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의 숲 김혜원입니다.
오늘의 편지는 작법 이야기입니다. 한참 글을 쓰고 있는 생각의 숲 작가들과 제일 먼저 나누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소설을 쓸 계획이 없는 분께도 쓸모가 있을 거예요. 질문을 이야기로 바꾸는 기술은 생각을 다루는 유용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형태로 바꾸고 세상에 내보이는 것은 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이니까요.
질문에서 이야기까지, 네 단계 걸음을 이제 정리해 볼게요. 이건 저희가 만든 발명품이 아닙니다. 오래된 소설들이 먼저 걸어간 방법이에요. 우리는 그 선배들의 발자국을 나란히 따라가 봅니다.
첫 번째 걸음 — 겪은 것을 질문으로 뒤집는다
이야기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시작의 순간이란 바로 당연한 일상과 낯선 생각 한 줄이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문득 문득 어? 정말 그런가?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되는 이런 순간은 사소하게 자주 일어납니다.
지난 호에 언급했던 2기의 한 작가님의 경우(A작가라고 할게요), 어떤 어른의 한 마디가 트리거 역할을 했습니다. "사회에 나가면 (성적보다) 인격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언제나 성적인 학교 생활에 익숙했던 고등학생인 A작가는 그 말이 내면에 만들어 내는 충돌점을 응시했습니다. 낯선 말이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흘려보내지만 어떤 사람들은 생각을 이어가고 이어가다 뒤집기도 합니다. 쓰는 사람은 대부분 생각을 길게 이어가는 사람, 작은 것을 크게 보는 사람이니까요. A작가는 생각을 하다 이렇게 질문 했습니다. 성적만큼 인격이 그렇게 중요하다면....그것으로 등수를 매기면 어떻게 되는데?
이 '뒤집기'의 원형을 찾는다면 9호에서 소개해 드린 메리 셸리를 떠올릴 수 있어요. 열여덟의 셸리는 당시 과학계가 떠들썩하게 논하던 전기와 생명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고 뒤집었습니다. 정말로 사람이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고 계속 생각을 이어갔습니다. 그 뒤집힌 생각이 《프랑켄슈타인》이 됐고 우리는 이백 년째 그 질문 안에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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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고 느낀 작은 순간을 흘려보내지 말고 "만약 ~라면?"으로 함께 뒤집어 보세요.
두 번째 걸음 — 질문을 세계의 규칙 하나로 바꾼다
초보 작가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무엇인 줄 아시나요? 바로 세계 전체를 새로 지으려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새롭고 다른 세계를 만들고 싶어하는 거요. 하지만 정말 좋은 설정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규칙 하나만 바꾸고 나머지는 현실 그대로 둡니다.
A작가의 소설에서도 현실과 비교하여 바뀐 규칙은 하나뿐입니다. 이 학교에서는 인격이 점수가 된다. 교실도 시험도 등수 게시판도 우리가 아는 그대로예요. 하지만 단지 규칙 하나만 바뀌었는데 세계 전체가 낯설어집니다. 그리고 낯설어진 세계는 이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권해드린 책이 두 권 있습니다. 《기억 전달자》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입니다.
《기억 전달자》의 마을은 단 하나의 규칙 위에 서 있습니다. 아픔의 기억을 아무도 지니지 않는다. 그 밖의 일상은 평온하고 단정한 마을 그대로예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교실도 규칙은 하나입니다. 이 교실에서는 한 아이가 왕이다. 나머지는 우리가 아는 시골 초등학교 그대로고요.
현실에선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낯선 규칙 하나가 이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 축이 됩니다. 낯설고 강렬한 이야기 전체를 지탱합니다. 단순한 규칙이 가진 힘입니다.
만약 이 소설들이 환상 속에 존재하는 듯한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의 이야기였다면 두 소설이 주는 자극과 여운이 그만큼 깊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아닐 거예요.
소설을 쓴다는 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에요. 하지만 그 세상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읽히는 글이 됩니다. 그래서 규칙은 하나에서 시작해요. 처음 글을 쓴다면, 그리고 낯선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특히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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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질문을 "이곳에서는 ~한다"라는 규칙 문장 하나로 바꿔 적어 보세요. 규칙이 두 개를 넘으면 하나만 남기고요. 하나의 질문이 만드는 균열을 집요하게 탐구해보세요.

세 번째 걸음 — 규칙이 사람에게 하는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그래서요, 인격을 점수로 재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요? 소설의 전개는 이렇습니다. 그럼에도 경쟁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새 규칙에도 금세 적응했어요. 그리고 그 적응이, 아이들에게서 무언가를 조금씩 바꾸어갑니다.
A작가는 지금 이 지점까지 소설을 밀고 나갔습니다. 개연성과 논리, 상상을 펼쳐갈 시간이에요. 원고와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이런 성장을 보는 것이 정말 즐겁습니다. 열일곱 작가가 문제집이나 논문이 아닌 스스로 만든 설정과 생각으로 도달하는 통찰이 만들어지는 중이니까요. 그 결론이 어디에 닿을지는 작가 자신도 아직 모르지만, 직접 얻은 그 통찰을 우리는 곧 책으로 만나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 통찰은 또 다른 생각과 발견으로 연결될 것이란 것을 확신합니다. 마치 뇌의 시냅스가 늘어나듯 생각과 글은 그렇게 몸집이 커지니까요.
그러려면 꼭 끝까지, 생각을 밀고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막히는 지점에서 잠시 멈출지언정 끝까지 논리를 밀어봐야 해요. 꼭 글로 다 쓰지 않아도 독자가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차이는 쓰는 사람이 생각을 얼마나 끝까지 밀고 나갔는 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억 전달자》도 같은 길을 끝까지 걸었습니다. 아픔을 지운 마을이 결국 무엇까지 함께 지우게 되는지, 소설 속 규칙을 어중간한 데서 멈추지 않고 끝까지 밀어서 답에 도달했어요. 극단까지 밀어 보는 것. 규칙의 결과를 끝까지 따라가는 것. 우리가 독자로서 어떤 책을 읽을 때 어떤 뾰족한 감동이 가슴으로 바로 와 닿을 때가 있지요. 그 감동은 은유의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은유는 사고의 끝에서 만나는 작가의 값진 통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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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 문장 뒤에 "그래서 결국?"을 세 번 이어 물어 보세요. 세 번째 답이 대개 이야기의 심장입니다.
네 번째 걸음 — 인물을 규칙의 경계에 세운다
마지막 걸음입니다.
이야기를 여는 인물은 규칙의 한복판이 아니라 경계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규칙에 대해 가장 정확히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규칙을 떠나 본 사람, 규칙 바깥을 아는 사람이거든요.
예를 들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한병태는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입니다. 그 교실이 처음부터 당연했던 아이들 사이에서 혼자 바깥의 눈을 갖고 있어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경계에 건 사람의 시선으로 보는데, 그게 곧 독자의 시선입니다.《기억 전달자》의 조너스는 마을의 기억을 이어받는 직분에 뽑히면서 규칙 바깥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게 됩니다.
경계에 선 사람. 이건 이미 잘 알려진 '주인공의 조건'이기도 하죠. 규칙 안에만 있던 사람은 의외로 규칙을 정확히 목격할 수 없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건 소설 밖까지 통하는 법칙이란 거예요.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해야 하는 이유일 겁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야기는 언제나 경계에 선 사람의 눈을 빌려 시작되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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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규칙의 세계에 "그 규칙이 처음인 사람"을 한 명 들여보내 보세요. 그 사람 눈에 제일 먼저 이상해 보이는 것이 훌륭한 첫 장면입니다.
네 걸음 요약
- 겪은 것을 질문으로 뒤집는다 — "만약 ~라면?"
- 질문을 세계의 규칙 하나로 바꾼다 — 나머지는 현실 그대로
- 규칙이 사람에게 하는 일을 끝까지 민다 — 은유는 그 끝에서 태어난다
- 인물을 규칙의 경계에 세운다 — 바깥을 아는 눈이 이야기를 연다
함께 읽기 — 오늘의 두 권
《기억 전달자》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비룡소 (원작 1993 · 한국어판 2007) - 규칙 하나로 지은 세계의 교과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 (1987 발표 · 이상문학상 수상작) - 교실 하나에 '권력'의 처음과 끝을 담은 중편.

오늘 심을 한 가지 생각
이번 주말 아이와 이 놀이를 해보세요. 각자 "우리 집(또는 학교)의 규칙 하나만 바꾼다면?"을 정해서 그 규칙이 만드는 세계를 다섯 문장으로 말해 보세요. 생각의 시작, 아이의 다섯 문장을 답장으로 들려주세요.
다음 호부터는 여덟 작품의 문제의식을 하나씩 만납니다. 십 대들은 지금 무엇을 이상하다고 느끼는지, 그 목록이 곧 공개됩니다.
생각의 숲에서,
김혜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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