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역과 망원역 사이 어딘가, 퀴어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주로) 케이팝 아이돌 춤을 추는 환상의 공간이 있다면? 서로의 정체성에 대해 서슴없이 이야기하고 몸과 춤에 솔직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곳, <루땐>이 있다. 루땐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루때너라고 부르는데, 나도 9월 말 즈음부터 루때너라는 이름에 은근슬쩍 스며들고 있다.
춤을 춰봤냐는 질문은 어렵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이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겠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댄스 동아리를 만들어서 (그때까진 학교에 땐동이 없었는데 나와 내 친구가 만들었다) 땐동 부-부장도 하고, 축제와 체육대회에서는 학교 강당이며 운동장에 전교생 앞에 서서 공연도 했었다. 아, 땐동 부장이었던 친구가 열정이 넘치는지라, 학교가 있던 울산에서부터 부산의 소극장에까지 ‘원정 공연’도 하러 가기도 했다. 우리는 부산까지 가서 당시 히트쏭인 미쓰에이의 Bad Girl Good Girl을 췄었다. 추운 겨울, 짧은 바지 안에 검은 스타킹을 신은 채였다.
춤출 땐 Bad girl 사랑은 Good girl
춤추는 내 모습을 볼 때는 넋을 놓고 보고서는...
끝나니 손가락질하는 그 위-썬이 난 너무나 웃!겨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이 많았던 고등학교여서 (개교 10년이 되도록 댄스 동아리가 없을 정도로 얌전한 학교기도 했다) 우리의 존재는 어딘가 튀는 아이들이었다. 시끄럽고, 거슬리고, 불편한 아이들. 얌전하지 못한 아이들. 나는 그 가사가 모교 내의 댄스 동아리 이야기를 어딘가 담고 있다는 묘한 공감을 느끼며, 춤에 몸을 맡겼다. 강당에서도, 운동장에서도, 소극장에서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가 서슴없이 배에 땅을 대고 다리를 휘젓는 안무를 수행했다. 그것이 춤이니까 어디에서든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모교 선배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면이 있었는데, (시끄러워서?) 아니꼽게 보는 시선이 싫어 운동장에서 공연을 할 때면 우리 학년과 후배 학년이 있는 쪽으로 치우치게 서서 춤을 췄다. 그랬더니 춤이 안 보인다고 불평했다. 보기 싫다더니…. 그 위썬이 난 너무나 웃겨 정말.
아무튼, 댄스 동아리에서는 F(x), 소녀시대, 비스트, 미쓰에이, 티아라, 카라, 애프터스쿨 등의 그룹 노래를 공연했다. 댄스 동아리 부장이던 친구는 뮤지컬 학과로 진학했고, 나는 서양화과에 진학하며 헤어졌다.
성인이 되면서 나의 몸에 큰 변화가 생겼는데, 그건 바로 8시간에 걸친 척추 고정술을 받아 장애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3개월 정도 병실에 누워서 생활했고 병원 생활 전과 후의 나의 몸은 전혀 다른 것이 되어있었다.
누워서 지내며 근육과 살이 거의 없어져서, 나는 166cm에 37kg의 체형이 되었다. 재활 운동이 필요했다. 걸음마와 생존에 필요한 생체 활동을 우선했다. 퐁퐁(방방, 트램펄린 등으로 불리는 놀이기구) 위에서 정상적으로 걸으려 애쓰는 사람처럼 걷기 시작했다. 희박한 종아리 근육이 붙기 시작했고, 의자에서 혼자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 동네의 가까운 절로 산책을 다녔다. 엄마는 내가 아파서 수술을 한 게 본인 탓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 부모 된 마음이란 그런 것인지 난 평생 이해할 수 없겠지만...
회복된 후 대학에 갔고, 건강해졌다. 여전히 춤 생각은 하지 말라고 엄마가 내 등짝을 차마 때리진 못하고 어루만지며 말렸다. 씨스타19의 ‘있다 없으니까’ 무대 영상을 보며 살랑거리는 상체 웨이브를 따라 하려고 시도하는 나를 발견한 엄마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하이고, 미리야. 너 안 돼. 큰일 나. 이제 그런 거 하면 안 된다. 아프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내 1800만 원짜리 척추가 내 몸을, 내 꿈을, 나를 가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춤을 제대로 추지 못할 것 같았다.
...
음, 그리고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병신이라는 멸시도 들었고,
회복하기 위해서 찾아간 요가학원에서는 강사가 포기했다.
나는 내 몸을 버릴 수가 없는데 남들은 내 몸을 그리했다.
이 껍데기를 다 벗어 내어주고 적당한 새집을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달팽이였나, 소라게였나, 그런 동물처럼.
하지만 나는 사람이라서 그렇게 못 하고 병든 신체, 병신인 채로 살아야 했다.
괜찮아졌다. 수술한 지도 14년이 지나서 이 몸을 들고 다니는 데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살만하니까 또 춤 생각이 났다.
루땐은 수업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주는데, 사실 이걸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팔로업 해왔다. 다양한 모습의 수강생들이 암시롱 않게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서 각자의 뽐과 끼를 자랑하는 모습이 부러워서, 저기 끼고 싶었다. 나도 춤출 줄 알았었는데…. 할 줄 아는데. 그렇게 강의를 신청했고, 루때너가 됐다.
10월 30일에 할‘루’윈 행사가 있었다. 단독 공연을 하신 이리님께 어떻게 (단체가 아닌) 단독 공연을 하시게 됐냐고 질문했는데 이렇게 대답하셨다.
혼자 춤을 추게 되면 이곳에는 춤과 나만이 있다는 점이.
도망치거나 숨을 수 없다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도망치거나 숨을 수 없다.
여태껏 춤을 연습하며 거울 속 선생님들을 보며 배웠다. 사실 아직 거울 벽 속에 비치는 나를 보기가 너무 부끄럽다. 나는 이전보다 많이 둔하고, 살이 쪘고, 예쁘지 않다. 내 움직임은 고등학생 때만큼 절대 유연해질 수 없고, 갇혀있고, 뚝딱거린다고 욕먹는 아이돌 구멍 멤버보다도 훨씬 최악이다. 그래서 마주 보고 싶지 않다.
수술하기 이전의 나는 정말 잘.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아주 어릴 땐 아이돌 오디션도 본 적이 있고, 오디션을 통과해야 붙을 수 있는 학원에 들어간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때와 다르다.
내 라이벌은
과거의 나
혹은 내가 될 뻔했었다고 착각하는 무대 위 아이돌들의 모습들
그들과 현재의 실패했다고 느껴지는 나를 비교한다.
하지만 난 그냥 잘살고 있는데 말이다.
춤과 나만이 있는 감각을 애써 외면하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공간이라는 루땐에서조차 그걸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리님의 그 말을 듣고 좀 놀랐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감각을 알아차렸다.
좀 어렵다. 통통한 배를 보는 것, 웨이브가 어색한(안되는) 상체로 애쓰는 것, 스트레칭할 때 남들이 다 되는 동작에서 나만 다른 동작을 하며 딴청 피우는 것 전부.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그것만으로 나는 에너지를 소비한다.
이것이 내 두 번째 흉짐이다.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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