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생각의 숲 김혜원입니다.
아이가 평소보다 잘 쓴 글을 가져왔을 때 칭찬보다 이 말이 먼저 나온 적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거 네가 쓴 거야?"
지난주 편지에 적었듯 시대가 어떻게 바뀌어도 글의 주인임을 증명하는 것은 초고와 수정 이력입니다. 오늘은 그 증명을 아이가 6주 동안 직접 훈련하는 수업을 소개합니다.
지난 편지 읽기 →

이 질문의 주인은 AI를 거의 쓰지 않는 아이들입니다
주변의 십 대에게 AI를 써 봤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렇다고 답합니다. 그런데 글을 쓰는 데 실제로 써 본 아이는 생각보다 별로 없습니다. 아직은 궁금해서 몇 번 말을 걸어 본 정도입니다. 사실 성인들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오픈AI가 작년 한 해 사용자 메시지 110만 건을 표본으로 분석한 결과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AI에게 가장 많이 시키는 일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표를 풀어 쓰면 이렇습니다. 흔히 떠올리는 상담이나 말동무 용도는 100건 중 4건 수준이고 소설이나 시를 통째로 써 달라는 창작 요청은 그보다 더 드뭅니다. 글쓰기 요청 안에서 가장 큰 항목은 새 글 생성이 아니라 자기가 이미 쓴 글을 다듬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어른들조차 AI를 생각의 도구로 깊게 쓰는 경우는 소수이고 대부분은 검색창의 연장으로 씁니다.
그렇다면 'AI가 쓴 글은 누구의 글인가'는 아직 이 아이들과 먼 질문일까요.
현실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AI를 얼마나 쓰건, AI 네이티브로 규정되어버린 지금의 아이들은 이 흐름에서 따로 떨어져 나올 수 없습니다. 한 예로 미국 팔로알토의 한 고등학생은 제출한 에세이가 탐지 프로그램에서 76% AI 생성으로 표시돼 다시 쓰라는 처분과 D 학점을 받았습니다. 학생은 자신이 썼다고 항변했고 가족은 구글 문서에 남아 있던 1,162쪽 분량의 수정 이력을 근거로 지난 5월 연방 소송까지 냈습니다. 소송은 9월에 취하로 마무리됐지만 이 사건이 보여 준 것은 분명합니다. 탐지 프로그램의 판정 앞에서 이 가족이 꺼낼 수 있었던 유일한 증거는 쓰는 동안 쌓인 기록이었다는 점입니다.
국내 대학가에서는 이번 2학기부터 상당수 강의가 AI를 쓴 경우 사용한 모델과 입력한 질문, 받은 답, 학생이 고친 내역까지 적어 내도록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AI와 학생의 관계를 규정하는 새로운 규칙은 지금 막 만들어지고 있고 그 규칙을 적용받을 사람은 다음 차례의 학생들입니다.
지금의 십 대는, AI를 얼마나 사용하는지와 상관없이, 저자성을 증명하는 게 당연한 시대에 살게 된다는 거죠. 어느 사회에서나 십 대는 늘 판정을 받는 세대입니다. 하지만 저는 판정의 기준을 어른들이 다 정하기 전에 판정받을 사람이 먼저 자기 기준을 세워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코호트 1기는 그 물음에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1기는 질문 하나를 6주 동안 붙들고 갑니다
사고의 8단계는 기수마다 하나의 사회적 질문을 정하고 6주 동안 그 질문만 파고듭니다. 1기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AI가 도와서 완성한 글은, 여전히 '내 글'인가?
이건 아직 어른들도 답을 정하지 못한 질문입니다. 참가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각자의 글로 답합니다. 소설이나 에세이 등 형식은 자유, 결론도 찬성이든 반대든 자유입니다. 스스로 내린 결론이라면요. 코호트의 질문은 기수마다 바뀝니다. 2기는 "몇 살부터 어른인가", 3기는 "내 취향은 정말 내 것인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수업은 AI를 가르치지도 금지하지도 않습니다
1기 수업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AI가 무엇이든 써 주는 시대에 내 글의 기준을 스스로 세우고 그 기준을 내 사고 과정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요구받기 전에 먼저 준비하고자 합니다.
AI 사용법을 주로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기능은 어디서든 배울 수 있고 금방 낡기 때문입니다. 대신 원칙만 전달합니다. "먼저 쓰고 그다음에 묻는다." 질문을 고르고 초고를 쓰고 고쳐 쓰는 문장은 아이가 직접 써야 합니다. 만약 자료를 찾거나 반론을 떠올리는 데 AI를 썼다면 그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쓰지 않기로 한 선택도 함께 남깁니다.
AI를 직접 겪어 보는 과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AI를 '딥하게'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어느 정도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수업 안에서 직접 확인합니다. 이 방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이 올해 함께 내놓은 AI 리터러시 기준과 함께합니다. 저희는 AI로 에세이를 쓸 줄 아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언제 쓸지 판단하는 힘을 리터러시로 정의했습니다.
자신만의 쓰기 원칙을 세우려면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갈 길이 필요합니다. 그 길을 여덟 단계로 미리 닦아 두었습니다.
6주는 3개의 막으로 나뉩니다.
수업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드릴게요.
6주는 세 개의 막으로 움직입니다. 처음 2주는 질문을 심는 시간입니다. 질문을 많이 만들고 하나만 남긴 뒤 자료와 자기 경험을 부딪쳐 보는 시간입니다. 가운데 2주는 글의 몸통을 세웁니다.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초고를 끝까지 쓰고 자기 초안에 스스로 반론을 던집니다. 마지막 2주는 문장이 아니라 생각을 재배치하는 고쳐쓰기를 거쳐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자기 언어로 설명하는 증명으로 끝날 것입니다. 이 여정을 여덟 개의 단계로 설계한 지도가 수업의 이름인 '사고의 8단계'입니다. 단계별 상세 설계는 등록을 마친 참가자에게 미리 보내드립니다.
진행 방식도 이 리듬과 맞췄습니다. 시작과 끝 두 번은 화상으로 만나고 그 사이 4주는 서면으로 진행합니다. 매주 월요일 그 주의 단계를 담은 편지가 가고 아이가 미션을 제출하면 주말까지 제가 한 사람씩 서면 피드백을 씁니다. 학기 중인 아이들이 기말고사 기간에도 끝까지 갈 수 있는 방식입니다. 동료와 관점 카드를 바꿔 읽고 서로의 초고를 합평하는 과정도 글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남는 것은 원고 한 편과 증거 세 가지입니다
6주가 끝나면 참여자들의 손에는 네 가지가 남습니다. 1)완성 원고 한 편. 2)매주 쌓인 기록과 AI 선택 기록을 묶은 과정 포트폴리오. 3)논리 구조·관점 다양성·감정 표현·수정 반응성 네 지표로 생각이 도약한 순간을 짚는 성장 리포트. 그리고 4)6주의 실험을 거쳐 아이가 스스로 정한 AI 사용 원칙 한 장입니다.
AI는 기록과 분석을 돕지만 아이의 글을 대신 쓰거나 고치지 않습니다. 피드백은 사람이 씁니다. 습관이 생기기 전에 원칙을 먼저 세우는 일, 이 수업이 아이에게 남기려는 가장 오래가는 결과이길 바랍니다.
출간과 연계된 수업이 아닙니다
생각의 숲에서는 현재 출간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이 수업은 출간과 연계된 수업이 아닙니다. 2기까지 진행하며 확인한 것은 출간 프로젝트에서 아이들에게 남은 가장 큰 자산은 책이 아니라 한 편을 끝까지 통과한 과정이란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만 떼어 내 6주로 압축한 것이 이 코호트입니다.
모집 요강 — 사고의 8단계 1기
대상: 십 대 청소년 (초6부터 가능하지만 중학생 이상을 권장합니다)
정원: 최대 5명 (사전 인터뷰 후 선발)
기간: 2026년 11월 30일(월) ~ 2027년 1월 4일(월)
방식: 6주 · 화상 2회(시작과 마무리) + 매주 단계 편지와 개별 서면 피드백 5회
수강료: 49만 원 (1기 참여가 · 2기부터 59만 원 / 성장 리포트 포함, 선발 후 결제)
신청: 사전 인터뷰 폼 제출 → 간단한 인터뷰
신청 마감: 11월 20일(금)
수업 상세/신청 페이지 →
오늘 심을 한 가지 생각
저녁 식탁에 올려 볼 질문 하나를 남깁니다.
내가 직접 쓴 글이 AI가 쓴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면 나는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신청 전에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답장으로 보내 주세요.
다음 주에는 특별한 손님의 이야기가 갑니다. 생각의 숲의 책을 함께 만드는 출판사, 느린서재 대표님과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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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숲에서,
김혜원 드림.
이 편지가 다룬 자료:
OpenAI·NBER 'How People Use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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