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뉴스레터 연재를 시작하며, 나의 삶과 트라우마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고 선언했다. 트라우마? 삶과 가족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트라우마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트라우마를 가지기에는 충분히 괴롭지 않은 삶을 산 사람일 수도 있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 가끔 나이브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니까. 떠들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렇지만... 난 미친 여자인데? 라고 반박하고 싶다. 동시에, 네가 그렇게 미쳤어? 얼마나? 되게 대단한 상처를 갖고 있어? 주제에 트라우마를 얘기한다고? 너, 뭐 돼? 너보다 훨씬 미친, 너보다 과하게 망가진 사람 넘치게 많단 거, 잘 알잖아? 하는 의심의 회초리가 계속해 나를 때렸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우리는 각자의 삶을 절대로 실제로 알 수가 없고, 누가 더 미쳤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더 큰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니며.
... 하. 야, 너희들이 내 인생 살아봐. 나만큼 덜 미치는 것도 능력이다, 썅년들아. 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기에. (죄송합니다.) 이러나 저러나, 나의 발화 욕구를 잠재울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마음의 썩음을, 흉짐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앞으로가 없을 것 같다.
(르세라핌이 일찍이 노래했다. 내 흉짐도 나의 일부라면 겁이 난 없다고.)
오늘 이야기할 첫 번째 흉짐은. (첫 번째라고 해서 가장 최초라는 의미는 아니다.) 어느 에세이에서 발견했다. ‘나는 역겨운 인간들과 많이 섹스해봤다. 어찌나 역겹던지 그중 대부분에게서 돈이라도 받아 내야 했다는 생각도 든다.’라는 문장을 읽고 깊이, 깊이 공감했다는 이야기.
문제는 왜 역겨운 인간들이랑 섹스를 애초에 했냐는 것일 수도 있다. 네, 제가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서요.
나.도.쓰.레.기.라.서.요.
만족스러운 대답이셨을까요?
나와 같은 여성 정신병자들의 낮은 자존감은 자해섹스라는 종목을 만들어냈다. 자존감이 낮기에 팔리는 기분을 통해 정신을 채워야 하고, 팔리는 기분을 주는 것들에게 종국에는 섹스라는 보상을 줘야만 하는 체계이다. 딱히 섹스하고 싶지 않지만, 분위기상 그냥 하고야 만다.
(안 하고 걔네가 주는 팔리는 기분만 먹고 버릴 수도 있다. 아무튼, 그건 선택사항이다.)
같은 에세이에서 글쓴이는 여자들은 섹스를 통해 사랑을 찾으려 하고, 남자들은 사랑을 통해 섹스를 찾으려 한다는 소리도 했는데 난 이건 절대 공감하지 못했다. 난 그런 애들한테서 사랑을 원한 적도 없었다. 난 정말 아주 조금의 칭찬, 관심, 예쁨, 대화 같은 것들이 필요했을 뿐인데, 섹스는 과한 보상이라는 생각도 한다. 성병과 임신의 가능성이 있는 몸이 되어 혼자가 되었을 때 맞는 현타는 남자들이 혼자 딸치고 느낀다는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괴로울 거라고 장담한다.
신기하게도 그런 새끼들은 내가 얼마나 스스로를 보살피고 있지 않은지 귀신처럼 알아차렸다. 나는 취약한 사람을 낚아채고 사냥할 줄 아는 하이에나들에게 저항 없이 잡아먹혔다. 솔직히 그러기를 바라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버린 사람처럼.
여자를 존중하지 않는 놈들은 일 푼도 지불 하지 않은 주제에 전부를 구매한 듯이 굴었다. 에세이의 저자는 돈을 받기를 진심으로 원하지는 않는다고, 비유라고 했다.
난 비유 아닌데. 진심인데.
가능하다면 그 새끼들한테서 10만 원이라도 삥뜯고 싶은 심정이다.
돈을 받아 섹스에 대한 보상은 받는대도, 내 마음은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최초의 자해섹스를 통해서라도 뭔가를 채우고 싶었던 이 허하게 된 마음은? 채워도 채울 수 없게 된 이 쉽게 무너지는 모래로 된 바닥의 마음을?
전부 과거의 일일 뿐이지만, 흉짐이 되어 나의 일부로 남은 이 모든 것들?
뭐라고 표현할 수도 없는 어그러져 버린 못된 억울함?
‘살풀이 쑈’라고 표현되는 이 역겨운 외침은?
...
내 안의 뭔가가 혼동되고 있다.
억울해서 섹스한 건지, 섹스해서 억울한 건지 모르겠다. 둘 다인지도. 우로보로스의 뱀처럼 이 인과관계는 앞뒤를 서로 잡아먹고 있다. 이야기는 계속 빙빙 돈다. 부끄럽기 때문이다.
억울함을 토로하는 게 쪽팔린다. 역겨운 남자들과 섹스한 행위에서 후회도 느끼지만 억울함을 더 크게 느끼고, 돈을 받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의 도덕관념이 참으로 부끄럽다.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된 거지? 사실 나의 흉짐은 역겨운 사람들과 섹스한 행위가 아니라 이 무너진 도덕관념 자체가 아닐까? 이제와 글을 다시 써야 할까? 하는 고민이 들 정도이다.
아내는 내게 도덕관념이, 체면이, 양심이 없다고 말한다. 비난이 아니라 사실적시로 그리 이야기한다. 받아들인다. 완전한 사실이다. 섹스하고 돈을 받았어야 한다고 진.심.으로 억울해하는 여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이젠 더는 앱도 하지 않고, 자해섹스도 하지 않는다. 시간과 몸도 낭비일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어서이다. 그럼에도... 문득 떠오른다.
자신을 쉽게 내놓는 여자애들을 볼 때 마치 과거의 나를 마주친 듯이 얼굴이 붉어진다.
그저 그들이 덜 상처받기를 바라면서 못 본 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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