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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ne année, mais…

2024.01.07 | 조회 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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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우쟁

파리로 떠난 우정의 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본 아네!!!
본 아네!!!

지난 연말부터 파리는 거리 곳곳이 따스하게 바뀌었다. 파리 중심에 있는 샹젤리제 거리부터 파리 외곽 작은 마을까지 화려한 장식으로 반짝였다. 덕분에 늦은 밤이면 밤거리를 걸었다. 이 많은 전기세는 얼마나 할까, 기획팀이 따로 있을까, 하루 예산을 얼마나 잡을까, 매년 똑같은 장식을 쓰는 걸까, 하루만에 다 설치하는 걸까, 설치하는 인원만 몇 명이나 될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생각이란 걸 멈추고 일단 예쁜 걸 즐기기로.

 

‘파리’의 두 얼굴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나이키 매장 쇼윈도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나이키 매장 쇼윈도

파리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길을 걷다 보면 ‘아 이곳은 뭔가 다른 곳이구나!’하고 오감, 아니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위험까지 포함해 육감으로 알 수 있다. 이를테면 한 쪽에서는 명품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반대 쪽에서는 시멘트 바닥에 앉은 사람들이 동전을 기다린다. 한 쪽에선 향수 냄새가 진동을 하고, 반대 쪽에선 대마초 냄새와 노상방뇨로 인한 찌린내가 코끝을 찌른다. 한 쪽 길에는 놀랍도록 정교한 나무가 빼곡하게 하늘을 덮고 있지만 반대 쪽 길에는 강아지 똥과 담배꽁초, 쓰레기로 가득하다. 이정도면 어느정도 유추가 가능해진다. 파리는 더러움(프랑스 역사적 만행)을 감추고자 화려함(여행 산업을 위한)을 추구하는 도시다.

조그만 나뭇가지가 하나 삐죽 튀어나올 여지를 주지 않고 촥촥촥- 밀어버림
조그만 나뭇가지가 하나 삐죽 튀어나올 여지를 주지 않고 촥촥촥- 밀어버림

 

그럼 ‘유럽’은?

어쩌면 그게 파리의 매력일수도 있겠다. 파리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유럽으로 생각을 넓혀봤다. 작은 나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유럽. 다들 서너 개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고, 외국으로 이직 뿐 아니라 출근까지 한다. 그래서 다문화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다. 어떤 분은 자기 소개를 할 때 아빠와 엄마의 출신 국가가 다르고, 본인이 태어난 곳과 현재 사는 곳도 달라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하지만 그만큼 타문화를 존중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말라가 퐁피두 박물관에 있던 작품. 흡사 유럽같다.
말라가 퐁피두 박물관에 있던 작품. 흡사 유럽같다.

게다가 유럽에는 누구나 알 만 한 국제기구들이 위치해 있다. 파리에만 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WHOA(세계동물보건기구) 본사가 있고,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까지 열거하면 상당히 많다. 그러므로 젠더, 교육, 장애, 이주민과 같은 사회적 아젠더, 정책 연구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시작된다. (확실치 않지만 그렇겠지 뭐.)

암스테르담에서 파는 엽서
암스테르담에서 파는 엽서

 

그러니 당연히 살기 좋은 선진국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곳은 전쟁중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한 지 어언 2년 째, 이 일기를 쓰는 지금도 사상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처음 우크라이나 전쟁을 실감했던 건 2022년 프랑스로 여행가던 비행에 안에서였다. 이때 우크라이나가 폴란드 옆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우크라이나를 우회해 비행하는 바람에 3시간 정도 더 걸렸다는 사실 빼고 크게 다른 건 없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스위스 바셀(basel) 여행길에서 다시 한 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바셀 시립박물관에 우크라이나에서 스위스로 이주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게 우두커니 서서, 정주행했다. 그들은 폭격이 떨어진 당시의 아비규환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내가 사는 파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사람, 한 가족, 한 사회, 크게는 한 국가가 처참하게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뉴스로 접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충격이었다.

스위스를 지나 프랑스 리옹 부근에 있는 '떼제 공동체'에 머물던 때, 우크라이나를 떠나 독일에서 살고 있다는 실제 난민을 만났다. 마침 우크라이나의 광복절인 8월 24일을 맞이하여 그는 우크라이나 전통복장을 입고 예배에 참석했다. 그는 나와 같은 백말띠로, 같은 소모임에 배정을 받았다. 동갑이라는 연대감은 은근히 힘이 세다. 그는 힘겹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고 소모임 사람들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그를 위해 기도했다. 어눌한 영어였지만 서로의 진심이 느껴졌다. 

2024년 1월 4일, 북한이 러시아에게 미사일을 팔았다 한다. 북한도 뭔가를 파는구나… 새로웠다…
2024년 1월 4일, 북한이 러시아에게 미사일을 팔았다 한다. 북한도 뭔가를 파는구나… 새로웠다…

연말부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2024년 1월 1일의 해가 떠오르기 전, 추운 새벽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독립 운동 역사가 담긴 박물관을 공격해 산산조각 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문화 유산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독립하지 말라는 의도로 해석된다. 뉴스에서는 이 소식을 전하는 젤렌스키의 모습도 보여줬다. 도움을 요청하는 연설보다는 그가 앉아 있는 안전한 호텔 배경이 눈에 띄었다. 

우크라이나의 피해 상황이 궁금하다면, 위의 링크를 추천한다. 떼제에서 만난 친구가 공유해준 사이트다. 이곳 정보에 의하면 2년 동안 10,000 명이 죽었다. 사람을 죽여도 되는 전쟁터에서 피해자는 늘어만 가는데 피의자는 없다. 보복만 있다. 머지 않아 러시아가 전쟁에 이기고, 푸틴이 재선에 성공하고, 2030년까지 계속 집권하겠지. 하지만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앞으로 어찌 살아갈 수 있을까…

 

전쟁을 이끄는 미국과 유럽

월스트리트저널, 르몽드디플로마티크 주로 봄
월스트리트저널, 르몽드디플로마티크 주로 봄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간 지속되자, 미국과 유럽은 가자 지구로 눈을 돌렸다. 가자지구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인구의 80% 이상이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며 살고 있을 만큼 열악한 곳으로, 작은 미사일 공격에도 어린이, 노인, 여성 가리지 않고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성탄절 연휴 기간에만 750여명의 팔레스타인 사상자가 발생했고, 예배 대신 장례식이 곳곳에서 치러졌다고 한다. 한국에서 칼부림으로 1명만 사망해도 위협적인데, 18,000명 이상의 사상자라니 어마어마한 숫자 앞에서 감을 잃게 만들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와 기타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가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 치명적인 지상 공격과 로켓을 포격하여 1,200명이 사망하고 200명 이상이 인질로 붙잡히자, 이스라엘 군은 공습과 지상 작전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작전으로 인해 가자 지구에서는 심각한 파괴와 사망, 강제 이주 등이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북부 지역에서는 피해가 더욱 심각하여 18,000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국제구조위원회 2023.12.26.

사실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 전쟁은 예견된 거였다. 강대국들은 자기 임기에 터지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유럽도 두 얼굴이나 마찬가지다. 부유한 국가에서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마켓 장식에 둘러싸여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즐기고, 반대 쪽에서는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그런 곳인 거다. 곧 있을 2024년 파리 하계 올림픽의 모습이 과연 어떨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우물 안 파리우쟁

하루는 고래와 수다를 떨다가 가자 지구 얘기가 나왔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아무도 보도하고 있지 않다며 “이방인이 너희 집에 전기, 가스, 수도 다 끊어버리고 심지어 망가뜨리기 까지 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라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그렇지. 그렇다고 총을 쏠 수는 없잖아… 복수가 복수를 낳고 있는 건 아닐까.” 평화롭게 해결해야 한다고 했으나 와인을 홀짝이면서 그런 편한 소리를 하고 있자니 내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했다. 내가 전쟁을 비판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는가. 갑자기 무력해진 내게 그는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라고 하며 다른 주제로 넘겼다.

노동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보호하는 국가, 프랑스 파리에 사는 만큼 집회에 한번 참석해보고 싶다. 이왕이면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면 좋겠다. 나는 고래에게 어디에서 시위가 열리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시위인지 잘 보고 가야 한다고, 다른 의도를 가진 집회들이 많으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현장에 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파리도 더럽고 무섭다고들 하면서 여행자 수 1위인 것처럼? 우물 밖은 언제나 위험한 법이니 언젠가 기필코 연대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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