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이전 에피소드 [잘생긴 사람이 마음도 좋다는건 https://maily.so/egg.diary/posts/f9ac32a5] 에서 소개 된 잘 생긴 대상 수상자분의 소개로 애견관련 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는 현직 투자펀드 운용사 분의 연락처를 받을 수 있었다.
조언대로 바로 그 날, 2023년 12월 30일 밋업 행사가 끝나고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기 전,
메일로 투자자 분께 우리 회사의 IR 자료 피드백을 주실 수 있는지 연락을 남긴다.
과연 남사장과 여사장은 지난 번 대상 수상자의 피드백에 이어, 또 한번의 귀인을 만날 수 있을까?
[남사장]
경험이 상당한 투자 전문가의 눈에 우리 사업 아이템은 어떻게 보일까?
내 주변에는 내가 하는 사업에 대해 또렷하게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신나게 깨져도 좋으니 속 시원한 피드백을 받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심지어 현직 투자운용사이자 전문 투자자가 우리의 사업제안서를 봐 준다니!
우리 사업아이템 피드백을 위해 시간을 내 준 것 자체가 감사했다.
'신나게 깨져도 좋아! 피드백을 받아볼 수 있다니! 너무 신난다!'
하지만 너무 순진했던 걸까?
피드백은 그야말로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대략 45분가량 비판 폭격이 쏟아졌다.
그 동안 잔잔한 바다 같던 내 삶에 해일이 몰아쳤다.
사업계획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파트는 아무래도 비즈니스 모델이다.
어떻게 돈을 벌지에 대한 설명이 간단명료할 수록 투자자 설득에 유리한 것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몇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너무 창의적인 접근 보다는 이미 성과를 보이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차용하여 사업계획서를 완성시켰다. 기존에 있는 모델이라 설명도 간단하고 이해하기도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유투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같이 일반적으로 설명되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광고 수익 모델을 통해서 우리 사업아이템의 수익성을 검증하려 시도했다.
"광고수익. 좋죠. 그런데 광고수입 이외에 제공하시는 서비스 그 자체의 수익화 모델은 어떤가요?"
"지금 제안하신 서비스 모델을 통해 현재까지 벌어 본 금액은 얼마인가요?"
"여러분의 서비스 모델이 수익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인가요?"
...
'돈, 돈, 돈,,,,'
수익이 중요한 포인트인건 일반적인 상식 정도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돈의 흐름에 대해 그려보지는 못했다.
구체적인 다른 유사 비즈니스 모델에 관한 분석. 수치적 근거. 실제 성공 사례. 수익화 경험. 실 구매로 이어질 수 있는 고객 확보가 필요했다.
그렇게 모든 공격에 총알받이가 되고 있던 중, 또 다른 총알이 날아왔다.
"서비스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기술이 뭔가요? 팀원 중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나요?"
"아, 서비스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기술은 저희가 투자를 받으면 그 투자금을 가지고,,, 주절 주절..."
서비스 설명은 문장 하나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중간에 질문이 계속 들어와서 대답하느라 정신 없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온갖 대기업의 압박면접도 메시의 드리블 마냥 잘만 피해 다녔던 나다.
심지어 독일 공기업의 화학 필기시험도, 온갖 다이어그램을 그려가며 순발력을 발휘한 덕분에, 하노버 시에서 최고점을 받으며 합격한 나 였다. 그런 나를 이렇게까지 무용지물로 만들다니.
우리 서비스의 구체적인 프로세스와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부족했다.
MVP가 미완이라 직관적으로 보여 줄 수 없었던 부분도 아쉬웠다.
그리고 날아 온 마지막 총알!
"제가 이 분야에서 디바이스 개발을 하고 있어서 잘 아는데요, 이런식으로는 고객의 구매를 유도하기 어려울 거예요."
그 유명한 그거 내가 해봐서 아는데 * (주로 높으신 분들이나 자칭 달인들이 시전하는 클리셰 중 하나이다. 이 발언으로 가장 유명했던 사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이 있다. 출처> 나무위키) 공격이 들어왔다.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마치 벽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외침이 반대편에는 닿지 않는 듯 답답했다.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되다 보니 미팅 전과는 다르게 점점 풀이 죽어갔다.
초반에 눈을 사로 잡는 사업제안서가 아니면 안 읽어요,
폰트와 글자 크기가 안 맞으면 안 읽어요,
최근 트랜드와 안 맞으면 안 읽고,
초보처럼 보이면 안 읽고,
너무 얇으면 안 읽고,
두꺼우면 안 읽고,
.
.
.
"이미 잘 된 사업계획서를 보고 최대한 따라서 만들어 보시기를 추천드릴게요."
'아...네...'
[여사장]
많은 사람들이 보고도 믿지 못하는, 아니 나를 실제로 보면, 보았기 때문에 더더욱 믿지 못하는 사실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내가 미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놀랍겠지만 나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4년제 미대를 졸업하고 (게다가 나름 디자인과 ㅋ ), 그리고 독일에서도 미술관련 학과를 전공했다.
어려서 부터 소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림그리는걸 좋아하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교대가라는 부모님한테 반항하느라 미대에 갔다.
바로 전 에피소드[나는 너가 더 사기꾼 같거든?https://maily.so/egg.diary/posts/7e8b6c1c]에서 밝혔다시피, 집안에서 음악하는 걸 반대했다.
반대정도만 했으면 굳이 미대를 가진 않았을 듯 한데,
거기다 적반하장으로 교대를 가란다.
빡이쳤다.
미대를 갔다.
미대를 나왔으니 미적 감각이 조금은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계신다면 큰 오산이다.
나를 실제로 만나 보면 한 방에 이해가 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미대를 나왔다는 것에 단 한가지 이유로 자부심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맷집이다.
나는 미술을 전공한다는 것은 까이고 발리는 비평과 비판, 때로는 비난으로부터 맷집을 쌓아가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얼굴에 철판을 까는 작업이 미술을 전공해 나간다는 뜻이다.
솔직히 학생이 만든 작품에 뭐 그리 큰 뜻과 혁신성이 들어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대가* (대단한예술가의 줄임말) 코스프레를 하고 허세를 부리며 교수님들의 질문세례를 방어 해야만 하는 것이 미대의 세계이다.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구요, 저건 저렇게 하면 안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런 사업제안서에 투자 아무도 안 해요."
'아, 네.'
보통의 초보 스타트업 팀들이나 20대의 젊은 분들께는 꽤 혹독한 비판 세례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말도 안 통하는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직장생활까지 하며 나름 맷집으로는 월드클래스인 나와 남사장이 아니던가?
그리고 솔직히 누가 아무 이유 없이 거의 한 시간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에너지와 시간을 써 가면서 굳이 날카로운 말들로 조언을 할까?
나는 이것 또한 애정이고 사랑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 애정과 사랑으로 맴매를 하셔서 아프긴 했지만 ㅎ
보통 이런 매운맛 비평을 받으면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눈물도 좀 흘리면서 자기성찰의 시간으로 승화시키기도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여러가지 비판적 피드백에도 불구하고 결단코 이 아이템을 포기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수익성이 없어 보이는 아이템이기에, 조급해 하지 않고 꾸준히 개발하다 보면 경쟁하지 않고 시장을 독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 아이템은 진짜 되려나 보다!'
100억단위의 투자금을 운용하는 투자자 눈에는 수익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1000억 단위의 투자자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나는 어떻게든 이 아이템을 1000억 단위 투자자들에게 다시 한번 선보이고 싶어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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