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생각의 숲 김혜원입니다.
한국의 십 대들은 대부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죠. 중간고사, 수행평가, 기말고사라는 계절을 피할 수 없어요. 지금이 딱 그 기말고사의 계절이에요. 생각의 숲 작가들도 당분간은 글쓰기를 쉬어갑니다. 시험이 끝나갈 무렵이면 잠시 숨을 고르며 느슨해지는 짧은 틈이 오고 다시 쓰기의 시간으로 돌아올 겁니다.
오늘 편지는 쓰기와 쓰기 사이 작은 틈에 대한 이야기예요. 또한 쓰기의 흐름이 깨질까봐 걱정하는 한 작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글은 단번에 쓰는 게 아니에요
생각의 숲을 시작하고 나서 더 또렷이 보이는 게 하나 있어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쓰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어른도 아이도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내 이야기를 한번 꺼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살아요.
그런데 그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어요. 그래서 저는 한 줄이라도 쓰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잘 썼는지 아닌지는 한참 뒤의 일이고요. 시작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대단한 일이거든요.
왜냐하면 글쓰기는 시험처럼 단번에 답을 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점수가 바로 채점 되지도 않아요.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된 답을 적어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생각을 마음에 오래 품고 틈 날 때마다 조금씩 이어 가는 일이에요. 그래서 시작이 가장 어렵고 또 귀해요. 또한 쓰기는 오직 시간의 문법만이 유효합니다. 생각보다 아주 오래 써야 하죠.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거든요. 고민한 딱 그 만큼의 시간을 문장에 담고 책 안에 밀봉해서 세상으로 내보내는 일이 글쓰기인 것 같아요.
막힌 자리가 끝은 아니에요
시간이란 게 늘 매끈한 건 아니죠. 모든 시간이 그렇듯 쓰는 시간을 오래 이어 가다 보면 반드시 막히는 순간이 와요. 못 하겠다, 주저앉고 싶을 때가 옵니다. 시험과 같은 외부의 압박이 있거나 다른 여러 이유로 마음이 산만해지고, 더 이상 좋은 생각도 안 떠오르고 답답해집니다.
그런데 막막한 그 자리가 결코 끝은 아닙니다. 미국 작가 조지 손더스 — 부커상을 받은 소설가이면서 요즘도 매주 글쓰기를 배우려는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이에요 — 는 글쓰기의 '막힘'을 이렇게 설명해요.
Q: 글쓰기의 막힘이란?
"문장이 나빠지거나 흐릿해질 때 그 이야기는 거기에 보물을 숨기고 있는 겁니다. '여기를 파라!' 하고 말하는 거예요."
(출처: Image Journal)
막힘은 멈추라는 신호가 아니라 더 들여다보라는 신호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의 결론도 단순해요.
"글쓰기는 곧 고쳐쓰기입니다. 아무 글이나 일단 쓰고 고쳐 쓰면서 제 모양으로 다듬을 수 있다고 믿는 거예요."
(출처: Electric Literature)
한 영상에서는 "고쳐쓰기는 능동적인 사랑(revision is a form of active love)" 이라도 표현하기도 했어요.
한 번에 잘 쓰는 게 아니라 일단 써두고 계속 다시 돌아와 다듬는 일. 첫 글은 그저 첫 글일 뿐이에요. 좋을 필요도 없어요. 그냥 존재하기만 하면 거기서부터 이어 갈 수 있으니까요. 그는 첫 초안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어요.

Q: 초안이란 뭔가요?
"첫 초안에서 인물들은 만화 같은 꼭두각시예요. 그러나 고쳐 쓰면서 그들은 얼굴을 얻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죠."
(출처: Image Journal)
오래 품고 이어 갈수록 만화 같던 이야기가 점점 사람이 되어간다는 거예요. 이게 글쓰기의 본질이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가 삶을 닮았다고 느끼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에요.
지난해 1기에서 책 한 권을 써낸 이나린 작가는 후배들에게 이런 조언을 남겼어요.
"막히면 원고를 3~7일 덮어두세요. 계속 매달리면 지치거든요. 힘을 빼는 것도 작가의 기술이에요."
— 이나린 (생각의 숲 1기)
덮어두는 것도 사실은 이어가는 방법이란 걸 아는 십 대, 멋지지 않나요?
글을 끝까지 써 본 사람은 손을 멈춰도 생각은 마음 한구석에서 계속 자란다는 걸 배웁니다. 그러다 어느 날 다시 펼치면 멈춰 있던 자리에서 이야기가 한 뼘 더 자라 있어요. 결국 모든 것은 완성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글쓰기는 그렇게 느리게 그러나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일이에요. 그래서 때로는 잠시 멈추는 것이 오히려 더 현명한 선택일 때도 있어요. 글쓰기 뿐 아니라 모든 일에는 보이지 않는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을 타며 유연하게 생각도 글도 이끌어 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거예요.
다르게 말하자면, 잠시 쉬었다가 돌아온 쓰기의 자리에는 오히려 더 새로운 발견이 이어질 거란 뜻이에요.
✉️ 손더스는 지금도 'Story Club'에서 매주 글쓰기 편지를 씁니다 — 우리처럼요.
[https://georgesaunders.substack.com]
오늘 심을 한 가지 생각
기말고사로 마음이 바쁜 계절이에요. 이번 주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완성하라고 하기보다 이렇게 한번 물어봐 주세요.
"요즘 머릿속에서 자꾸 떠오르는 생각 하나만 있다면 뭐야?"
아이가 무언가 쓰고 싶어 하는 기색이 보이면 잘 쓰든 못 쓰든 그 시작에 박수를 보내주세요.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하는 순간에 함께 해주세요.
다음 주 목요일 아침에 다시 뵐게요.
생각의 숲은 십 대가 8개월 동안 자기 손으로 소설 한 편을 완성하는 출간 프로젝트예요.
다음 기수(3기) 소식은 이 편지를 받는 분들께 가장 먼저 전해드립니다.
마음 한구석에 '나도 써보고 싶다'를 품고 있는 사람이 떠오른다면 이 편지를 그대로 전해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의 숲에서,
김혜원 드림.
ForestLabs · 생각의 숲 매주 목요일 아침, 한 통의 편지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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