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참 내게 어려운 시기이다. 몸도 마음도 가장 약해지기 때문이다. 약해진 몸에 세균이 침투하고 약해진 마음에 생각이 쑤신다. 그렇게 생각의 바늘을 찔리던 중, 운좋게 혈을 찔러준 바늘이 있었는데. '약해졌다는건 솔직해졌다는 것.' 음. 그래서 글을 써야겠다. 마음 먹었다.
이번주 내내 저녁에 돌아와서는 불도 안켜고 소파에 나를 내던졌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어둠과 적막을 느끼다가, 좀 평온해졌다 싶으면 그러다가 이내 캄캄한 소음이 지루해지면 티비를 켰다. 별 같잖은 영상들을 머리 긁으며 돌려봤다. 그것들은 내 눈과 머리를 더욱 어지럽혔고 혼돈에 빠진 나는 유약한 마음을 돌봐줄 생각도 못하고 콘텐츠 속으로 나를 내팽개쳤다.
그렇게 눈이 썩어 문드러질 때 쯤 티비를 껐다. 5시간 쯤 지났으려나. 겨우 몸을 일으켰다 잠깐 적막으로 돌아오며 빈혈을 느끼다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리모콘 배터리를 빼서 내던졌다. 누구라도 맞았다면 눈이 뚫려버렸을 거다. 벽에 튕겨 내 눈에 맞아도 어쩔건가 싶었다. 차라리 그러길 바랬을지도 모르겠다. 어둠과 적막 속에서 영원히 살아버리게.
오늘이 그나마 나은 것은 집에 와서 소파가 아닌 책상 의자에 앉았다는 거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손끝의 감각에만 의지해서 글을 치고 있다. 훨씬 낫다. 내가 지금 쓰는 이 글이 어제 본 쓰레기 같은 콘텐츠와 별다를바 없겠지만, 나로서는 눈과 마음을 더럽히는 것 보다도 이렇게 어둠 속에서 손끝만 움직이는 생활이 훨씬 낫다.
가만, 그럼 정말로 어둠과 적막에서 평생 못 살 이유는 뭔가. 어제 던져버린 건전지를 찾아서 얼른 내 눈을 찔러버리고 귀를 틀어막아야겠다. 그래도 심장은 뛰니까 얼마간은 지금 처럼 살 수 있겠지. 캄캄한 어둠과 고요한 적막 속에 손 끝으로만 글자를 느끼며 머리는 하얗게 비워 내는 생활.
아 그런데 솔직히 아쉽다. 손 끝 감각 만으로도 좋지만 키보드를 칠 때 나는 이 타닥타닥 소리가 정말 중요한건데. 게슴츠레라도 떴던 눈을 다 감고 문장을 쓰니 오타도 나고 엉망 진창이구나. 아무래도 눈과 귀는 살려둬야겠다. 그래 얘네가 무슨 죈가. 이상한 곳에 눈과 귀를 쓰는 주인놈이 문제인거지.
사실 그 주인 놈은 일주일 내내 울상이었다. 근데 울지를 못했다. 오랜만에 겸사겸사 으앙하고 괴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는데 터뜨려지진 않았다. 오히려 너무 차분하고 건조해서 답답했다. 아니 사실 답답함도 안느껴졌고 그냥 그저 그랬다.
눈물이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계속 밀고 들어오는 이상한 콘텐츠에 새치기를 당해버린 것인가. 아니면 나조차도 나의 눈치를 보는 것일까. 하긴 진짜 울기라도 했으면 병신 머저리라고 욕했을지도 모르겠다. '어휴 병신같은 새끼 왜 쳐울고 지랄이냐.'
새삼 우리 몸의 지혜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신체구조상 나는 나를 발로 차버릴 수도 없고 건전지마냥 던져버릴 수도 없다. 물론 손으로 뺨을 때리거나 대가리에 주먹질을 할 수는 있지만, 내 몸 바깥에 있는 객체를 후리는 것에 비하면 솜방망이 수준이다.
'그러면 다른 도구를 이용하면 되지 않나' 싶을 텐데 그정도로 똑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성이 돌아왔다면 나는 더이상 나를 때리고 싶어하지 않을 거다. 내가 나를 때려? 이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가. 그래서 내 몸은 자기자신에게 치명타를 입히는데 항상 실패한다. (그렇다고 나를 때려달라는 건 아니다. 그리한다면 나도 당신을 온 힘을 다해 때려주겠다.)
재채기에 실패한 적 있는가, 하품이 막 나오려다 멈춘적은? 바깥으로 응당 나가야할 에너지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애매하게 몸 사이에 걸쳐져 있을 때 우리는 불쾌함을 느낀다. 그 불쾌함은 사실 다른 것에 비하면 정말 하찮은 불쾌여서, 이런 것 따위에 불쾌함을 느끼는 나에게 오히려 불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불쾌함을 증폭시켜서 온전한 불쾌함으로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면 짜증을 확 내버린다. 그제서야 바깥으로 나가야 할 에너지가 훅 나가면서 해소가 된다.
나는 애매하게 울음이 걸쳐져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솔직히 점점 해소되고 있음을 느낀다. 울음대신 글을 쏟아냈기 때문일까. 정신이 차려지고 있다. 점점 쓸거리가 떨어진다. 그래, 오늘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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