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생각의 숲 김혜원입니다.
오늘부터는 뉴스레터 두 번째 시즌이 시작됩니다.
새 시즌의 이름은 '여덟 편의 첫 소설 — 질문이 소설이 되는 과정'입니다. 시즌1이 물었다면(누가 쓸 수 있는가) 시즌2는 보여드리려 합니다. 지금 여덟 명의 십 대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를요. 뉴스레터 안에서, 우리가 만나는 여덟 문제의식을 하나씩 열어 보려 합니다.
첫 번째 문제의식은 지금 뉴스에서 가장 뜨거운 곳에서 시작합니다.
자퇴 1만 명이라는 숫자
올여름 교육 뉴스에서 눈에 띄는 숫자가 있었습니다.
일반고 1학년의 학업 중단, 약 1만 명
올해 고2부터 적용된 새 내신 제도의 첫 세대에서 자퇴가 처음으로 1만을 넘겼다는 보도였습니다(입시업체 조사 기준).
잠깐 배경을 설명드리면 이렇습니다. 2025년 고1부터 내신 등급이 9개에서 5개로 줄었습니다. 예전에는 상위 4%까지만 1등급이었다면 이제는 상위 10%까지 1등급이에요. 줄 세우기의 칸을 줄여 경쟁을 완화하겠다는 취지의 개편입니다.
그런데 이 완화가 자퇴 급증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논쟁이 붙었습니다.
해석은 여러 갈래입니다. 한쪽에서는 등급 구간이 넓어진 만큼 "한 번 미끄러지면 올라가는 게 체감이 안 된다"는 학생들의 말을 근거로 제도가 이탈을 자극한다고 봅니다. 교육부는 데이터로 반박합니다. 자퇴한 고1의 평균 내신은 3.7등급으로 상위권의 전략 자퇴로 볼 수 없고 자퇴 증가세는 제도 도입 이전부터 이어진 추세라며 "불안 마케팅"을 경계했어요. 검정고시나 유학 같은 학교 밖 경로가 넓어진 시대 변화로 읽는 시선도 있습니다.
그러니 5등급제가 자퇴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자퇴'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와 느낌도 시대가 변하면서 달라졌습니다. 십 대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니 마냥 좋다고 할 수도, 학교가 아이들을 품을 수 없는 게 마냥 걱정이라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새 제도의 첫 세대가 전례 없는 입시를 전례 없이 치르는 중이고 그 불확실성 위에서 어른들이 공방하는 동안 교실의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
이탈, 수용, 그리고 세 번째 반응
그 반응의 지형은 크게 두 갈래로 보도됩니다.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탈)과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대부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한다"는 아이들(수용).
그런데 저는 올여름 세 번째 반응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그 줄 세우기의 현실을 글로 재구성하고 있거든요.
한 질문의 탄생
생각의 숲 한 십 대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이 작가는 5등급제 첫 세대입니다. 반장 선출까지 성적순이 "당연해진" 교실을 보면서 자랐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회에 나가면 성적보다 인격이 더 중요하다."고요.
많은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고 많은 아이들이 흘려듣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작가는 그 말을 흘려보내지 않고 곱씹었고 생각 속에서 한 번 더 뒤집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성적순이 아닌 인격순으로 등수를 매기면 학교는 어떻게 될까.
이 질문 하나에서 소설이 자라났다고 했습니다. 인격이 점수가 되는 학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런 세상은 과연 유토피아일까요?
지금 초안을 쓰고 있는 이 작가가 도달한 지점이 놀랍습니다. 여기에 스포를 할 수는 없으니 여기까지만 쓰겠지만,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여름을 지나는 동안 무럭무럭 자랄 예정입니다.
확실한 건 성적순을 비판하는 이야기로 시작한 소설이 지금은 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으로 줄을 세우느냐가 아니라 사람을 줄 세우는 행위 자체가 아닐까, 로 나아간 이야기를, 함께 기다려 주세요.
비판과 순응 사이
자퇴 1만 명이라는 보도를 처음 봤을 때 제가 떠올린 생각은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무엇을 선택했을까였어요. 학교를 떠나기로 결정한 각자의 이유가 있었을 텐데 숫자는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뉴스 앞에서는 현상보다 한 층 위의 질문을 떠올려 봤으면 합니다. 우리는 왜 기준을 정하고 줄을 세워야만 할까. 지금의 방식이 최선일까. 아니라면 대안은 무엇일까.
답을 내자는 건 아닙니다. 저에게도 답이 없어요. 다만 무조건적인 비판과 무조건적인 순응 사이 어딘가에 우리가 찾아내야 할 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제도를 욕하는 일은 쉽고 제도에 그냥 맞추는 일도 어떤 의미로는 쉽습니다. 어려운 것은 그 사이에 서서 질문을 계속 쥐고 있는 일이에요.
그 어려운 일을 지금 한 열일곱이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이 시즌을 여는 가장 좋은 이유였습니다.

숫자에서 서사로
이 아이의 선택이 남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지금 입시 자체가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거든요.
5등급제로 등급 변별력이 줄자 대학들은 학생부의 기록, 즉 서사를 더 깊이 읽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서울대는 정시에서 교과 역량 평가 비중을 늘렸고 주요 대학 수시에서 수능 최저 없이 선발하는 비중도 커지는 중입니다. 숫자가 말하지 못하게 된 것을 이야기가 말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새 입시의 승부처는 "자기를 어떻게 서술하는가"로 옮겨 가고 있다고요. 지난 시즌 내내 이야기한 그 힘, 자기 서술이 이제 제도의 한복판에서도 가치가 되고 있는 셈입니다. 어쩌면 학교 안이든 밖이든, 위치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오늘 편지에서 그보다 먼저 남기고 싶은 것은 전략이 아닙니다. 제도가 어른들의 공방 속에 흔들리는 동안 한 열일곱 청소년은 그 제도를 소재로 삼아 자기 질문을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제도에 반응하는 세 번째 방법, 서술이요. 저는 그런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더 깊게 듣고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 심을 한 가지 생각
이번 주에 아이에게 등수 말고 이것을 물어봐 주세요.
요즘 너를 제일 이상하게 만드는 건 뭐야?
그 대답이 바로 아이의 문제의식입니다. 여덟 편의 첫 소설이 전부 거기서 시작됐습니다. 아이의 대답을 답장으로 들려주세요.
다음 주에는 이 질문이 소설의 설정으로 바뀌는 과정을 뜯어 봅니다. 아이의 질문을 이야기로 바꾸는 기술이요. 그때까지 저는 나머지 일곱 개의 질문 곁에 있겠습니다.
생각의 숲에서,
김혜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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