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5

이 순간 행복하자

2023.08.12 | 조회 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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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우쟁

파리로 떠난 우정의 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유학은 ‘내가 지금 여기 온 게 한 짓인가’라는 문장과 계속 싸우는 것이다유학을 통해서 얻는 것은 무형의 자산이고잃는 것은 유형의 자산이다보니 더 그런 갈등이 생긴다어차피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 후회라는 감정과 싸우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유학하는 과정 자체가 행복해야 미래의 행복도 기대할 수 있다. 유학생들이 이 순간 행복하기 위한 어떤 것을 찾았으면 좋겠다.

유튜버 ‘연국의 내일@PlanBYeonguk’님의 영상에서

프랑스, 그것도 파리를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음악이다.

누가 들으면 악기 하나쯤 연주하나보다 하겠지만 음악에 재능도 관심도 그다지 없다. 노래방은 잘 가지 않고, 좋아하는 가수나 장르도 없다. 그런데 작년 여행 중에 들렸던 재즈바에서 정줄을 놓아버렸다. 가뜩이나 자유롭던 영혼이 물을 만나 더 저세상으로 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연주자들에게 빙의라도 된 것 처럼 공연하는 2시간이 10분처럼 흘렀다. 

1. 6월 27일, 여진이랑 Lebaisersale 에서
1. 6월 27일, 여진이랑 Lebaisersale 에서

여행 당시, 공연이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옆 자리에 앉은 기타리스트랑 친구가 되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맺어서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이번에 마침 앨범이 나와 특별 공연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가야지! 밤 9시, 베이비시터 일을 마친 뒤라 늦은 시간이었지만 여진이와 재즈바를 찾았다. 그때 느꼈던 파리 재즈바의 감성, 그대로였다. 이런 바이브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한국 재즈바에서 느낄 수 없는 반쯤 취한 음악, 행복이 거꾸로 솓았다.

2. 7월 6일, 나홀로 Sunsetsunside 에서
2. 7월 6일, 나홀로 Sunsetsunside 에서

왠지 오늘 재즈가 당긴다? 하면 재즈바에 갔다.

가난한 유학생이 무슨 재즈바를 그렇게 자주 가냐고 걱정 섞인 잔소리를 들었지만, 다 방법이 있다. 먼저 재즈바 인스타그램을 모두 팔로우 한다. 무료 입장이 가능한 공연이 뜨면 메모해 두었다가 방문한다. Sunsetsunside라는 재즈바는 학생증을 보여주면 10유로를 할인받을 수 있다. 공연비가 20유로일 경우, 10유로로 2시간의 공연을 즐길 수 있으니 개이득이다. 재즈바마다, 시기마다 꿀팁은 조금씩 다르다. 

여기에 꼼수 하나 더. 재즈 음악에는 시원한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린다. 하지만 재즈바에서 마시는 술은 한 잔에 최소 8유로(환전하면 만 원 넘음). 맛있어서 홀짝 홀짝 마시다가 지갑 거덜나는 건 순식간이다. 양심에 찔리지만 가난한 유학생은 마트에서 파는 5유로짜리 프랑스산 와인을 텀블러에 담아 간다. 비릿한 그 맛이 환상이다. 공연이 끝날 즈음 적절하게 취기가 오르니 집에 가는 길에 순도 100%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3. 7월 11일, 나홀로 Sunsetsunside 에서
3. 7월 11일, 나홀로 Sunsetsunside 에서

취향이란 게 생겼다. 

처음에는 어느 재즈바를 갈지, 몇 시 공연을 볼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보컬없이 악기 고유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공연을 택한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기 보다 연주자가 악기와 하나가 되어 온몸으로 음악을 표현하는 걸 보는 게 더 즐겁다. 음악에 한창 몰입해 있다가 연주가 딱 끝나면, 순간 몸에 들어간 긴장이 풀리며 “크햐”소리가 절로 난다. 이럴 때면 연주자의 옷도 땀이 흥건하다. 한 시간 동안 어떻게 이토록 열중할 수 있는 것인지. 에너지 소모가 대단할 것 같았다. 

섹소폰, 콘트라베이스, 피아노 같은 악기 하나로 정면승부를 보는 밴드도 좋지만 또 한편으로는 악기들이 서로 뒤엉켜 주고 받는 맛깔난 합주도 좋다. 연주자끼리 눈을 연신 마주치다 눈웃음으로 ‘지금이야!’라는 신호를 줄 때, 나도 덩달아 흥이 난다. 악보는 있지만 굳이 악보대로 하지 않는 즉흥성.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도 착착 죽이 맞아 떨어지는 팀워크. 그러는 사이에 느끼는 기대 이상의 희열. 그걸 목격할 수 있어서 내가 재즈를 좋아하는 건가보다.

4. 7월 13일, 안드레아스랑 Piano bar 에서
4. 7월 13일, 안드레아스랑 Piano bar 에서

재즈바마다 제각각 다른 특색을 갖고 있다.

파리에는 여러 재즈바가 있다. (참고:파리재즈클럽) 유구한 역사를 가진 재즈바, 유명인들이 거쳐 간 재즈바, 라라랜드 영화 촬영지였던 재즈바 등… 하루는 안드레아스와 피아노 소리에 끌려 피아노바에 가게 되었다. 바 내의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입장료를 따로 받지 않는 걸 보아, 정통 재즈음악 공연 같지는 않았다. 딱 한 번 방문하고, 그 뒤로는 가지 않았다. 피아노 솔로 공연은 뭐랄까 흥이 덜하다. 하나 흥미로웠던 건, 피아노 바 한 가운데 놓인 피아노가 ‘현대’브랜드 였다. 현대에서도 피아노를 만드나..? 

5. 7월 17일, 예찬이랑 Duc Des Lombards 에서
5. 7월 17일, 예찬이랑 Duc Des Lombards 에서

재즈 + 화이트 와인 + 치즈 안주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예찬이(하고 싶은 일이 많은 젊은 청년)를 파리 한복판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성당에서 미사드리고 나오는 길에 딱! 그는 스페인, 이탈리아 여행 후 한국에 돌아가기 전 파리에 들렸다. 이 친구에게도 파리의 재즈바를 소개했다. 보통이라면 시키지 않았을 법한 치즈 안주를 시키고, 고개를 연신 흔들며 음악을 즐겼다. 돈 쓰는 맛이 이런 거군. 다른 날과 다르게 펑키한 퓨전 재즈였지만 나름 신선하고 재밌었다. 

6. 7월 24일, 안드레아스랑 Duc Des Lombards 에서
6. 7월 24일, 안드레아스랑 Duc Des Lombards 에서

혼자 음악을 듣던 날, 옆 자리에 앉은 안드레아스를 만났다.

이 분은 멕시코인으로, 첫 만남에서는 음악에 집중하느라 많은 얘기를 하진 않았다. 서로 재즈공연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자며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어느 재즈바가 좋은지 추천해주다가 “춤추는 재즈바가 있는데, 같이 가볼래?”를 시작으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안드레아스는 멕시코에서 부동산업을 한다. 12살 된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이며, 파리에 어학원 학생 신분으로 한 달간 머물고 있다. 사실 공부는 핑계고, 여행이 주 목적이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이 분은 나보다 더 재즈바를 자주 갔다. 일주일에 서너 번? 피곤할 땐 숙소에서 낮잠을 자고 저녁에 나와 재즈바를 갈 만큼 열정이 대단했다. 큼지막한 반지, 화려한 장신구, 명품 가방, 진한 향수 냄새는 퍽 낯설었지만, 우리는 재즈라는 공통점으로 빠르게 친해졌다. 그분은 언제나 나의 술을 사주셨고, 나는 이에 보답하듯 예쁜 사진을 찍어 보내드렸다. 나중에 멕시코 가면 만나야지!

7. 8월 1일, 나홀로 Lebaisersale 에서
7. 8월 1일, 나홀로 Lebaisersale 에서

첫 날 방문했던 곳 또 가기

여행을 떠나기 전 날, 재즈바를 또 방문했다. 파리 시내에서 사는 마지막 날이기도 하므로 늦은 밤까지 재즈를 즐겼다. 이날 공연은 첫 곡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피아노 연주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첫 곡이 끝나고 피아노 연주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밴드 갖고 계신 분?” 오바한다 싶을 정도로 몸을 흔들어 대더만 결국 손끝에서 피를 보셨다. 그는 관객 중 한 명에게 밴드를 얻어 조치를 취하고, 하얀 피아노 건반에 묻은 피를 한참 닦았다. 피가 흥건하게 날 정도로 다쳤음에도 그는 계속해서 엉덩이를 뗐다 붙였다, 혹은 몸을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 움직이며 연주를 했다. 이들의 열정처럼, 나 또한 앞으로 있을 유럽여행에서 후회가 없도록 진심을 다하고 돌아와야겠다. 




 

재즈는 내 유학생활의 행복으로 자리 잡았다. 우울한 마음을 차분하게 없애준다. 좀처럼 지겨워지지 않는 재즈음악. 1년 동안 후회없이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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