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F1 뉴스레터 Pit.IN 피트인 발행인 오제형입니다.
벨기에 그랑프리 주말입니다. F1의 역사를 보면 단번에 떠오르는 몇몇의 아이코닉한 서킷들이 있죠. 스파-프랑코샹(Spa-Francorchamps)도 모터스포츠 레이싱 트랙중 클래식 of 클래식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는 위대한 서킷 중 하나로 쏜꼽힌다는 사실은 많이들 알고계실텐데요.
2026년 전기 모터의 비중을 높인 규정이 도입된 그 첫 번째 레이스는 어떤 평가를 받게될까요? 오늘은 이슈가된 서킷 얘기로부터 뉴스레터를 시작해봅니다. 레드불 이야기가 많네요.

전기 모터로는 전율을 느낄 수 없어...
2026년 레귤레이션이 도입된 첫 번째 해인만큼 각각의 서킷에서도 기존과 다른 평가가 존재하는게 당연합니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F1이 최근에 활성화 되었기에 뉴비분들께서는 지금의 경기 내용 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각자의 코너마다 이름이 붙어있을만큼 레전드 서킷 중 하나인 스파에 대한 평가 편차는 유난히 더 큰 것 같습니다.

벨기에 그랑프리에서는 '에너지 관리'가 정말 정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곳은 랩 길이가 캘린더에서 가장 긴 서킷인데 (7.004km), 강하게 브레이킹을 요하는 구간은 사실 단 세 곳뿐입니다. 그만큼 빠른 스피드를 요하는 시케인이 많지만 반대로 에너지를 회수(충전) 하는 것이 어렵다는게 FP 세션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슈퍼 클리핑(Super Clipping)'입니다. 슈퍼클리핑은 2026년 엔진 규정 도입 이후 여러 비판도 있지만, 엎치락 뒤치락 하는 '요요 이펙트 (Yoyo effect)' 덕에 재미 있다는 평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벨기에 GP가 그간 레전드로 평가받던 이유는 관중들이 멀리서 보기에도 압도적인 스피드와 드라이버들의 용기를 바탕으로 도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진 '오 루즈 (Eau Rouge)'나 '푸옹(Pouhon)' 같은 코너들에 열광했던 것이라는걸 감안하면, 이번 주말에는 이제 배터리 효율 관리라는 명록 아래 다른 스타일의 주행을 펼치며 선수들부터 혹평이 터져나왔습니다.
저는 독일어 중계로 많이 시청하는 편인데, 독일에서는 스파의 유명 코너들을 "무트쿠어베"(Mutkurve), 일명 "용기의 코너"라고 합니다. 이런 용기의 코너가 스파-프랑코샹의 백미인 이유는 스파가 그간 "누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한계 속도를 유지한 채 두려움을 이겨내며 코너를 통과하느냐"를 겨루는 곳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서 짚어드린 2026년 규정의 '슈퍼 클리핑(Super Clipping)' 현상 때문에, 현재 드라이버들은 이 코너들에 진입하기도 전에 배터리가 방전되어 출력이 강제로 차단됩니다. 시속 320km/h로 돌파하며 담력을 증명해야 할 코너에서 강제로 시속 270km/h로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드라이버들은 굳이 용기를 낼 필요 없이 그저 유유자적하게(크루징 하듯) 코너를 통과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오스카 피아스트리의 말처럼 이 위대한 '무트쿠어베' (Mutkurve)들이 "그저 직선 구간에 있는 약간 구부러진 길"로 전락해버린 것이 현재 스파-프랑코샹이 직면한 가장 뼈아픈 비판입니다.
최악의 시너지 '슈퍼 클리핑(Super Clipping)' ??
F1 선수들은 대부분 스파에서의 레이싱을 즐기고 드라이버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은 트랙입니다. 그러나 인터뷰들을 먼저 들어보니 올해는 상당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2026년 규정의 핵심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전기 모터 의존도 증가)과 스파 서킷의 레이아웃은 상극인가봅니다. 특히 배터리 고갈이 문제가 되는 상황인데요.
스파는 7km에 달하는 긴 랩과 높은 풀 스로틀(Full-throttle) 구간을 자랑합니다. 반면, 하드 브레이킹 존(예: 레콤브, 버스 스톱 시케인)은 매우 적습니다. 즉, 에너지를 회수(Recuperation)할 구간은 부족한데 쏟아부어야 할 직선 구간은 너무 깁니다. 당연히 최고 시속도 줄었습니다.
케멜 스트레이트(Kemmel Straight)나 블랑시몽(Blanchimont) 같은 초고속 구간의 끝에서 배터리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나니 전기 모터의 출력은 급격히 차단됩니다. 랜도 노리스의 데이터를 보니, 블랑시몽 구간에서 320km/h로 달리던 차량이 배터리 방전과 함께 순식간에 270km/h까지 속도가 떨어지는 기현상도 있었습니다.

랩타임 퇴보
이건 올 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문제인데요.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는 F1은 어찌됐든 모터스포츠를 통 털어서 최고 레벨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스스로의 기술 한계점을 갱신하는 것에도 상당한 의미를 두어야 할텐데요. 랩타임은 오히려 과거로 회귀했습니다.
키미 안토넬리가 기록한 2026년 폴포지션 랩타임은 1:44.361입니다. 이는 그라운드 이펙트 규정 첫해였던 2022년(카를로스 사인츠, 1:44.297)보다 느리며, 그라운드 이펙트 규정의 완성형이었던 2025년(랜도 노리스, 1:41.562)과 비교하면 무려 3초 가까이 느려진 수치입니다.
중계 화면에도 다른 움직임이 포착됐는데, FOM(Formula One Management)은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중계 카메라에 감추기 위해 중계 화면 연출을 교묘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온보드 카메라에서 속도계 대신 G-포스 그래프만을 보여주거나, 슈퍼 클리핑이 발생하는 시점에 맞춰 다른 화면으로 컷어웨이(Cut-away)하는 식입니다. 이게 통제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어짜피 슈퍼클리핑 상황은 재미가 없으니까 화면 전환'을 의도한 것인지 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텔레메트리를 분석해야 하는 데이터 전문가들과 현장감을 원하는 팬들에게는 엄청난 불만을 초래할 수 밖에 없죠.
'내가 이미 말 했었다...' (feat. 사인츠)
사실 몇 년 전부터 이미 레드불 레이싱을 필두로 이런 레귤레이션 변화에 대한 우려섞인 얘기를 한 적도 있고, 드라이버 중에선 카를로스 사인츠가 공개적으로 이미 2022-2023년 시뮬레이션이 개발됐을때부터 현재 규정에 부족한 부분을 짚었던 적이 있는데요. 아마 당시 이런 시뮬레이션 승인이 도데체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었습니다.
F1은 애둘러 에너지 관리와 환경보호라는 효율성 (사실상 정치적 명분)을 따지면서 드라이빙의 한계를 다투는 모터스포츠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뒷전으로 한다는 생각도 들게 하는데요.
순위 싸움이 주는 재미와는 별개로 단순 레이싱만 놓고 본다면 결과적으로 스파-프랑코샹 그랑프리가 신형 엔진이 가진 구조적 한계만 들어낸 꼴이 되긴 한 셈입니다.
선수들부터, F1 해설가들은 '우리의 스파 그랑프리의 영예가 어디로 갔냐며' 꽤 많이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레드불은 마카레나 윙을 교체했다고 한다...
베르스타펜의 지난 오스트리아 GP FP 세션에서의 사고, 그리고 영국 GP에서의 리타이어는 모두 '마카레나 리어 윙'이라는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마카레나 윙은 직선로에서 압도적인 최고 속도 이득을 제공하지만, 고속 구간이 끝나고 코너에 진입할 때 0.4초 이내에 날개가 원래 각도로 되돌아와 최대 다운포스를 생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레드불 차량의 마카레나 윙이 고속 코너 진입 시 제때 닫히지 않는 기계적 결함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막스 베르스타펜이 오스트리아와 실버스톤 그랑프리에서 연달아 대형 크래시를 겪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레드불이 '마카레나 윙' 대신 시즌 초반 시도했던 일반적인 리어 윙을 다시 장착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스파의 트랙 특성(섹터 1, 3의 고속 구간)이 애초에 레드불 카와 더 잘 맞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마카레나 위에 대한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막스의 의견이 반영되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마카레나 윙 (혁신형 능동 에어로): 직선 구간에서 공기 저항(항력)을 극단적으로 줄이기 위해 리어 윙 플랩 전체가 앞이나 뒤로 160도에서 최대 270도까지 크게 회전하며 사실상 거꾸로 뒤집히는 디자인. 날개가 크게 앞뒤로 도는 모습이 춤추는 것과 같다고 하여 패독에서 '마카레나'라는 별명이 붙음. 시즌 초부터 페라리가 들고나왔고 레드불에서도 채용.
일반 리어 윙 (전통적 DRS 윙): 윙 전체가 뒤집히는 것이 아니라, 기존 F1 차량들처럼 상단 플랩의 좁은 각도만 살짝 열어 공기가 통과할 틈(슬롯 갭)을 만드는 보수적이고 단순한 방식입니다.


하자르는 버리는 카드가 아니다 (퀄리파잉 희생 관련)
어제의 벨기에 그랑프리 퀄리파잉과 같은 상황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 뉴스레터를 오래전부터 구독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F1에서 팀플레이를 펼치는 것에 그리 팬은 아닙니다. 컨스트럭터의 개발과 발전을 위해 정해진 "팀 워크"는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드라이버 개인의 단독 경쟁에서 팀플레이를 통한 2대1 경쟁으로 포인트를 쌓는 "팀 플레이"는 지양하는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레드불의 전략은 파워 유닛 부품을 대거 교체하며 30 그리드 페널티를 받게된 이삭 하자르의 상황을 역이용한 데서 출발했습니다. 어차피 퀄리파잉 순위가 무의미해며 최하위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하자르에게 레드불은 베르스타펜의 페이스를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조커 카드 같은 거였죠.
(*다른 팀들은 팀 메이트들이 각자의 순위를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상황)
그 어려운 걸 해낸 남자
과거와 달리 2026년 하이브리드 엔진 규정하에서는 두 차량이 완벽한 슬립스트림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기술적으로 훨씬 까다로워졌다고 합니다. 하자르는 퀄리파잉 이후 인터뷰에서 14번 코너 이후 베르스타펜을 기다리다가 의도적으로 스로틀에서 발을 떼자, 차의 엔진 소프트웨어가 오류를 일으켰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Q3 첫 번째 시도에서는 아마도 하자르의 차에 출력이 너무 강하게 들어가 막스와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절반의 성공만 거둘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시도에서는 반대로 하자르의 출력이 부족해지며 막스가 무섭게 이삭의 꽁무니에 따라붙었는데요. 초고속 코너인 블랑시몽(Blanchimont)에 진입하기 직전 두 차량이 충돌할 뻔한 장면까지 나왔지만, 하자르가 그 바로 직전 (사실상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좌측으로 비켜주며 막스는 공기 저항이 없는 '진공 상태'로 피니쉬라인까지 속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이득을 본건데?
텔레메트리 분석가의 데이터(GP Tempo)를 가져와봤습니다. 기록지를 보면 이 전략이 꽤 파괴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슬립스트림을 받지 않았던 베르스타펜의 Q2 랩(흰색 선)과 슬립스트림을 제대로 받은 Q3 마지막 랩(파란색 선)을 겹쳐보면 훨씬 재밌는데요.

위 차트를 보시면 대부분의 기록이 거의 동일하지만 마지막 섹터 3에서의 슈퍼 클리핑이 발생하는 구간에서 슬립스트림을 받은 Q3 마지막 랩타임(파라색 선)은 335km/h에서 흰색 선을 압도적으로 상회하며 훨씬 높은 최고 속도를 유지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막스가 사실 Q3 마지막 랩을 자신의 Q2 기록 대비 0.5초 가량이나 뒤처져 있었던, 사실상 망한(?) 랩이었는데도 최종적으로 0.4초의 랩타임 경신을 했다는 것인데요. 하자르의 슬립스트림을 받아낸 델타(격차)가 무려 0.9초라는 얘기입니다. 엄청나네요.
베르스타펜은 슬립스트림이 없었다면 아마 6위 정도에 머물렀을 것이라 인터뷰에서 밝혔을만큼 하자르가 정말 큰 일을 했다고 봅니다.
레드불의 경우 ADUO 측정 결과 내연기관 엔진은 11개 컨스트럭터 중 최고라고 평가를 받았지만 바뀐 규정 속에 내연기관이 힘을 쓰지 못하는 서킷을 만난 악조건을 전략적으로, 특히 하자르의 페널티를 긍정적으로 바꿔쓴(?)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스파는 다른 클래식 서킷에 비해 추월(오버테이크)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기 때문에 최하위로 시작하는 하자르에게도 어느정도의 포인트 포지션에 대한 희망은 있습니다. 과연 롱런 페이스를 잘 이끌어내서 레드불이 실제 일요일 레이스는 어떻게 치를 수 있을지 굉장히 궁금해 집니다.
그랑프리 일요일 롱런 레이스를 예측해봅니다

FP2에서 레드플레그가 있었으므로 롱런 데이터는 다소 제한적이었지만, 메르세데스의 우위는 확실히 드러났기 때문에 스파에서도 특수한 이변이 없는 한 원더보이 안토넬리의 우승이 가장 유력합니다.
압도적인 디그레데이션 차이가 이를 증명하는데요. 안토넬리의 타이어 마모율은 랩당 0.07초에 불과했지만, 레드불의 경우 랩당 0.2초 이상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롱런 평균 페이스에서 베르스타펜은 안토넬리보다 랩당 약 0.3초가량 느렸습니다.
타이어 전략에서는 벨기에 GP가 총 44랩으로 비교적 짧기 때문에 원스탑 전략(미디엄-하드 or 소프트-하드)이 지배적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타이어 마모가 변수가 될 수 있고, 안토넬리는 선두에서 페이스를 조절하며 언더컷/오버컷 전략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는 강력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몇 시간 후 펼쳐지는 벨기에 그랑프리 많은 시청 바랍니다! :)
저는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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