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안예지 원장입니다.
오늘은 아이들의 ‘먹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간혹 정말, 정말 안 먹는 아이들이 있지요. 겨우 한두 숟갈 먹고는 배가 부르다 하고, 입에 넣고도 씹지도 삼키지도 않은 채 한 시간을 깨작거리는 아이들 말입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은 속이 터질 지경일 거예요.. ㅠㅠ
키도 크고 체중도 늘고 면역력도 좋아지려면 뭘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도통 먹질 않으니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무엇을’ ‘얼마나’ 먹는지에 부모님도 예민해지는 경우가 많고요.
하지만 이렇게 안 먹는 아이들을 10년 넘게 봐온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애 안 먹어요”라는 고민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풀어보려고 해요.
밥 양에 매달리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부모님이 밥 양에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눈에 바로 보이니까요. 오늘 몇 숟갈을 먹었는지, 어제보다 얼마나 적게 먹었는지가 계속 눈에 밟히잖아요.
반대로 아이가 밥상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다음 끼니에 배가 고픈지, 밥 먹는 동안 마음이 편한지는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들여다봐야 하지요. 그러다 보니 걱정이 자연스럽게 “양”으로 몰리게 됩니다.
지금까지 아이가 얼마나 먹는지, 그 ‘양’에 집중해 오셨다면, 그건 부모님이 잘못하신 게 아니라 그만큼 마음을 많이 쓰셨다는 뜻입니다.
“잘 먹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
제가 진료실에서 부모님께 늘 말씀드리는 것이 있어요.
잘 먹는 아이는 ‘많이 먹는 아이’가 아니라, 자기 배고픔을 알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아이입니다.
정량보다 조금 적게 먹더라도 식탁에 바르게 앉아 스스로 떠먹고, 처음 보는 반찬도 한 번은 시도해 보며 즐겁게 식사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반대로 정량을 꾸역꾸역 채우긴 하지만, 늘 밥상에서 울거나 짜증을 내고, 부모가 떠먹여 주는 밥을 억지로 삼키며, 영상이나 장난감이 없으면 식사를 제대로 못 하는 아이도 있고요.
먹는 양이 적더라도 전자의 아이를 두고 우리는 “잘 먹는 아이”라고 말할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제가 생각하는 “잘 먹는 아이”는 이런 아이예요.
하나, 먹는 양보다 태도가 안정된 아이.
오늘은 반 그릇, 내일은 한 그릇 반을 먹더라도 그 자체는 크게 상관없어요. 양이 들쭉날쭉해도 밥상을 대하는 태도가 편안하고 안정적이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둘, 식사 시간에 집중하고, 정해진 시간에 앉을 수 있는 아이.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 식사에 집중하는 시간이 있다는 뜻이에요. 밥을 얼마나 먹느냐보다 밥상 앞에 30분 정도 앉아 식사에 집중할 수 있느냐가 사실 더 중요한 신호입니다.
셋, 소화를 잘하고, 다음 끼니에 다시 배고픔을 느끼는 아이.
한 끼를 잘 먹었어도 다음 끼니에 배고픔이 오지 않는다면, 그 사이 무언가가 식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반대로 조금씩 먹더라도 다음 끼니에 배고파하고, 그래서 다시 밥을 먹고 싶어하는 아이는 몸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넷, 식사가 긍정적으로 기억되는 아이.
매일 반복되는 식사 시간이 아이에게 어떻게 기억되는지는, 어른이 된 뒤의 식사 태도까지 영향을 줍니다. 밥상이 편안한 자리인지, 긴장되는 자리인지가 ‘오늘 얼마 먹었는지’보다 훨씬 오래 남거든요.
이 네 가지가 잘 자리 잡힌 아이는 양이 조금 적어도 잘 먹는 아이예요. 반대로 양은 많이 먹어도 이 네 가지가 흔들리는 아이는, 진료실에서 오히려 더 걱정될 때가 있습니다.
그럼 안 먹는 아이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우리 애 안 먹어요”라는 고민을 이렇게 다시 풀어보시면 좋습니다. 밥 양이 아니라, 위의 네 가지 중 어디가 흔들리는지부터 살펴보세요.
- 식사 시간에 자리에 앉기 어려워한다면 → 집중력과 식사 환경의 문제일 수 있어요.
- 다음 끼니에 배고픔이 안 온다면 → 간식·음료·활동량이 적당한지 체크해야 해요.
- 먹고 나서 자주 배가 아프거나 변이 이상하다면 → 소화 부담이 큰 상태일 수 있어요
- 식사 시간이 아이에게 긴장의 자리라면 → 밥상 분위기와 부모의 말·표정부터 바꾸는 게 먼저예요.
이렇게 시선을 넓히면 “얼마나 먹였나”가 아니라 “무엇을 바꿔주면 좋을까”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부모님이 실제로 ‘해볼 수 있는’ 질문이에요. 밥 양은 이 네 가지가 자리 잡히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분이거든요.
오늘 밥상에서, 이것 하나만 바꿔보세요.

한 번에 다 바꾸실 필요는 없어요. 오늘 저녁 밥상에서 딱 하나만 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오늘은 아이가 “그만 먹을래”라고 말하는 순간, 그대로 멈춰 주세요.
“한 숟갈만 더”, “이것만 먹고” 같은 말 없이요. 아이가 스스로 멈춘 지점을 부모가 인정해 주면, 아이도 자기 배부름 신호를 조금씩 알아차리게 됩니다. 반대로 매번 “한 입만 더”가 붙으면, 아이는 자기 몸의 신호가 아니라 부모 눈치를 보며 먹게 되고요.
다음 주에는 어린이집 방학이 시작되는 시기에 맞춰, 집에서 아이 식사를 챙기실 때 도움이 될 실용적인 식단·간식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이번 호에서 가장 도움이 된 부분은 어디였나요? 의견 남겨주시면 다음 주제를 정하는 데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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