템포와 방향성이 아닐지라도 모임의 리더 A씨가 제안하는 프로젝트를 군말없이 적극적으로 응원하며 참여했다.
그리고 내가 A씨를 존중할 수 밖에 없는 매우 개인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A씨 처럼 20대 였을 때, 나는 매일 매일 세상을 원망했었다. 세상을 원망하려고 만들어 놓은 완벽한 시나리오도 있었다.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꿈꿨지만, 교대에 진학하기를 강요하는 부모 때문에 꿈을 접고 반항하며 살아가는 고독한 청춘. 어릴 적 매일같이 싸우던 부모님. 어린 동생들 때문에 받아 보지 못했던 관심. 그로 인해 언제나 덩치 값 못하고 지나치게 조용하고 말이 없었던 어린 시절. 겉보기에 이정도면 꽤 쿨하고 아티스트적인 스토리이지 않은가? 부모가 나를 잘못 길러서 내가 이렇게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는 싸이코 아웃사이더가 되었다고…. 그렇게 부모 원망 하느라 허망하게 20대를 다 보낸 나에게 스스로의 의지로 대학을 중퇴하고, 20대부터 독서를 시작하여 제일 존경하는 외할머니를 롤 모델삼아 3대째 집안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가문의 사업을 위해 농업경영을 꿈꾸며 사람을 모으고 이끄는 A씨는 성스러운 존재였다.
내가 가져본 적 없는, 그래서 너무나 가지고 싶은 그런 이상적인 모습을 A씨를 통해 투영해 보았다.
그런 A씨가 자기 집안 사업 아이템을 활용해서 우리에게 첫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이템을 가져다 쓰자고 하시는데 거절하는 크리스천이 어디 있으랴. (이것은 비유이다. 나는 종교가 없다.)
나는 은혜를 입었다며 마음속으로 할렐루야를 불렀고, 그렇게 첫 프로젝트의 서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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