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이전 에피소드에서 소개한 비즈니스 챌린저스 행사와 동시에 서울테크밋업 스타트업 챌린지의 IR 제출 마감일 또한 12월 22일이었다. 제출 마감 5일전, 우연히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공모를 보게되었고
남사장과 여사장은 한치의 타협도 없이 동시에 2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기로 한다.
평소 눈여겨 보고 있던 반려동물 시장에 관한 아이템으로 서류를 준비하고 제출해 본다.
서울테크밋업은 동대문에서 12월 30일에 진행되었다.
33:1의 경쟁률을 뚫고 서류심사에 합격해야 투자자들 앞에서 사업아이템을 발표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과연 남사장과 여사장의 사업아이템은 이 피튀기는 스타트업 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남사장]
지원사업은 우리처럼 아이디어에서 시작하는 스타트업에게는 상당히 달콤한 제안이다. 많은 종류의 국가 지원사업을 통해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든 창업자들의 후기에 우리들의 이야기도 실리길 희망하며 지원사업에 대해 알아보던 중 여사장이 <서울테크 스타트업 챌린지>를 소개했다. 항상 어디서 이런 정보를 알아오시는지! 마른 땅에 오아시스 같은 정보라 그냥 넘길 수 없어 무조건 지원해보자 했다.
<비즈니스 다이어리>를 통해서 몇 번 지원사업을 했던 경험을 공유한 바, 잘 된 것도 있고, 잘 안된 것도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잘 안된 적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지원사업이 사업 아이템의 흥망성쇠를 측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위로를 기반으로 자체적인 피드백을 통해서 지원사업의 내용물들을 점차 발전 시켜나가고 있었다.
내용적인 측면 만큼이나 긍정적인 부분을 여사장이 언급했다.
"우리가 준비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네요."
그렇다. 많은 지원사업을 준비할 때 여유를 가지고 준비를 했던 것은 예창패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길게는 1주일 남짓, 짧게는 2일만에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 지원사업 공고를 보곤했다. 우리가 준비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정보력이 조금씩 상승한다는 것인데, 이와 반대로 지원 서류를 작성하는데 드는 시간은 줄고 있으니 뭐랄까… 점점 효율성도 올라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스타트업 지원사업이라 최대한 창의적으로 우리의 아이디어를 소개하는데 집중했다. 우리가 창의적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투자자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비춰질 수 있는지는 다음 에피소드에서 더 자세히 밝혀질 예정이다.
[여사장]
'아, 이런 실수를!'
평소 아무리 작은 행사를 다니더라도, 심지어 내가 회사 대표가 아니었던 시절에도 항상 직함을 이사, 임원, C레벨로 등록하여 진지한 자세로 박람회를 보고 바이어들과 대화를 나누려 노력하던 나였다.
실제로 당장 진행하기에 무리가 있는 규모의 아이템들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박람회에 참여한 대표님들 혹은 이사진들과 명함을 교환하곤 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엄청난 스케일업을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나는 어떤 자리에 가든 크게 생각하고 다른 성공한 사업가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번 서울테크밋업 행사에는 회사 대표가 아닌 다른 C 레벨로 내 직함을 등록했었다. 남사장과 내가 공동대표였기 때문에, 공식적인 직원이 없는 상태에서 대표만 2명이라 표기하는게 팀의 능력을 다양하게 보여주지 못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내 직함을 대표가 아닌 다른 c 레벨로 표기한 것인데, 대표직함이 아니라는 이유로 네트워킹을 위한 원탁에 앉을 수 없었다. 원탁이 아닌 자리는 일반 관람석으로 대부분은 발표를 위해 참가한 회사의 직원들이나 지인들이 앉는, 발표무대와는 거리가 조금 떨어진 계단식 좌석이었다.
다행히 한국에서 행정일을 도와주기로 한 남사장의 지인과 함께 관람하기로 하였기에, 계단에 함께 앉아서 의견을 나누며 발표를 듣는게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냥 발표만 들으러 온게 아니었던 나는 이런식으로 네트워킹의 기회가 제한 된다는게 답답했다.
'내가 앉아 있을 곳은 저 원탁인데...'
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하지만 원탁에 앉아 계신 분들을 잘 살펴보니, 이게 스타트업 행사가 맞는건가? 하는 물음표가 생겼다. 독일에서 여성 스타트업 행사에 참여했을 때에는 정말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뒤셖여 있었다. 그리고 스타트업 밋업 행사의 특성 상,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이 네트워킹을 위해 모이는 것이 주를 이루기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원탁에 모인 사람들의 85퍼센트가 남성이었고, 연령의 평균이 50대 정도 되어 보였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인걸까? 한번의 경험으로 일반화 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이 날의 경험이 독일 행사만 참여하던 나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기조연설과 서울시 선정 우수업체 대표들의 사업 소개가 이어졌고, 그 뒤 순서로 드디어 스타트업 챌린지의 33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5개 업체들의 피치가 있었다.
역시나 발표의 퀄리티는 대한민국 다웠다. 5분이라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일목정연하고 논리적으로 사업의 개요에 대해 정확하게 전달하는 발표자들을 보면서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분명 너무 떨려서 목소리와 다리가 사시나무 처럼 떨었으리라!
발표가 끝난 뒤에는 준비된 식사 시간이 있었다.
네트워킹을 위해 만나는 밋업 행사였지만, 자연스러운 네트워킹은 불가했다. 다들 규모가 있는 회사들이었고, 회사 대표와 직원들이 함께 모여 있었기에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들 서류심사에 통과하고 모인 사람들이었기에 그들만의 리그가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밋업 행사라고는 했지만 사실 상 심사가 이루어지는 자리였기 때문에, 서로 계급장을 다 내려놓고 프리토킹만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도 했다.
그렇게 행사가 마무리 되어 가고 있었다. 다음 이벤트 때문에 장소를 모두 비워야 하기에 더 머무를 수도 없었다.
'이제 20분 남았군... 이렇게 정말 명함 한장 교환 못하고 끝나는 건가? '
그럴 수는 없었다. 혼자였다면 정말 너무 쑥스럽고 어색해서 이런 행사에는 참가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독대표가 아니었다. 함께 사업을 준비하는 동료가 있었고, 그 동료는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다. 나의 불편함을 감수하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했다.
"저 잠깐만요. "
"아, 저기 다른 대표님들이랑 네트워킹 하시려구요?"
"네. 저는 여기 목적이 있어서 온 거라 이렇게 그냥 집에 갈 수는 없거든요. 잠시만 혼자 음식 드시고 계시겠어요? 명함 5개만 뿌리고 올게요. "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발표자 5명과 명함 교환이나 하자고 앞으로 나간 나는 일찍 자리를 떠난 1개 업체 대표님을 제외하고 4명과 명함을 교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상을 받은 분께는 축하의 인사를 함께 전했다. 실제로 그 분이 발표를 정말 잘 하셨기에 진심에서 우러 나오는 존경을 담은 축하였다. 명함을 교환하려 가면서 너무 긴장이 되는 나머지 핸드폰은 자리에 두고, 프린트 해온 우리 사업제안서를 파일로 손에 쥐고 있던 나에게, 대상을 수상하신 발표자 께서는 내가 손에 쥐소 있던 발표자료를 한번 봐도 되냐고 물으셨다.
이곳 저곳에서 축하 인사를 받고 언론 인터뷰를 하느라 식사도 못 하셨던 수상자분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한장 한장 우리의 사업제안서를 훑어 보시면서 몇 가지 개선 사안을 짚어 주셨다. 대상 수상자 특유의 여유로움과 배려일까?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책에서만 봤었는데, 이렇게 실물로 영접하다 보니 정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 분의 마지막 멘트는 감동 그 자체였는데.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잖아요. 포기하지만 않으면 분명히 성장합니다. 잘 될 거예요.
제가 반려동물 아이템을 다루는 투자자를 알고 있는데, 연락처를 드릴게요. 바로 연락해 보세요. 화이팅이요!"
그리고 나이스한 미소까지.
성공하는 사람의 관상이란게 이런걸까? 그냥 그 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모든 기운이 너무나 긍정적이어서 이 사람이 대상을 받는게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명함 교환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자리를 함께 해 주신 분께서 정확하게 팩트를 짚어 주셨다.
" 여사장님, 대상 받은 분은 솔직히 인간적으로 너무 잘 생기셨네요."
명함을 교환해야 된다는 생각만 하고 너무 긴장하고 있어서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그렇다. 대상을 받으신 발표자분은 너무 심하게 잘 생기셨던 거다.
내 심장이 그렇게 터질 듯 뛰었던게 과연 우리 회사 아이템을 가지고 대상 수상자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 만이었을까?
나는 다시한번 참 사업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면서 서류 심사에 탈락한 아쉬움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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