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을 여행하는 법

안녕하세요, 구독자.

상은입니다. 

이번 편지가 늦어서 미안합니다. 약속한 수요일이 채 30분도 남지 않은 야심한 시각에 편지 쓰기를 시작했어요.

지금 서울에 와 있어요. 지난 11월에 잠시 들렀다가 이틀 만에 할아버지 부고를 듣고 대구에 내려갔거든요. 그때 취소한 약속에 아쉬움도 많이 남았는데, 마침 수술 후 한국에서 보내는 기간이 길어지고 체력이 올라오는 김에 기회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제 ‘내 집’이라고 부를 곳이 없으니 이 도시도 여행지입니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보는 풍경이 낯설지는 않지만, 지난 십여 년 동안 해왔듯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새로운 숙소를 찾아간다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이번 여행의 숙소는 창덕궁이 보이는 작은 방입니다. 다행히 적당한 가격에 조용하고 깔끔한 곳을 찾았어요. 고급 호텔처럼 체크인하는 순간부터 내가 쓴 휴가비가 어느 구석구석에 녹아있나 찾는 재미가 있는 룸은 아니고요. 원래 여기 사는 사람인 듯 자연스러운 척 들어와서 옷을 툭 걸고 침대에 누워 있기 좋은 방입니다. 

구독자, 언젠가 서울의 자취생인 듯 여행객인 듯 지내보겠다 생각이 든다면 여기를 추천할게요. 

오늘은 친구들과 만나서 제법 여행인 듯 좋은 저녁을 보냈어요. 안국역 근처 카페에서 소금빵 하나, 핫초코 한 잔을 먹고, 종각역 근처에서 닭 한 마리를 먹고, 광화문과 청계천을 걸으며 야간 조명을 구경했습니다.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서울 곳곳에서 익숙하지만 낯설고 재밌는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대충 아는 동네 가서 아는 얼굴들 보고 아는 맛으로 밥 먹고 커피 마실 거고요. 카톡이나 디엠으로는 다 못하는 그런 수다도 좀 떨고요. 그러다가 ‘예전엔 이런 거 없었는데!’ 같은 실없는 감탄도 좀 해보려고 합니다. 이건 제가 서울에서만 할 수 있는 여행이니까요.

작년에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때는 ‘언제 다시 이렇게 보겠어’라는 마음으로 초조하고 피로했는데, 이번에는 ‘잘 지내다 이렇게 또 보면 좋겠네’하는 생각에 한결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아쉬움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만큼 좋은 만남이라는 뜻이겠죠.

이번에 제가 갑자기 한국에 와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또 언젠가 벼락처럼 기쁜 일로 다시 볼 수도 있는거니까요. 

구독자, 새해에도 잘 지내요 우리. 

2024년 1월 4일

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