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생각의 숲 김혜원입니다.
한 아이의 하루에는 이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학교 입학식에서 쌍둥이 형이 신입생 대표로 뽑힙니다. 친구가 무심코 형과 자신을 비교하며 말합니다.
"형은 아는데 넌 왜...."
이 아이에게 엄마는 말합니다.
"형도 같이 해. 둘이 같이 하면 좋잖아."
악의는 없는 사람들의 말이지만 이 아이에겐 그런 말들이 하나씩 가슴에 박힙니다.
이 아이는 2기의 한 작가(D작가라고 부를게요)가 쓰고 있는 소설의 주인공이에요. 무엇을 해도 형이 더 잘하는 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요. 오늘 편지는 이 아이에서 시작해서 질문 하나로 갑니다.
이 아이의 결함은 무엇일까요.
형보다 못하다는 것.
대부분 그렇게 답할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읽었어요. 하지만 그건 결함이 아닙니다.
결함은 상황이 아니다
생각의 숲 2강 인물 설계에서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독자는 스토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사람을 따라간다, 고요. 그래서 완벽한 주인공은 재미없죠. 완벽하지 않은 우리는 감정이입이 안되니까요. 살아 있는 인물은 반드시 결함을 갖고 그 결함이 이야기 내내 문제를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결함이 무엇인지에서 대부분의 초고가 헷갈립니다. 5월에 한 작가가 이렇게 문제를 정의했어요. '주인공이 유행에 뒤처지기 싫어서 자기 개성을 표현하지 못한다.'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결함은 유행에 뒤처지는 게 아니에요. 결함은 "유행을 못 따라가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다"라는 믿음이에요.'결함은 상황이 아니라 주인공이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있습니다. 작가들에게 나눠 준 캐릭터 시트에 그래서 이런 칸이 있어요. 주인공이 갖고 있는 잘못된 믿음. 이야기 끝에서 주인공이 깨닫는 진실.
그러니까 이 법칙에 따르면, 형보다 못하다는 건 그저 상황이에요. 이 아이의 결함은 그 상황을 이렇게 해석한 데 있습니다. 형은 공부도 운동도 다 잘하지만 감정은 없다. 감정과 관계와 사람다움은 내게만 있다. 감정은 내가 가진 '유일한' 장점이다. 이 위태위태하게 빗나간 믿음이 이 소설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제의 결함은 가난이 아니었다
우리 작가의 소설은 아직 쓰는 중이라 결말을 보여 드릴 수 없어요. 대신 다들 아는 이야기 하나로 이 원칙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제제예요.
제제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아버지는 일자리를 잃었고 집은 가난하고 다섯 살 아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매를 맞습니다. 어른들은 제제를 말썽쟁이라고 부르고 어떤 어른은 아이 안에 악마가 들었다고 말해요. 여기까지가 상황입니다. 이 상황만 보면 제제의 이야기는 가난한 집 문제아의 이야기예요.
그런데 소설을 움직이는 건 상황이 아니라 제제가 그 상황을 해석한 방식입니다. 나는 나쁜 아이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다섯 살이 자기 안의 악마를 믿기 시작해요. 그리고 이 믿음이 제제의 결함입니다. 제제는 그 믿음 때문에 더 큰 장난을 치고 더 세게 맞고 더 깊이 잘못된 믿음을 강화해요. 상황이 믿음을 만들고 믿음이 상황을 키우는 거죠.
이 소설 속 어른들은 전부 상황만 봅니다. 가난과 말썽이요. 하지만 단 한 사람이 믿음을 봐요. 제제가 차에 매달리다 걸려 혼쭐이 난 그 포르투갈 사람이 나중에 제제에게 해 준 일은 상황을 바꾸는 게 아니었습니다. 가난도 학대도 그대로였어요. 그 사람이 바꾼 건 제제가 자기를 보는 방식이었습니다. 너는 나쁜 아이가 아니다. 그게 이 소설이 끝에서 도달하는 진실이에요. 제제와 함께 독자인 우리가 알게 되는 이야기에요.
독자가 이 책을 덮으며 우는 건 제제의 가난 때문이 아니에요. 다섯 살이 자기를 나쁜 아이라고 믿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믿음이 무기가 될 때
D작가의 주인공 캐릭터로 잠깐 돌아오겠습니다. 이 아이의 믿음은 제제보다 한 겹 더 복잡해요. 제제의 믿음은 자기를 깎아내지만 이 아이의 믿음은 자기를 지키거든요. 너무 완벽한 형은 감정을 내보이지 않으니 감정은 내게만 있다는 생각, 그러니 나는 형보다 사람답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겉으로 보면 건강한 자존감처럼 보이지만 잘못된 믿음이 어떻게 불어나는지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어요.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려다가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형을 고립시키는 쪽에 서게 됩니다. 자존심을 지키려는 마음이 누군가를 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는 이 아이러니를 열일곱 살 작가가 설계했습니다.
저는 이 초안을 읽으면서 열등감이라는 마음을 이만큼 집요하게 따라간 청소년 원고를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자기 위안에서 외면으로 외면에서 계략으로 이어지는 논리가 안에서 하나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문장은 다듬을 부분이 많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스토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정을 전면에 내세우는 글을 쓰기로 했다면 그 감정의 출발점과 끝 점, 감정이 변화하는 과정과 주변에 미치는 영향까지 살펴봐야 해요. 감정을 파헤치는 힘이 강한 D 작가를 위한 피드백을, 오늘 보내드려야겠습니다.
형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 작가의 발전은 감정의 섬세함이나 스토리의 매력만이 아닙니다. D작가의 6월 시놉시스에서 사실 주인공은 형이었습니다. 완벽한 형이요. 하지만 그 시놉시스는 첫 단락에서 멈췄고 여름 내내 앞으로 나가지 못했어요. 그러다 8월 초안에서 주인공이 동생으로 바뀌자 소설이 단숨에 2막까지 나아갔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해요. 형의 눈으로 보면 동생의 결함은 상황으로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동생이 나를 질투한다. 그게 전부겠죠. 그래서 더 이상 쓸 이야기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주인공에게 공감하게 만드는 그 사람만의 결함, 잘못된 믿음은 그 사람 안에서만 보이고 서술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을 바꾼 건 탁월한 선택이고, D작가가 이야기 만드는 사람으로 한층 더 성장한 증거입니다.
아이를 어떤 눈으로 보는가
작법과는 조금 떨어진 이야기지만,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건 이 '시점' 이야기예요.
우리는 아이를 볼 때 자주 형의 눈으로 봅니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이번 학기와 지난 학기. 첫째와 둘째. 그런데 그런 외부의 눈으로 보면 아이의 결함은 전부 상황으로 보여요. 형보다 못한다. 성적이 떨어졌다. 친구가 적다. 이건 제제를 보던 어른들의 눈과도 같아요. 가난과 말썽만 보이는 눈. 그러면 해결책도 상황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어요. 학원을 바꿔 볼까, 이사를 가 볼까 하고요.
우리가 정말 봐야 할 건 이 아이는 지금 자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 일거예요. 무엇을 자기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믿고 있는가. 그 믿음이 아이를 어디로 밀고 있는가. 상황은 부모가 못 바꿀 때가 많아요. 형은 계속 형이고 성적은 오늘 밤 안 오릅니다. 그런데 스스로에 대한 해석은 대화로 바뀝니다. 제제를 바꾼 것도 상황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선이었던 것처럼요. 아이에게 그런 사람이 부모님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해보기
이번 주에 아이에게 한 번만 물어봐 주세요.
"네가 너만 가진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게 뭐야?"
답을 듣고 나서 그 장점을 지키려고 아이가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는지 떠올려 보세요. 거기에 아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캐릭터 시트의 세 칸
1. 상황 — 형보다 못하다 / 가난하고 매를 맞는다 (이건 결함이 아닙니다)
2. 잘못된 믿음 — 감정은 내가 가진 유일한 장점이다 / 나는 나쁜 아이다 (이게 결함입니다)
3. 진실 — 이야기 끝에서 주인공이 깨닫는 것
결함은 상황이 아니라 해석에 있습니다.
함께 읽기 — 오늘의 두 권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J. 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동녘 (원작 1968 · 한국어판 2003) — 상황과 믿음이 가장 선명하게 갈리는 책. 아이와 같이 읽고 "제제는 왜 자기를 나쁜 아이라고 믿었을까"를 물어보세요.
《아몬드》 손원평 지음, 창비 (2017) — 감정을 못 느끼는 소년. 2강에서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의 예로 쓰는 책이고 D작가의 형을 이해하는 데 가장 가까운 소설.
캐릭터 프로필 시트
지난주 시놉시스 템플릿에 이어 두 번째 템플릿을 열어 드립니다. 오늘 이야기한 잘못된 믿음과 진실 칸이 들어 있는 바로 그 종이, 생각의 숲 작가들이 인물을 설계할 때 쓰는 캐릭터 프로필 시트예요. 아래 링크를 누르면 내 구글 문서에 사본이 생깁니다. 아이와 함께 좋아하는 소설 주인공을 넣어 채워 보셔도 좋고 아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넣어 보셔도 좋아요.
캐릭터 프로필 시트 내 사본 만들기:
오늘 심을 한 가지 생각
아이가 자기만의 장점이라고 믿는 것 하나를 답장으로 들려주세요.
그리고 그 장점을 지키려고 아이가 최근에 한 일이 있었다면 그것도요. 그게 아이 이야기의 결함이자 심장일지 모릅니다.
다음에는 여덟 편 중 유일하게 학교가 나오지 않는 소설을 만납니다. 학교 밖에서 자란 작가가 학교를 지워서 학교를 본 이야기예요.
생각의 숲에서,
김혜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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