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생각의 숲 김혜원입니다.
1963년 11월의 어느 아침. 폴 매카트니가 잠에서 깼는데 머릿속에 어떤 멜로디가 흐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침대 옆 피아노로 달려가 그 멜로디를 옮겼고 그렇게 비틀즈의 명곡〈Yesterday〉가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어요. 사람들은 이 일화를 들으며 천재들의 번쩍이는 영감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뒷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뒷이야기는 우리가 '영감'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통념을 뒤집습니다.
오늘 편지는 영감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글이에요.
영감은 환상입니다
영감(inspiration)이라는 단어는 이상하게 신비롭게 들려요. 갑자기 어디선가 떠오르는 것, 운 좋은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 천재만 보는 어떤 찬란한 빛 같은 느낌이잖아요. 우리는 영감을 그렇게 생각하고 동경하곤 해요. 나에게도 특별한 영감이 찾아오길 바라고요.
하지만 영감은 환상입니다.
멋진 아이디어, 좋은 생각은 진공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씨를 뿌려 재배하는 식물적 성장 단계를 거칩니다. 씨앗이 흙에 떨어지고, 비를 맞고, 햇볕을 보고, 시간을 들여서 자라난 다음에야 꽃이 피듯이요.
누군가가 만든 어떤 결과물은 그 사람이 그동안 무엇을 읽었고, 무엇을 보았고, 누구와 무엇을 이야기했고, 어떤 일에 마음 쓰며 살아왔는지의 결과물이에요.
그동안의 모든 인풋이 시간 속에서 발효되어 어느 날 떠오르는 부스러기 같은 생각이 바로 영감의 정체에요.
비틀즈 〈예스터데이〉가 정말 꿈에서 나왔을까
다시 1963년 11월, 폴 매카트니가 머릿속에 한 멜로디가 흐르고 있었대요. 침대 옆 피아노로 달려가 그 멜로디를 옮겨 적었고요.
매카트니는 그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내가 어딘가에서 들은 곡을 무의식적으로 베낀 게 아닐까" 의심했어요. 그래서 한 달 동안 음악 업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 멜로디를 들려주며 물었어요. "이런 곡 들어보신 적 있나요?" 모두가 처음 듣는다고 한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 곡이라고 확신했대요. 하지만 이 짧은 멜로디는 아직 그저 짧은 멜로디일 뿐이었어요. 그 후로 오랫동안 매카트니는 그 멜로디를 이리저리 요리하기 시작했어요.
Yesterday 초기 가사는 "Scrambled Eggs" (스크램블 에그)였대요. 네, 우리가 자주 먹는 그거요. 그는 멜로디 위에 "Scrambled Egg / Oh my baby how I loved your legs" 같은 임시 가사를 붙여놓고, 시간을 두고 계속 다듬고 또 다듬었어요.
〈예스터데이〉라는 제목과 지금의 가사는, 폴 매카트니가 14살에 잃은 어머니의 기억이 멜로디에 겹쳐 떠올랐을 때 비로소 완성 됐어요. 이후 편곡자 조지 마틴이 현악 4중주 편성을 제안하고, 녹음에 들어간 건 1965년 6월. 세상이 사랑하는 Yesterday는 멜로디를 떠올린 후 18개월 동안 공들여 완성한 작품이에요.

그래도 꿈에서 들은 멜로디는 신비롭지 않냐고요? 그렇긴 해요. 하지만 당시 매카트니는 이미 비틀즈로 4년 가까이 매일 작곡하고 연주하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을 거예요. 비틀즈는 1960-1964년 사이 독일 함부르크의 클럽 등에서 1,200회가 넘는 라이브 공연을 했다고 해요. 매일 8시간씩 무대에 서며 연주했어요.
말콤 글래드웰은 책 『아웃라이어』에서 이 시기를 비틀즈를 '비틀즈답게' 만든 결정적 인풋이라고 분석했어요. 그 시간이 없었다면, 〈예스터데이〉의 그 멜로디는 떠오를 자리조차 없었을 거라고요. 어떤가요. 이 이야기를 알고 나면 반짝이는 영감으로만 곡을 기억하기엔 아깝지 않나요?
세상의 모든 멋진 결과물은 누적된 인풋과 노력, 시간으로 만들어진다는 건 물리법칙에 가까운 진실인 것 같아요.
글쓰기에서 인풋은 무엇일까 — 씨앗은 책입니다
1기 청소년 작가의 질문이 있었어요.
"글 쓸 때 영감은 어디서 나오나요?"
글쓰기 시작에는 장벽이 있어요. 첫 문장을 쓰기가 정말 어렵잖아요.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모를 때, 우리는 영감을 바라게 되죠. 하지만 제가 뭐라고 이야기 해줬을지, 아시겠죠.
"글쓰기는 물리적 현상이에요. 아웃풋은 무조건 인풋의 결과물이에요."
글쓰기에서 인풋의 가장 기본 형태는 읽기에요. 읽기는 쓰기의 씨앗이에요. 좋은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책은 양분이고, 시간이고, 마음을 키우는 흙입니다. 제가 확신하는 읽기와 쓰기의 관계는 이렇습니다.
많이 읽는 사람이 꼭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그러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모두 많이 읽는다.
읽기는 충분조건이 아니지만, 필요조건이에요. 제가 혼자 주장하는 말은 아니에요. 스티븐 킹이 이미 한 말이니까요.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 그 외에 다른 길은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은 쓸 시간도, 쓸 도구도 없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 (2000)
그래서 우리는 책 리스트를 먼저 공유했어요
생각의 숲 1기 때 우리는 글쓰기를 시작하기 먼저 읽었어요. 추천 리스트 중 한 권을 읽고 환경에 대한 글을 시작했어요. 이번 2기도 학교 주제의 책 리스트를 선정했어요.
책 리스트는 반드시 이 책들이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주제(올해는 '학교')에 대해서 다양한 시선을 먼저 접해보자는 제안이죠. 비유하자면 수영하기 전에 몸에 물을 묻히고 준비운동을 하는 단계로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흡수하고, 내가 어디에 마음이 가는지 발견하고, 그 다음에 쓰기를 시작한다면 쓰기가 조금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거든요.
독자님들께도 리스트를 공유드려요. 자녀가 학교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면, 또는 글이 아니더라도 학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싶다면, 이 중 한 두 권을 함께 읽어보세요. 그리고 대화를 나눠본다면, 아이가 하루의 대부분을 생활하는 중요한 공간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2기 작가들과 함께 읽고 나눌게요.
단, 어느 순간은 읽기를 멈춰야 해요
읽기가 씨앗이라고 했지만, 씨앗만 계속 쌓아두면 자라지 않아요. 어느 순간은 흙에 심어야 하는데, 그게 쓰기예요. 읽기를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오래 읽기만 하면 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거예요. 독자로서 한껏 높아진 눈에 자기 글이 초라해 보이고, 점점 자신을 잃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읽기와 쓰기 사이가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조절하는 게 좋겠지요.
무슨 일이든 하는 만큼 늘잖아요. 읽기를 잘하려면 많이 읽고, 쓰기를 잘 하려면 많이 써야해요. 읽기는 쓰기를 위한 생각을 예열하고 주제에 대한 감을 잡게 도와주지만 쓰기는 오직 쓰기로만 단련됩니다. 좋은 글이란 아웃풋은 결국 많은 글을 쓰는 인풋으로 만들어지니까요. 폴 메카트니처럼 어느날 갑자기 멋진 나만의 문장이 떠오를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다 읽고 나서 쓰는 게 아니에요. 읽으면서 쓰고, 쓰면서 다시 읽고, 그 사이를 왕복하는 리듬을 만들어 가는 즐거움이 바로 글쓰기랍니다.
학교를 다시 보는 10권
- 손원평 〈아몬드〉 (2017, 창비) — 감정을 못 느끼는 소년의 학교생활. 캐릭터 아크의 정수.
- 김려령 〈완득이〉 (2008, 창비) — 가난·다문화·학교가 한 십대에 다 담긴 이야기.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 이꽃님 〈죽이고 싶은 아이〉 (2021, 우리학교) — 학교폭력 사건을 여러 시점에서. 시점·구조 공부에 최고.
- 이금이 〈유진과 유진〉 (2004, 푸른책들) — 같은 이름 두 소녀의 교차된 학교 기억. 시선 교차의 정석.
- 김려령 〈우아한 거짓말〉 (2009, 창비) — 자살한 동생의 흔적을 따라가며 드러나는 학교 안 거짓말들.
- 이꽃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2018, 문학동네) — 시간 너머의 편지가 정체성을 찾아주는 이야기. 학교 + 판타지 한 스푼.
- 이순원 〈19세〉 (1999, 세계사) — 시골에서 도시 학교로 옮긴 소년의 흔들림. 학교 묘사가 시적.
-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987, 다림 청소년판) — 학급 권력 구조의 알레고리. 한국 청소년 문학의 고전.
- 김혜정 〈오백 년째 열다섯〉 (2019, 자음과모음) — 영원히 열다섯에 머무는 소녀. 판타지로 학교의 시간을 다시 보는 책.
- 김선영 〈시간을 파는 상점〉 (2012, 자음과모음) — 친구의 죽음 이후 학교를 떠도는 십대가 만난 신비한 상점.
그리고 한 권 더 — 작년 1기 작가 일곱 명이 함께 만든 책 <십 대가 지구를 구하는 방법>
우리는 이 중 한 두 권만, 작가의 눈으로 깊게 읽어 보기로 했어요.
작가의 눈으로 읽는 방법은?
책을 그냥 즐기며 읽는 것과, 글을 쓰는 사람의 눈으로 읽는 것은 아주 달라요. 작가의 눈으로 읽는 방법은 한 마디로 책을 해부하듯이 읽는 거예요. 좋았던 책을 해부하고 분석해서 꼭꼭 씹어 먹듯이 보는거죠.
읽으면서 답을 찾을 질문들이 있어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생각의 레이어를 쌓아갈 거예요. 이 핵심 질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이야기 축을 만들 거예요.
- 주인공의 결함은 무엇이고, 끝에서 어떻게 변하는가?
- 작가는 학교를 어떻게 묘사하는가?
- 어떤 갈등이 책을 끌고 가는가?
- 작가가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한 가지는 무엇인가?
1기 김선명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글 쓰면서 읽었던 책들이, 지금 다시 도구가 돼요."
이 말이 바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작가의 눈이란 겉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구조를 보는 눈이거든요. 구조를 보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방향을 제시하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요.
생각의 숲에서 차곡차곡 쓰기를 위한 인풋을 쌓는 작가들을 응원해주세요.
📎 함께 보면 좋을 자료
김영하 작가 — 세바시 강연 〈자기 해방의 글쓰기〉
https://www.youtube.com/watch?v=WIoGFHghNTk "왜 우리는 쓰는가."
스티븐 킹 — 『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 (김영사, 2002 / 원저 2000) 작가가 되고 싶은 모든 십 대에게 권하는 책
말콤 글래드웰 — 『아웃라이어 (Outliers)』 (김영사, 2009 / 원저 2008) 비틀즈 함부르크 시기 분석. 천재성과 누적 인풋의 관계를 가장 깔끔하게 정리한 책.
오늘 심을 한 가지 생각
여러분은 지금 읽는 사람인가요, 쓰는 사람인가요?
답은 마음에 담아두셔도, 메일로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 다시 뵐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호(6/4)에는 〈결과물의 시대가 끝났습니다〉를 보내드립니다. AI가 글을 대신 써주는 시대에 왜 우리는 여전히 글을 써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글이에요.
참고 출처:
- 비틀즈 〈Yesterday〉 작곡 일화 — Yesterday (Wikipedia), The Beatles Bible —Yesterday
- 비틀즈 함부르크 1,200회 공연 — Malcolm Gladwell, Outliers (2008)
- 스티븐 킹 인용 — On Writing: A Memoir of the Craft (Scribner, 2000)
- 추천 도서 10권 — 생각의 숲 작가용 자료에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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