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눈을 떠서 휴대폰을 보니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숨죽여 읽다가 ‘금일 배송예정’임을 확인한 순간 진심 미친 듯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아아-” 집사가 아침부터 왜 저러나 놀란 그냥 그래를 안고 한 번 더 소리쳤다. “아 간다 씨#!!!“ 욕이 찰지게 나왔다. 말로만 간다 간다 했는데 진짜, 현실이 되었다. 수요일에 떠나는데 월요일에 비자를 받는다니 기도빨이 먹혀버렸다.
떠나는 날 새벽 4시까지 짐을 쌌다. 왜 짐은 싸고 싸도 부족한 게 계속 생길까? 뭔가 빠뜨린 게 있지 않은지 불안했지만 밤새고 출발하는 게 더 불안했다. 멀쩡한 상태로 떠나기 위해 가방 문을 덮었다. 갓 나온 비자와 여권만 까먹지 않으면 어떻게든 가겠지. 가져가고 싶었던 4색 볼펜과 머리끈은 끝내 챙기지 못 했다. 볼펜 없다고 공부를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머리끈은 산티아고 기념품으로 하나 사지 뭐.
알람도 없이 8시에 눈이 떠졌다. 긴장한 탓인지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한껏 들떠서 9시에 예약해 놓은 필라테스 수업을 들었다. 마지막 수업이었다. 이로써 테니스, 풋살, 필라테스 남은 수업 모조리 완료.
내 멘탈상태를 걱정한 엄마가 공항까지 함께 동행해주셨다. 며칠 전 싸워서 말도 안 하다가 떠나는 오늘에서야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공항 몇 시에 가.” “1시” “그럼 새벽기도 같이 갔다가, 10시에 밥 먹고 같이 가.” 이때가 새벽 4시였다. 물론 둘 다 늦잠 자서 새벽기도는 못 갔다. 그래도 집 앞 순두부 맛집에 가서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엄마, 집에 있는 빔프로젝터 쓸 거야?” “응. 청소기 작동법도 알려주고 가. 그냥이랑 그래는 어떻게 목욕시켜야 해?” “물 안 묻혀도 되는 방법이 있어. 알려줄게.” 그동안 당연히 했어야 하는 대화를 1시간 안에 몰아서 한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면 굳이 떠나기 전에 싸워야 할 만큼 큰일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왜 떠나는 당일 아침까지 갈등을 묵혀뒀는지, 갈등은 풀린 게 없는데 어째서 아무렇지 않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떠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뭐 대수인가. 우리 엄마는 서른을 훌쩍 넘긴 다 큰 딸이 프랑스로 간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낌없이 응원해 주는 특이한 엄마다. 그것으로 우리 모녀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제 홍콩에서 한국으로 온 파니 언니도 함께 했다. 피곤할 텐데 인천공항까지 배웅을 나와줬다. 1년 전 한창 프랑스 워킹홀리데이를 갈지 말지 고민하던 때, 파니 언니는 우리 집에 머물면서 “아직 젊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고 용기와 확신을 불어넣어 줬다. 오늘 내가 떠날 수 있는 건 다 언니 덕분이다! 파니언니는 내가 서른으로 넘어가는 게 두렵고 무섭다고 할 때에도 나를 응원했다. “30대가 진짜 찐 잼이니 기대해도 좋아“라고. 그 말대로 나는 정말 찐잼 30대를 살고 있다. 1년 후 만나자는 인사에 파니 언니는 “1년 아닐 거야. 3년 뒤가 될지도 몰라!”라고 했다. 어쩌면 3년, 아니면 5년.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지 모르겠지만 더 멋있는 모습으로 만날 수 있도록 열심히 살리라.
댓글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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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
우쟁! 화이팅!
파리우쟁 (56)
파리팅! 우쟁! 해서 파리우쟁인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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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
바우야 건강하게 잘 다녀와아❤️기도할게유🙏🏻
파리우쟁 (56)
나도 라니를 위해 기도할게! (순례길에서 많이 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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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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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우쟁 (56)
알고 지낸 시간이 뭐 그리 중요한가! 떠나기 전 날까지 같이 술 마신 게 중요하지! 진짜 가긴가냐고 쫑파티 도대체 몇 번을 하는 거냐고 하던 거 생각난다. 우리 그때 같이 찍은 사진, 파리까지 가져와 책상 위에 붙여두었어. 내 친밀감 또한 크다우. 여기서도 토마토학교와 같이 발달장애인 관련 기관에서 일을 찾아볼 생각이야. 어떤 기회가 내 앞에 놓일지 모르겠지만 응원듬뿍 받으니 다 잘 될 거 같다!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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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iaJ
멋져요! 응원합니다!
파리우쟁 (56)
아즈아 아즈아! 우린 90년 백말띠니까 달리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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