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간 기준으로 정오를 맞춰야 하는데, 무심코 독일을 기준으로 예약 발행을 해두었어요.
기다리셨다면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벌써 6월이 되었습니다. 제가 독일에 온지도 2달이 지났고요.
저는 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했어요.
떠나올 때는 이 생활이 너무 꿈같다면 계획한 날짜보다 몇 달 더 머무를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돌아가기로 한 날짜에 가기로 했습니다.
남은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치열하게 기록 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이 주의 'scrap of this week'는 1️⃣ 숭고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2️⃣ 플라멩코 공연, 3️⃣ 스페인 광장과 세비야에서 먹은 것들 입니다.
세비야는 모로코를 가는 직항이 애매하고, 거리도 멀어서 간 김에 스페인도 여행해보자 하고 결정한 여행이었어요. 그래서 티켓 예약도 어디를 갈지도 정하지 않고 왕복 비행기표와 숙소만 예매해 뒀답니다.
모로코 공항에서 세비야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대충 구글 지도에 갈 곳을 찍고, 도착해서는 여유롭게 걸으며 도시를 구경했어요. 대부분 도보로 움직일 수 있는 거리에 성당이나 광장 등에 앉아서 쉬기 좋은 장소도 많았답니다.
1️⃣ 숭고함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세비야 대성당과 살바도르 성당을 다녀왔습니다.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고딕 성당이라고 해요. 살바도르 성당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고요. 모태 신앙 천주교 신자였고, 독일에서 고딕 문학 수업을 수강하고 있는 저는 이 두 성당에서 제법 흥미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들었던 두 가지 의문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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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 받은 이름을 버릴 수 있을까?
유럽에 와서 느낀 건 내가 어린 시절에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행이라는 거다. 피아노 반주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주일에는 결코 약속을 잡지 않고, 첫영성체 때에도 가장 많은 기도문을 외운 어린이였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한 번도 신에게 간절히 바라는 걸 빌어본 적 없는 신자이기도 했다.
하느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불꽃처럼 영광을 노래한다는 가장 높은 천사인 '세라핌'에서 온 내 세례명과는 달리, 성당을 다니는 내내 나에게 타오르는 신앙은 없었다. 결국은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어린 양이 될 때까지 늘 의문이 가득했을 뿐.
그럼에도 이것들은 내 습관과 정신으로 남아서, 나는 여전히 길에서 죽은 동물을 보면 성호를 긋고, 방문하는 성당에서는 주기도문을 외며, 성모 마리아의 미묘한 시대적 차이를 궁금해한다. 신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는 이들의 흔들림 없는 신앙을 부러워한다.
언젠가 다시 보지 않고도 믿는 행복한 자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한 번 받은 이름을 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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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고함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세비야 대성당은 정말 크고 볼거리도 많았지만 웬지 질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드높은 성당 천장까지 빼곡하게 세겨놓은 금박 조각은 경건한 마음이 들게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살바도르 성당에서 세비야의 슬픔의 성모상에서는 그런 마음이 들 듯도 했다.
이스터에 교황님이 돌아가신 뒤 내게 머무르는 질문이 있다. 숭고함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왜 세비야 성당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숭고함을 프란체스코 전 교황님께는 느끼는 걸까? 성당에 앉아 이런 생각을 하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이는 세비야 탑을 오르며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지만 답을 얻지는 못했다.
장엄하다는 바로크 오르간 소리가 궁금해 미사에 참석하고 싶었는데, 참석했다면 어쩌면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2️⃣ 플라멩코 공연
세비야 전통 예술인 플라멩코 공연을 봤습니다.
미리 예매해야 한다는 글이 많아서 알아보고 예매할까 하다가 민박 사장님이 추천해준 로컬 공연장에서 공연을 봤습니다. 객석이 가까운 작은 스테이지, 관록 있는 공연자들의 공연은 객관적으로 괜찮았으나, 사실 큰 감흥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공연은 한 시간 정도 했는데, 음악이 길어지면 쉽게 딴 생각에 빠져 순간을 자주 놓쳤거든요. 오히려 스페인 광장에서 버스킹하던 플라멩코를 더 집중해서 봤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종류의 공연 예술에 관심이 없다면 스페인 광장에서 플라멩코를 맛보기 하는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제가 본 플라멩코 공연은 기타 연주자, 노래하는 사람, 여성과 남성 댄서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기록을 남길 때는 정확한 명칭을 몰라 적당히 적었는데, 뉴스레터를 편집하다 각각의 명칭을 알게 되었어요.
노래, 기타, 춤은 플라멩코의 3대 구성 요소인데, 노래하는 사람은 칸타오르(칸타오라)라고 한다고 합니다. 기타 연주자는 토카도르(토카도라), 춤추는 사람은 바일라오르(바일라오라)라고 한다고 해요. 그리고 박수와 추임새가 플라멩코 공연 중간중간에 많은데, 박수 치는 사람은 팔메로, 추임새 넣는 사람은 하레오라고 해요. 제가 본 공연에서는 무대 구성원 모두가 팔메로와 하레오를 겸했습니다.
3️⃣ 스페인 광장과 세비야에서 먹은 것들
세비야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과 가장 아쉬웠던 것입니다.
스페인 광장은 낮고 넓게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과 광장을 둘러싸고 만들어둔 운하, 분수 모든 게 좋았습니다. 벤치에 앉아 노래를 듣다가 건물에도 올라가 보고, 플라멩코 공연도 보고, 운하를 따라 노를 젓는 관광객도 구경했어요. 아주 넓어서 사람이 많아도 한적하게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마음에 들어 첫날 아침에 방문하고, 다음날에는 노을이 지는 저녁에 광장에 앉아 일기를 썼습니다. 둘째 날은 주말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웨딩 스냅을 찍는 사람들이 한두 팀 보였습니다. 전에 베트남 호이안을 방문했을 때도 전통 드레스를 입고 웨딩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구경했던 적이 있는데, 저는 이런 비일상 속 일상의 풍경이 좋습니다.
세비야에서는 아쉽게도 먹은 게 거의 없습니다. 모로코에서 얻은 장염을 그대로 가지고 세비야로 넘어갔기 때문에 몸살과 배탈 증상이 세비야 여행 내내 있었거든요. 덕분에 음식은 거의 못 먹고 2리터 짜리 이온음료를 안고 돌아다녔어요.
여행에서 음식이 크게 중요한 편은 아니지만, 스페인에서 유래된 음식인 츄로스를 꼭 먹어보고 싶어서 아쉬워하다 결국 각오하고 먹었습니다. 100년 된 초코 츄로스 집이 세비야에 있다는데 너무 궁금했거든요.
우리가 아는 초코가 코팅되거나 초코 필링이 들어있는 츄로스 맛과는 달랐어요. 츄로스도 놀이공원에서 먹는 시나몬 설탕 맛이 나는 츄로스보다 훨씬 부피가 크고 내부에 빈 공간이 많았어요. 버터 없이 튀긴 크루아상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내부에 구멍이 많고 파삭했어요. 그걸 진한 핫초코에 찍어 먹는게 스페인 츄로스의 특징이에요. 핫초코지만 아주 진해서 초콜릿 중탕 같은 느낌입니다.
맛있긴 했지만, 다음에 생각날 것 같은 맛은 아니라 컨디션을 생각해서 다 먹지는 않았습니다. 세비야에 유명한 츄로스 집이 두 곳 있다는데 나머지 한 곳도 궁금해질 정도로 맛있지는 않은 정도랄까요. 놀라울 만큼 거의 먹은 게 없는 여행에서의 유일한 외식이었습니다.
오늘은 짧은 편지들에 대한 답장을 여러 개 모아왔습니다. 종종 하나의 긴 편지로 답장하기에는 분량이 적은 글들을 이렇게 묶어 전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영원님! 약 1년 후 독일 교환을 계획 중에 있는 학생입니다. 에타에서 보고 구독했어요. 저도 그릭요거트를 정말 좋아해요. 한창 잘 먹다가 요즘 뜸했는데 영원님 덕분에 다시 그릭요거트에 대한 흥미가 생겼네요ㅎㅎ 영원님은 특히 좋아하는 토핑이 있나요? 전 최근 동결건조 딸기 맛에 눈을 떠서 그릭요거트에 동결건조 딸기를 넣어볼까 해요. 독일에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토핑거리가 있을 것도 같아요ㅎㅎ 레터를 읽으니 지금 당장 독일로 날아가고 싶네요. 영원님의 앞으로의 일상도 기다리겠습니다. 항상 좋은 일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인생이겠죠?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길 바라고 설사 속상한 일을 마주해도 지금처럼 나름의 교훈과 재미를 느끼길 바랍니다! 츄스!
익명의 학우 님으로부터
그릭요거트를 좋아하는 눈송이분께.
여전히 그릭요거트를 좋아하고 계신가요? 어쩌면 3번 째 뉴스레터를 보고 궁금증이 모두 해소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도 요거트 바른 빵에 살구잼을 얹어 샌드위치를 해먹었습니다.
저도 말린 과일을 아주 좋아해요. 그래서 주로 말린 과일이 많이 들어간 그래놀라를 구입하는 편입니다. 요거트와 그래놀라, 과일 1~2종류(망고나 체리 같은 단 과일을 좋아해요)에 꿀을 뿌려 먹는 편입니다. 동결건조 딸기를 좋아하신다면 과일을 좋아하시는 걸까요? 독일은 과일이 아주 저렴해서 요거트 생활이 제법 풍족하답니다. 그리고 로즈만 같은 드럭스토어에 다양한 그래놀라와 말린 과일을 아주 많이 팔아요. 독일에 오시면 꼭 들러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독일에서의 삶을 계획하고 있다니 설레고 치열한 날들일 것 같습니다. 떠나오기 전의 저는 대체로 설렜으나, 고작 반년에서 일년을 보내는데 준비할 것들이 너무 많아 종종 수지타산에 안 맞다고 느끼곤 했거든요. 준비 과정에서의 고난도 독일에서의 적응도 송이는 저보다 순탄하기를!
캠퍼스에는 능소화가 폈나요? 그 쯤에는 항상 기말 기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기말 과제와 시험 공부로 바쁠 텐데 종강하고 행복한 여름 보내길 바라요.
캠퍼스와 도서관에서 바라보는 고양이들이 그리운, 영원으로부터.
영원님 안녕하세요? 영원님의 이름에 처음 이끌렸고, 책을 좋아하는 영상을 보고서는 글을 쓰시는지 궁금해졌고 구독까지 하게 되었네요. 영원님께 궁금한 게 정말 많아요. 제가 바라는 삶의 조각을 살아내시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고 영감이 많이 됩니다. 닮은 모양으로 저도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레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저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어요. 언젠가 영원님과 좋은 친구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어요. 이런 말은 친구가 된 다음에, 나 그때 그랬어 하며 이야기하는 게 더 알맞을지 모르겠지만. 모르겠어요 지금 말할래요! 아무튼, 저는 이곳에 온지 100일이 갓 넘었답니다. 출국하는 순간부터 기록으로 남기는 영원님을 보니 아, 나도 하고 싶었지 싶더라고요. 저도 곧 시작해볼게요. 그래서 질문이 뭐냐면요, 영원님이 직접 스크랩을 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커다란 종이를 구매해서 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좋아하는 노트에 차곡차곡 스크랩을 하시는 걸까요? 이 질문을 위해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는 게 방금 기억났습니다.
저는 인턴을 하기 위해 방문한 도시에서 뉴욕으로 가는 기차 안에 있답니다. 모쪼록 건강하시고, 웃음 가득한 일주일 보내시기를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여유 님으로부터
여유 님께.
영상을 보고 글이 궁금해 졌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기쁜 것 같아요. 텍스트에서 영상, 그리고 또 아주 짧은 영상으로 넘어온 시대의 흐름에 순응해 짧은 영상을 만들고 있으면서도 글을 사랑하는 걸 멈출 수 없어 뉴스레터를 쓰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닮은 모양으로 나아간다는 과분한 말을 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멋진 사람들을 레퍼런스 삼고 그들을 닮아가길 적극적으로 바라는 사람으로서 여유님의 마음이 아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뉴스레터는 A3 종이에 스크랩하고 있어요. 뜯어쓰는 수채화용 스케치북을 근처 화방에서 구입했습니다. 한페이지에 모두 넣고 싶어 노트가 아니라 큰 종이에 스크랩하기로 결정했어요. 따로 다이어리나 노트를 꾸미지는 않아요. 무언가를 꾸미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지만, 다꾸를 해보니 꾸미는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가 커 결국은 글을 쓸 힘이 부족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노트나 일기는 단색 펜으로만 채워넣습니다.
미국에서 인턴 생활 중 이시군요. 혹시 기록을 시작하셨나요? 만약 마음이 내키신다면 저에게도 자랑해주세요.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타지에서는 아니었지만 저도 독일에 오기 직전에 인턴을 했는데요,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했던 소중한 기억이었습니다. 여유님의 미국 인턴 생활도 그렇게 기록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요.
여유님의 예비 친구, 영원 드림.
안녕하세요. 영원님. 어느날 무한릴스 지옥에 빠진 중에 영원님이 나타났어요. 홀린듯 프로필 눌렀고 편지를 받을 수 있다는 그 글자만으로 바로 편지구독 눌렀어요. 편지를 잘 쓰진 못하지만 주고 받는걸 참 좋아하고 좋아했는데 요즘은 그럴 일이 없어서 더 그랬던 거 같아요. 벌써 네 번째 편지가 왔는데 이제서야 제대로 첫번째 편지를 읽네요. 전 독일하면 맥주, 소세지 이런게 생각나고 아 발음 어려운 나라! 정도로만 생각이 드네요.영원님의 6개월간의 독일생활 응원하고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하면서 두번째 편지도 바로 읽으러 가볼게요! 버킷리스트 달성하길 기원합니다 ㅎㅎ
밀 님으로부터
밀 님께.
두 번째 편지를 읽으러 가신다고 했는데, 여섯 번째 편지에 도착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첫 편지를 읽고 바로 답장을 써주시다니. 제가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이유는 편지를 받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답니다.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는 일은 정말 행복하고 소중한 일이니까요. 사실 매일 아침 답장 폼을 열어보는 걸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독일은 정말 소시지와 맥주의 나라가 맞습니다. 모로코 여행에서 만난 한 친구는 독일 맥주 도장깨기를 하고 있었어요. 베를린에 사는 그 친구에게 독일 맥주론을 한 시간 정도 들었습니다. 슬프게도 저는 둘 모두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요.
대신 저는 와인과 초콜릿을 잔뜩 먹고 있답니다. 독일까지 와서 와인이라니 할 수 있겠지만, 프랑크푸르트는 사과 와인의 발상지이고 주변 유럽 국가에서 와인이 들어와서 그런지 한국에서보다 저렴하고 맛있는 와인을 접하기 좋습니다. 주말 아침에 대충 모자를 눌러쓰고 드럭스토어에서 와인과 초콜릿을 구입해 갉아 먹으며 책을 읽거나 마감을 하곤 합니다.
밀 님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맥주나 소시지는 좋아하시나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 답장에서는 밀 님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밀 님이 궁금한, 영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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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고 떠오른 소소한 일상,추천하고 싶은 무언가,혹은그냥저에게전하고싶은말도좋습니다.편지란 거창한 게 아니니까요. 저는그걸읽고, 기쁘게다시답장을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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