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의 숲 김혜원입니다.
지난 4호 〈결과물의 시대가 끝났습니다〉에서 세계의 앞서가는 기관들이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을 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드렸어요. 오늘 뉴스레터는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과정이 중요해진 시대에는 무엇이 남을까에 대한 이야기에요.
AI가 글도 쓰고, 요약도 하고, 심지어 감동적인 편지까지 써주는 시대에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굳이 직접 문장을 쓰는 걸까?
답부터 말하자면 모두 이미 알다시피 반드시 써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 질문이 더욱 절박해질 겁니다. 왜냐하면 답을 미루었을 때의 대가가 이제 막 드러나기 시작했거든요.
AI에 글쓰기를 다 맡기면 뇌가 일을 멈춥니다
2025년, MIT 미디어랩이 충격적인 연구를 발표했어요. 54명에게 뇌파(EEG)를 붙이고 에세이를 쓰게 했습니다. 세 그룹으로 나눠서요: 직접 쓰는 사람, 검색엔진을 쓰는 사람, AI(ChatGPT)를 쓰는 사람.
결과는요?
- 직접 쓴 사람의 뇌는 가장 강하고 넓게 연결됐어요.
- AI를 쓴 사람의 뇌는 가장 약하게 연결됐고요.
- 그리고 AI 사용자의 80% 이상은 방금 자기가 쓴 글을 기억하거나 인용하지 못했습니다. 이 글이 자기 글이라는 주인의식도 가장 낮았습니다.

연구진은 이걸 "인지 부채(cognitive debt)"라고 불렀습니다. AI는 속도와 매끄러움을 빠르게 빌려주지만, 그 대가로 생각하는 힘과 내 것이라는 감각을 조금씩 가져간다는 뜻입니다.
🔗 원문 연구 — MIT Media Lab
물론 표본이 54명이라 이 한 연구로 모든 걸 단정할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방향을 가리키는 신호로서 무겁게 생각해 볼 만합니다. 그럼 AI 를 쓰면 안될까요? 글쎄요, 이 연구에는 우리가 다시 만날 희망적인 발견이 하나 더 숨어 있어요.
이제 모두의 글이 비슷해지고 있어요
같은 해 또 다른 연구들은 다른 각도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AI의 제안을 받아 쓴 글이 점점 비슷해진다는 겁니다. 2025년 한 연구는 AI 도움을 받은 글이 서구식 문장으로 평준화되고, 문화적·개인적 특수성이 지워진다는 걸 보여줬어요. 또 다른 연구는 "AI는 개인의 창의성은 높이지만, 집단 전체의 다양성은 줄인다"고 이야기합니다. AI가 영감을 준 이야기들은 결국 서로 더 닮아간다는 거예요.
당연한 일입니다. AI는 가장 그럴듯한 평균을 출력하도록 만들어졌으니까요. 매끈하지만 놀랍지 않은, 평균에 가까운 글을 쓰게 됩니다.
🔗 AI 글쓰기 동질화 연구 (CHI 2025)

그러니 이런 시대에 나만의 결을 가진 문장은 점점 더 귀해질거예요. AI의 새로운 매끄러움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곧 질려버릴테고 더 깊은 것을 찾고 싶어질겁니다. 나만의 맥락과 특수한 배경이 녹아든 문장을 직접 쓰고 축적하는 게 그 자체로 경쟁력이 될 것이란 뜻이죠.
쓰기는 생각을 옮기는 게 아니라 만드는 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게 하나 있어요. 우리는 흔히 "생각을 다 한 다음, 그걸 글로 옮긴다"고 여기죠. 그런데 진짜 글 쓰는 사람들은 정반대의 순서라고 말합니다.
소설가 조앤 디디온은 〈Why I Write〉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로지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보는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쓴다."
작가 E.M. 포스터가 즐겨 인용한 한 노부인의 말은 더 직설적이에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보기 전에는, 내가 뭘 생각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쓰기는 머릿속에 완성된 생각을 받아 적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쓰는 동안 생각이 만들어집니다. 한 문장을 쓰고 나서야 다음 생각이 떠오르고, 글이 막힐 때 멈추어 생각하느라 그제서야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야말로 '자라나는 과정'인 거예요. 그래서 AI가 대신 써준 글은 다릅니다. 결과물은 있어도 사람의 생각이 자라난 흔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디디온이 말한 "알아내는" 그 과정이 글쓰기의 핵심인데, 그 부분이 비어 있는 거예요.
🔗 조앤 디디온 〈Why I Write〉 (Literary Hub)
학교에서도 글을 쓰는데 부족한가요?
"쓰기가 중요하다면, 학교에서 이미 많이 쓰지 않나요?" 라고 물을 수 있겠습니다. 맞는 질문이에요. 그런데 충분하다고 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학교 글쓰기의 대표 형식인 5문단 에세이(서론-본론3-결론)를 두고, 교육 현장에서는 늘 비판이 있었어요.
형식이 학생을 대신해 생각하고, 칸에 맞는 문장을 채우는 훈련을 하며, 자기만의 목소리를 키우기 보다는 정답과 점수를 목적으로 한 비슷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요.
교육 연구자들은 "5문단 형식이 주는 구조가 정작 학생이 해야 할 생각을 멈춰버린다"고 지적해요. 한 교사는 더 매섭게 말했습니다. "전문 작가는 5문단으로 쓰지 않는다. 학교만이 그 형식이 번성하는 유일한 곳이다."
저는 형식에 맞는 글쓰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템플릿은 템플릿대로 용도가 있고, 사고의 틀을 잡고 배우기에 형식은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하지만 그 형식에 맞는 글을 쓴 다음엔,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단계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 아쉬운 일일 겁니다.
🔗 5문단 에세이를 넘어서 (ASCD)
A를 받기 위한 글이 아닌 자기 인물을 만들고, 자기 세계를 짓고, 자기만 할 수 있는 한 문장을 찾는 쓰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생각의 숲]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기 서사가 결국 자기 자신을 만듭니다
자기 문장으로 쓴 이야기는 결국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되기 때문에 비교 불가한 가치가 있습니다. 심리학이 이걸 뒷받침해요.
심리학자 댄 맥아담스는 사람이 자기 인생 이야기로 정체성을 만든다고 말해요. 흩어진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을 줄 아는 사람일수록 더 큰 의미와 삶의 만족, 목적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더 잘 말하도록 배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가 30년간 연구한 내용도 같습니다. 자기 경험을 글로 써 내려간 사람들은 건강 상태와 심리 상태가 좋아졌는데, 이들은 "깨닫다, 생각하다, 왜냐하면" 같은 단어를 더 많이 썼다고 합니다. 흩어진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 짓는 동안 통찰이 생긴 것입니다. 또한 소설가 김영하는 세바시 강연 〈자기 해방의 글쓰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글을 쓰려는 의지가 남아 있는 인간은 자유롭다."
자기 문장을 쓰는 일은 단지 글을 만드는 게 아니에요. 자기 서사는 나를 발견하고, 나를 만드는 일이에요. AI가 절대 대신해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생각의 숲에서는 자기 문장으로 시작해요
이제 뉴스레터 초반에 봤던 MIT 연구의 마지막 발견을 알려드릴게요. 희망적인 대목이에요.
먼저 자기 생각으로 쓴 다음 AI로 다듬은 사람은, 뇌도 살아 있고 자기 글이라는 주인의식도 높았습니다.
글쓰기와 AI 사이의 핵심은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었어요. 무엇이 먼저인가였어요. 이 시대에 AI를 전혀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너무나 비합리적인 일이에요. 중요한 건 어떻게 잘 쓰느냐, 본질을 강화하도록 쓰느냐에요.
생각의 숲 2기 작가들은 8개월 동안 자기 문장으로 인물을 세우고, 자기 손으로 시놉시스를 쓰고, 막히면 책을 읽고 다시 자기 문장으로 돌아옵니다. AI는 그다음, 도구로 쓸 수 있겠죠. 그것 역시 함께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중요한 건, 내가 AI의 보조작가가 되지만 않으면 됩니다. 4호에서 맥킨지가 신입에게 보겠다던 "AI와 어떻게 협업하는가". 그 협업의 출발점은 언제나 자기 문장이에요.
결과물은 AI가 빠르게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뇌, 나만의 결, 그리고 내가 이걸 만들며 생긴 스토리와 감각은 자기 문장을 쓴 사람에게만 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결과물보다 그 과정에 더 큰 가치를 둘 것입니다. 그게 이 시대에 우리가 십 대 작가들과 책 한 권을 함께 쓰면서 만들 가장 멋진 결과물이 될 겁니다.
오늘 심을 한 가지 생각
자녀가 AI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 때 — 자기 문장이 먼저 나온 다음에 AI를 부르고 있나요, 아니면 그 반대인가요?
답은 메일로 보내주셔도, 마음에만 담아두셔도 좋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 아침에 다시 뵐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의 숲에서,
김혜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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