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스러운 토요일

안녕하세요, 구독자.

상은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눈이 내려서 밤이 된 지금까지 밖이 뿌옇습니다. 매섭게 얼어붙은 날씨는 지나간 대신, 조금 축축한 겨울날이었어요. 

지난 토요일에는 오타와에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러 다녀왔어요. 오타와는 제가 사는 곳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있어요. 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 남해까지니까 참 먼 거리인데, 여기서는 '그 정도면 갈 만하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당일치기로 다녀왔거든요. 

아침 9시쯤 출발해서 중간에 기름 한 번 넣고 나니까 오후 3시에 시작하는 경기를 볼 수 있더라고요. 경기 다 보고 바로 돌아오니 자정 전에 집에 도착했어요.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오는 길에 숙소 잡고 하루 묵을 준비도 해갔는데요, 운전하느라 남편이 고생했지만 역시 집이 제일 마음 편합니다.

아이스하키 경기는 어릴 때 미국에서 한 번 구경한 이후 처음이었어요. 링크와 적당히 가깝고 골대가 잘 보이는 좋은 자리를 구해서, 선수들이 서로 부딪치고 퍽이 날아다니는 걸 생생하게 볼 수 있었어요. 아이스하키는 공수 전환이 빠르고 움직임이 거칠어서 눈을 잠시도 뗄 수 없고 쉴 틈 없이 도파민이 터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아이스하키 직관할 때는 캐나다 아재들도 순간적인 탄식을 넘어서 빡침을 억누르는 소리와 선수들을 향한 아무 말... 그런 것들을 뱉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언젠가 라이온즈 구장에서 들어본 것 같은, 그런 강성팬덤의 격한 응원과 격려, 지지를 담은 소리요. 지난 여름에 토론토 블루제이스 경기는 몇 번을 가도 들어본 적 없었는데 말이죠.

이날 오타와 세네터스와 위니펙 젯츠 경기는 연장까지 갔다가 세네터스가 졌어요. 홈팀이 져버리니까 갑자기 경기가 종료되고, 마치 마법이 풀린 듯 캐나다 아저씨들은 아이들과 다정하게 집으로 돌아갑니다. 

왕복 여덟시간 당일치기로 다녀온 아이스하키 경기라니, 돌아온 지 딱 일주일 만에 보낸 가장 캐나다스러운 토요일이었어요.

그다음 날부터 저는 다시 한국이라는 마법이 풀린 캐나다 취준생이 되었습니다. 요새는 구인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넣고, 관련된 사람들을 링크드인에서 찾아서 호기롭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동안 해온 일은 일종의 본능이나 현업의 감을 믿고 가야 하는 것들인데, 여기서도 그대로 살릴 수 있을지 살짝 걱정됩니다.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력서에서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과감히 바꾸어야 할지 고민해 보려고요. 

이번 주 근황은 여기까지예요. 한 주가 길다가 또 금방 지나갑니다. 마지막 취준 이야기가 진지했지만, 하루에 대부분 시간을 잘 놀고 잘 쉬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다음 편지를 쓸 때면 벌써 1월도 끝이네요. 새해 첫 달 잘 마무리하길 바라요, 구독자.

2024년 1월 24일

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