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국, 혹은 귀국 소감문

안녕하세요, 구독자.

상은입니다. 

토론토에 돌아와 편지를 씁니다. 지금은 해가 아직 뜨지 않아 캄캄한 새벽이에요. 

지난 일요일에 도착한 이후로 천천히 시차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후까지는 그럭저럭 지낼 만한데, 저녁 먹은 후 8시쯤이 고비입니다. 그때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깐 잠이 들었다가, 자정쯤에 일어나서 후다닥 잘 준비를 하고 다시 침대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오늘처럼 새벽 서너 시쯤 한 번 더 깨기도 합니다. 전날 저녁에 편지를 보내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잠이 들었다가 눈 뜬 김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이니 밤이 길어요. 해가 뜨고 지는 시간대는 한국이랑 비슷합니다. 오전 8시가 다 되어서 해가 뜨고 오후 5시면 해가 져서 저녁 8시쯤 되면 한밤중 같아요. 이번 주는 날씨가 유난히 추워서 바깥은 거의 안 나가고 해가 뜨고 지는 걸 창 밖으로 내다보기만 할 듯합니다.

이미 겨울이 시작하던 시점에 떠났다가 돌아왔더니, 해가 바뀌었어도 풍경은 거의 그대로입니다. 

그래서인지, 재입국 첫 소감은 '실감이 안 난다.' 였어요. 

한국에 다녀온 두 달 동안 긴 꿈을 꾼 것 같아요.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막 낮잠에서 깬 것 같았어요. 꿈속에서 너무 많은 사건이 벌어져서 일어나도 피곤할 때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여기가 내 집인가?' 하는 생각도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집'이란 뭘까 고민했는데, 내가 지냈던 모든 집이 다 '집'이다, 이 집도 집이고, 대구 본가도 집이다, 내 가족이 살면서 날 반겨주면 거긴 내 집이다, 그런 미지근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 우리 집 고양이 킷캣은 저를 다시 보자마자 반겨주진 않았어요. 현관에 들어섰을 때 눈을 마주치고 그대로 침대 밑으로 들어가서 잠깐 숨어 있었는데, 츄르 하나를 먹은 후에 저를 예전처럼 대해주고 있습니다.

여행이 끝나면 짐은 바로 정리하는 편입니다. 

그동안 캐리어 하나 분량 옷가지로 돌려 입다가, 옷장과 서랍장을 열어 보면서 뭐가 이렇게 많나, 사람 사는데 그렇게 많이 필요한 거 아니네! 생각했어요. 그런데 올리브영과 다이소에서는  뭘 또 그렇게 많이 샀는지... 

일단 책상 위에 올려둔 잡다한 것들도 제자리를 찾아주고, 마지막 주에 입었던 옷들과 꼬질꼬질해진 패딩도 빨래하고 널어두었습니다.

이제 찾아야 할 건 일상의 감인데, 서두르지 않으려고요.

돌아온 지 사흘이 지났더라고요. 아직은 서울과 대구, 토론토 그 어느 중간 태평양쯤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 들어요. 영원할 것 같던 13시간 비행은 끝났으니, 낯익지만 낯선 기분을 시차와 함께 잘 맞춰가는 것이 이번 주를 지나는 제 목표입니다. 

다음주 편지에서는 어떤 기분으로 무슨 내용을 쓰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편지를 마무리하는 동안 해가 뜨네요. 여긴 이제 수요일 아침입니다. 

구독자, 어디에 있든 건강하고 따뜻하게 잘 지내길 바라요.

2024년 1월 17일

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