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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SNS, 진짜 위험은 중독이 아닙니다 - 알고리즘 시대의 글쓰기

알고리즘이 나를 서술하기 전에

2026.08.06

안녕하세요, 생각의 숲 김혜원입니다.

 

밤에 불 꺼진 방에서 폰 화면만 환하게 켜져 있는 풍경.

많은 부모님이 문틈으로 보고 한숨을 삼키는 장면일 겁니다. 지난주 편지가 끝난 자리가 바로 그 방 앞이었지요. 학교 밖에서 십 대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 피드 안. 하지만 오늘은 걱정 대신 질문을 들고 그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편지가 평소보다 조금 깁니다. 


 

어른들은 정교하게 측정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세계는 십 대의 SNS를 진심으로 걱정합니다. 그 걱정은 이제 꽤 정교해졌어요. 영국에서는 수만 명을 여러 해 추적한 연구가 나왔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SNS 의  영향은 나이에 따라 다르다.
특히 여자아이는 11세에서 13세 사이가 가장 민감하다.
이 시기에 사용이 늘면 1년 뒤에 삶의 만족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에서는 청소년 만여 명을 3년 동안 지켜본 연구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더 섬세한 사실이 나왔어요. 문제는 '얼마나 오래 쓰는가'가 아니었습니다. '평소보다 사용량이 늘어나는가'였어요. 사용이 평소보다 늘어난 아이가 이듬해에 우울 증상을 더 보인다는 결과입니다. 

 

우리나라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부가 청소년 116만 명을 조사했고 여섯 명 중 한 명(15.8%)이 과의존 위험군이었어요. 규제 논의의 방향도 달라지는 중입니다. 예전에는 아이의 자제력 문제로 봤다면 이제는 그렇게 설계한 플랫폼에 책임을 묻습니다.

 

위에서 말한 위험은 실재하고 이 담론들은 진심입니다. 그런데 이 방대한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보입니다. 이 담론 어디에도 십 대의 자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연구에서 십 대는 표본이고, 저자가 아닙니다. 116만 명이 조사됐지만 당사자의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는 법인데, 알고리즘은 정말 우리의 아이들을 망치기만 하는 걸까요? 지금의 아이들을 두고 우리는 알고리즘이 없던 시대를 살아본 적 없는 '첫 알고리즘 네이티브 세대'라고 정의합니다. 그 안에서 자아가 형성된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를 아는 첫 번 째 세대인거죠. 

 

 

일방향 거울 — 알고리즘은 매일 아이를 서술한다

알고리즘이 하는 일을 한 꺼풀 벗겨 보면 한 마디로 '서술'입니다. 알고리즘은 매일 아이에 대한 메시지를 보냅니다. "너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너는 이런 사람이야."

 

3초짜리 시청 기록과 멈칫한 스크롤이 쌓여서 아이의 프로필은 매일 더 상세해져요. 그런데 이 서술에는 이상한 구조가 있습니다. 일방향 거울(one-way mirror)입니다. 아이는 거울 앞에 서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거울 뒤에서 아이를 관찰하며 서술을 쌓아갑니다. 거울 앞에 선 사람은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서술은 자주 틀립니다. 행동은 정확히 읽지만 내면은 오독해요. 이를테면 무서워서 몇 번이고 돌려본 영상을 좋아하는 것으로 분류하는 식이지요. 본 것은 알지만 왜 봤는지는 모르니까요.

요즘은 가장 내밀한 개인정보 중 하나가 SNS 알고리즘이라지요. 우리는 누군가의 알고리즘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게 늘 정확한 것은 아닐 수도 있거든요.

 

흥미로운 연구가 하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알고리즘이 쌓아둔 자기 데이터를 직접 보여준 실험이었어요. 대상 아이들이 화를 낸 지점은 뜻밖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군가 나의 데이터를 모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부정확한 나'에 화를 냈습니다. 내 데이터에는 무관심해도 알고리즘이 생각하는 나에는 강렬하게 반응했고 자기를 다시 서술하고 싶어 했습니다. 아이들을 움직이는 건 프라이버시가 아니라 정체성이라는 거예요.

놀랍게도 보여주면, 다시 쓰고 싶어합니다.

 

이쯤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알고리즘의 위험에 이름을 다시 붙이게 됩니다.

세상의 담론은 이 위험을 중독이라고 부릅니다. 스크린 타임의 문제라고요. 그런데 연구들을 계속 읽다보면 더 깊은 층이 보입니다.

 

알고리즘은 매일 아이를 서술하는데

아이가 자기를 되서술할 도구는 아무도 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화를 내는 것처럼, 우리가 정말 걱정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닐까요?

스크린 타임은 증상이고 서술권의 상실이 실제 병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름을 다시 붙이면 처방도 바뀝니다. 차단이 아니라 저술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위험의 이름은 중독이 아니라 서술권 상실, 처방은 제한이 아니라 펜입니다.


 

 

자아의 자라는 동안 내내 "너는 이런 사람"이라고 매일 제안받으며 자라는 최초의 세대에게 다시 쓸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면 좋겠습니다.

소설 쓰기는 그 일방향 거울을 반대로 돌리는 행위입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피드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 나를 통과하는 문장을 하나씩 써 내려가는 것. 알고리즘이 나를 서술하기 전에 내가 나를 서술하는 일이요. 알고리즘은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3초 단위로 알고 다음 행동을 제안합니다. 그런데 왜 좋아하는지는 데이터 안에 없어요. 그것은 서술해야만 존재하는 정보입니다.

  거울 앞의 시간 — 알고리즘은 매일 아이를 서술한다 (AI 생성 이미지)  
  거울 앞의 시간 — 알고리즘은 매일 아이를 서술한다 (AI 생성 이미지)  

 

 

내부 보고서 — 그 세대의 소설이 특별한 이유

저는 알고리즘 이전을 살아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실 정확히는 모릅니다. 알고리즘 안에서 자아가 자란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요. 번역자 없는 세계의 원어민으로 사는 십 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 감각은 통계가 다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알고리즘 네이티브 세대가 쓰는 글은 일종의 내부 보고서입니다. AI가 쓴 글이 넘치는 피드에서 특정한 삶으로 통과한 경험은 갈수록 귀해지고 있기도 하고요.

 

"글쓰기가 입시에 도움이 되나요?" 학부모님들께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제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요. 그보다 훨씬 큰 것에 도움이 된다고요. 매일 "너는 이런 사람"이라고 제안받는 세계에서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 힘이 될테니까요. 입시 뿐 아니라 삶 전체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자기를 서술할 줄 아는 능력, 그것이 앞으로 존재하는지 존재당하는지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겁니다.

 

 

  처방은 제한이 아니라 펜 — 알고리즘이 나를 서술하기 전에 (AI 생성 이미지)  
  처방은 제한이 아니라 펜 — 알고리즘이 나를 서술하기 전에 (AI 생성 이미지)  

 

 

오늘 심을 한 가지 생각

 

오늘 저녁 아이에게 이렇게 물어봐 주세요.

"요즘 네 피드는 너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아이가 웃으며 "아니거든, 나는 사실…" 하고 정정하기 시작한다면 그 정정이 바로 자기 서술의 시작입니다. 

아이의 대답을 답장으로 들려주세요. 저도 우리 작가들의 대답과 나란히 놓고 읽어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의 숲에서,

김혜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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