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총재님께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말씀하시는 날이 오다니, 뭔가 신기하다. 물론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하여 총재님께서 훨씬 더 깊이 고민하고 계셨을 테지만, 재미삼아 말씀하셨던 부분에 대해 나만의 코멘트를 남겨보고자 한다.
비은행 발행 반대
일단 총재님은 비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신 듯하다. 이는 미국의 GENIUS 법안이 비은행 주체의 발행 가능성을 열어둔 것과 대조된다. 총재님은 그 이유로 ‘통화 정책의 유효성 저해’를 언급하셨는데, 사실 비은행 기관도 준비금 없이 스테이블코인을 마음대로 찍어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정말로 통화 정책의 유효성이 저해될지는 조금 의문이다.
일관된 걱정
흥미롭게도, 최근 논란이 되었던 자본시장연구원의 보고서와 총재님의 발언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졌던 점은, 스테이블코인의 사회적 수용성이 높아질 경우, 발행자가 ‘자금 유입 없이’ 국채를 먼저 매입한 뒤 이를 담보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우려였다. 물론 공공기관에 계신 분들로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간 리스크까지 고려하는 것이 이해되지만, 이러한 문제는 ‘유입된 자금 내에서만 발행 가능’하도록 규제를 설계함으로써 충분히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부도 시 결제 시스템에 악영향
총재님의 또 다른 우려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 비은행 기관이 부도날 경우, 결제 시스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는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예를 들어 GENIUS 법안을 기준으로 보면, 발행사의 모든 준비금은 기존 은행에 예치되어야 한다. 따라서 해당 은행이 무너지지 않는 한 결제 시스템이 붕괴될 가능성은 낮다. 실제로 과거 Circle이 실리콘밸리은행(SVB)에 일부 준비금을 보관했다가 해당 은행이 파산하면서 문제가 될 뻔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없었다.
혁신적 해결법
물론 가능성은 극히 낮겠지만, 만약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한국은행에 직접 예금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허용된다면, 이 리스크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연준 마스터 계좌(Fed Master Account)와 유사한 개념이다. 이런 구조라면 발행사의 부도 여부와 무관하게 언제든지 준비금 환매가 가능하며, 사용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은행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구조일 수도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준비금과 발행량이 1:1로 대응되는 반면, 은행은 부분지급준비제도 하에 운영되므로) 다만,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비은행 주체가 중앙은행 계좌를 가진 사례는 없기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예금 토큰으로 일단 시작하자
총재님께서는 현재 추진 중인 '한강 프로젝트', 즉 예금 토큰을 스테이블코인의 시작점으로 보겠다고 하셨는데, 나는 이 접근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스테이블코인에 내재된 리스크가 부담된다면, 굳이 스테이블코인보다는 기존 규제 내에서 빠르게 도입 가능한 예금 토큰을 실험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다. 물론 예금 토큰의 유틸리티가 스테이블코인에 비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가지고 온체인 금융에 적극 활용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기존 규제를 유지하면서도 programmability나 즉시 정산과 같은 장점을 일부 가져올 수 있는 예금 토큰은 충분히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일단 여기부터 좀…
사실 스테이블코인이냐 예금 토큰이냐를 논하기 전에, 한국에서는 비금융회사가 은행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제도적 장벽을 해소하지 않는 한 Embedded Finance나 BaaS가 발전할 수 없고, 이 둘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의 활용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만드는 것과 함꼐 이 부분에 대해서도 규제가 좀 완화된다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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