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scrap of this week'는 1️⃣ 듄의 사막, 2️⃣ 모로코와 문문문, 3️⃣ 이브 생 로랑의 정원에서 입니다.
그 외에도 모로코에서 먹은 음식들에 대한 단상, 정말 아름다웠던 모로칸 수제 러그에 대한 감상도 스크랩에 꽉꽉 눌러 담았답니다. 제 글씨가 작아서 읽기 힘들 것 같지만요. 언젠가 실물 스크랩을 보여 드릴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1️⃣ 듄의 사막
듄의 사막, 사하라 사막을 밟았습니다.
영화 촬영지는 아니고 원작 소설을 쓴 프랭크 허버트가 영감을 받은 곳입니다.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보고, 소설도 흥미롭게 읽었던 지라 관심이 생겼어요. 유럽에 있는 지금이 가장 접근성이 좋고, 6월에는 더워서 가기 힘들다는 말에 당장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제가 사는 자를란트 근처의 공항에서는 마땅한 직항이 없고, 그렇게 모로코에 도착해서도 왕복 20시간의 택시를 타야 사하라 사막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저는 1박 2일 사막 투어를 예약하고 갔는데요, 낙타를 타고 가다보면 어느 순간 모래와 간간이 보이는 풀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당도하게 됩니다. 높고 낮은 사구만 가득하고, 핸드폰 데이터도 터지지 않아요. 언뜻 바다인가 싶었던, 언제가는 모래가 될 검은 돌더미와 흩날리는 모래 바람이 전부 입니다. 그늘에 있어도 바짝 마를 듯 피부에 강하게 느껴지는 열기도요. 사막이라는 게 뭔지 조금 쯤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내 듄을 생각했습니다. 물이 아주 귀한 듄이라는 행성과 공기 중에 떠다니는 스파이스 입자, 사구를 오르면서 프레멘들이 왜 그렇게 걷는 지 (모래 벌레가 아니더라도)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듄 ost를 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낙타를 타고 있을 때는 제가 튼 음악이 낙타를 자극할까봐, 내려서는 완전히 까먹어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갔던 날은 구름이 많고, 달도 너무 밝아서 아름다운 노을도 쏟아질 것 같은 별도 없었어요. 하지만 저의 목적은 듄의 사막을 맛보는 거였기 때문에 아쉽게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충분한 경험이었습니다.
2️⃣ 모로코와 문문문
문을 열면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을까?
옷장 문을 열면 사자와 마녀가 나오는 어린이 소설이나, 미래에서 온 고양이 로봇이 주머니에서 쉽게 꺼내주는 문 말고, 아예 다른 세상에 도착해서 발견한 문은 어떨까?
모래 바람에 벗겨진 알록달록한 철문에 새겨진 마름모, 아치, 하트. 때로는 문 앞에 세워진 기둥과 뾰족하고 좁은 아치형 출입문.
마라케시 시내보다, 사하라 사막보다 이름모를 길을 달리며 주택가의 문을 관찰할 때 비로소 모로코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음을 실감한다.
우리는 분명 마법의 문을 열지 않아도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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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일까요? 낯선 곳에 가면 다른 집들의 문이, 창가에 놓아둔 화분과 잘 가꾼 정원에 눈이 갑니다. 모로코에서는 예쁘게 장식된 문을 잔뜩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저마다의 문양과 색감을 지닌 문을 보면서 문득 모로코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나 노트에 휘갈겼던 감상입니다.
3️⃣ 이브 생 로랑의 정원에서
이 여행의 큰 목표 중 하나는 마조렐 정원에서 피에르 베르제가 쓴 편지와 이브 생 로랑의 발자취를 발견하는 거였어요. 그걸 위해 비행기에서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를 다시 읽고, 정원에도 챙겨갔습니다. 걷기 괜찮은 시간을 신중히 골라 정원 입장권도 예매했고요.
정원은 아름다웠어요. 관리도 잘 되어 있었고, 인파도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하늘까지 뻗어 원근법을 파괴하는 야자수와 사람 한 둘은 잡아먹었다 해도 놀랍지 않을 것 같은 크기의 거대한 선인장, 아름다운 푸른 타일로 마감하고 가운데 작은 분수대를 둔 사각형의 연못까지. 아프리카식 정원의 아름다움은 이런걸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입생로랑의 흔적을 쫒아왔다면 실망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건물은 들어갈 수 없게 막혀 있고, 식물의 이름, 관람 방향 등 정원 감상에 관련된 정보 외에는 별다른 설명이 있지 않았거든요. 그들의 흔적은 메모리얼 비석 정도에서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여행을 완성시키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가져간 김에 포토존에서 찍겠다고 꺼낸 책을 계기로 문학과 카프카를 좋아하고 법을 전공한 가드와 이야기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이 짧은 대화가 마조렐 정원과 제 모로코 여행의 마침표를 긍정적으로 찍도록 했습니다.
정원을 나오면서 앞으로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를 10년은 더 좋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편지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이 여행을 계획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책이기도 합니다.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는 이브 생 로랑의 장례식 추도문으로 시작해 피에르 베르제가 그들의 지난 50년을 짚어 올라가며 쓴 편지를 엮어낸 책입니다.
21년도 2월, 이 책을 처음 발견했던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카페에서 깔루아 밀크를 시키고 필사를 위해 모눈 다이어리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문장의 아름다움과 완결된 사랑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어서 단 한 문장도 옮겨 적지 못했습니다.
단숨에 마지막 장까지 내달리고 싶다는 마음을 누르고 책을 조금 남긴 채 찬 공기를 쐬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책을 아껴 읽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이 책은 제게 아주 소중하고 중요한 책이 됩니다. 독일로 떠나면서 챙겨갈 책으로 고를 정도로요.
이번 모로코행 비행기에서 이 편지를 다시 읽었습니다. 10번도 넘게 읽은 책인데 다시 한 번 울었습니다. (비행기 양 옆자리에 아무도 없었던 게 다행이지요.) 언제쯤 이 책을 읽고 울지 않을까요? 그런 날이 언젠가 온다면 부디 아주 천천히 와주길 바라며 마지막 편지의 문장을 조금 옮겨적습니다.
이 편지에는 단 한가지 목표가 있었지.
우리의 삶을 결산하는 것.
네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온 과정을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
이 글이 너의 재능, 너의 취향,
너의 명민함, 너의 다정함, 너의 부드러움,
너의 힘, 너의 용기, 너의 순수함, 너의 아름다움,
너의 시선, 너의 청렴한, 너의 정직성,
너의 고집과 욕구를 보여주기를.
너를 걸을 수 없게 했던 그 거인의 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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