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ueer, 그리고 대도시의 사랑법

안녕하세요, 구독자

상은입니다. 

지난주는 유난히 긴 느낌이었어요. 여기 토론토는 추석도 연휴도 아니었는데도요.

다시 구직자로 돌아가 열심히 채용공고를 뒤지고, 이력서와 지원서를 쓰고, 필요할 때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연락해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도 하고요.  지난 겨울 취업준비 때도 그랬지만, 나를 어떤 단어로 소개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던 한 주였어요.

하루에 수십 개씩 이력서를 넣으면서도 이 편지를 어떻게 쓸지 생각도 많이 했어요. 이력서나 커버레터처럼 해야하기 때문에 AI를 시키는 글쓰기가 아니라, 내가 한 줄 한 줄 두드려서 쓰는 글쓰기가 주는 편안함과 재미가 있거든요.

그런 동시에, 하루종일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나면 어떤 순간에는 더 이상 한 글자도, 단 한 번의 클릭도 더 하기 싫어질 때도 있어서 편지 쓰기를 주말로 미뤘습니다.

그새 희미해져가는 tiff 영화 관람기를 어서 남기기 위해 지금 일요일 밤에 자리에 앉았습니다. 

오늘 편지에서는 영화 두 편을 이야기 할거에요.

Queer (2024)

감독: Luca Guadagnino |  출연:  Daniel Craig, Drew Starkey

Queer Poster (Source: imdb)

먼저 영화 'Queer'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의 전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을 빼놓을 수 없겠죠. 고백하자면 저는 이번 상영회를 앞두고 며칠 전에서야 이 유명한 영화을 보았어요. 

이번 'Queer'는 또 같은 감독의 최근 작품 '챌린저스 Challengers' 각본가와 같이 작업했다고 하는데, 아직 '챌린저스'는 보지 않아서 직접 비교는 어려울 것 같아요. 

영화는 늦은 밤 9시가 한참 넘어서 작지만 화려한 Princess of Wales Theatre에서 상영했습니다. 상영 한 시간 전부터 극장 주변에 관객들을 줄 세우고 삼십분 전부터 입장할 수 있는데요. 입장을 기다리면서 슬쩍슬쩍 주워듣기에도 많은 사람들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떠올리면서 '퀴어'에 대해 기대하는 것 같았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퀴어'는 많이 다른 영화에요. 

'퀴어'에도 물론 아름답고 단정한 화면과 상징적인 모티프가 들어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해석이 가능해보입니다. 하지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궁극의 미감을 추구하면서 조심조심 잘 빚어낸 영화라면, '퀴어'는 주제의식 아래에서 모호하고 불안하고 불친절(혹은 불쾌)한 지점까지 질주하는 것 같았어요.

오래된 극장 맨 뒷줄에서 양 옆 사람들과 어깨가 닿을 만큼 좁은 자리에 앉아 숨을 참아가며 본 것도 한몫했던 것 같아요. 영화 보고 나와서 친구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다고 했거든요.

무대인사에서 감독이 '아주 오래 전부터 꼭 만들고 싶었던 소설 원작'이라고 신나게 이야기하고, 배우 드루 스타키는 '난 아직도 (캐릭터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한 점도 흥미로운 포인트고요.

그리고,

대도시의 사랑법 (2024) 

감독: 이언희 | 출연: 김고은, 노상현 

이 영화는 박상영 작가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에 실린 첫 단편인 '재희'가 원작입니다. 

저는 5년 전쯤 이 책을 읽었어요. 대부분 단편이 단숨에 읽을 만큼 재치있었지만, '재희'가 가장 인상깊었어요.

대학가 근처 꼬불꼬불 이어지는 연립주택들, 그 안에 알알이 들어찬 월셋방. 살게 없어도 들어가는 편의점, 작은 동네 카페,  가로등 아래 수북한 담배꽁초. 느릿느릿 쪼리를 끄는 사람, 한짐가득 백팩 맨 사람, 그리고 그 사이를 질러가는 스쿠터.

소설 '재희'를 읽으면서 그런 것들이 생각났거든요. 학교를 졸업하고도 한동안 살았던 그 자취방이랑 특히 늦은 밤에 비스듬히 올라가던 언덕길도요.

영화는 원작 속 2010년대 캠퍼스와 그 안팎에서 일어나는 두 사람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오는데, 차이가 있다면 소설에서 1인칭 주인공인 '영이'가 영화에서 '흥수'로 바뀌면서 약간 시선이 달라졌어요. 아마 남성 작가의 원작으로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인 점에서 영점 조정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서 재희와 흥수가 각각 영화 속에서 겪어나는 갈등도 좀 더 또렷해졌어요. 아마 재희는 현실에서 저랑 비슷한 나이일테니, 때로는 재희에게서 예전에 나와 내 친구들이 보이다가, 어디선가 들어봤던 내 또래 누군가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당일에는 특히 김고은 배우에 호감을 갖고 영화를 보러 온 아시아계 여성 분들이 많이 보였는데, 제가 추억에 잠겨서 영화를 보는 동안 이분들은 어땠을지 궁금했어요.

잘 깎아둔 캐릭터에 비해 납작해보이는 마무리는 조금 아쉬웠지만 유쾌하고 귀엽게 본 영화였습니다.

Queer, 그리고 대도시의 사랑법 

'Queer'와 '대도시의 사랑법'은 다르지만 또 비슷한 영화기도 해요.

둘 다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소설 원작이고, 각각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두 인물의 관계성을 다룬다는 점이에요.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한 사람과 그를 지켜보면서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사람. 

영화 속 여정이 끝났을 때, 두 사람이 각자 바라는 바를 이루는 해피엔딩처럼 보여요. 그러면서 어쩌면 이제 그럼 서로가 의미있던 순간도 함께 끝난 것이 아닐까, 둘의 관계는 이어질 수 있을까 상상해봅니다.

한편으로는 시절인연처럼 지금은 멀어졌더라도 함께한 그때가 의미있다면 굳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친하게 지냈답니다'는 꽉 닫힌 관계성 엔딩이 아니라고 해서 아쉬워하진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하고요.

구독자, 나중에 혹시 두 영화를 관람하게 되거든 어땠는지 알려주세요. 궁금해요. 

그럼 우리는 다음에 또 다른 얘기해요. 안녕. 

2024년 9월 22일

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