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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고 있어요

2023.08.02 | 조회 3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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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우쟁

파리로 떠난 우정의 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산티아고 공항
산티아고 공항

1시간 50분만에 파리에 도착했다. 저가 항공을 이용해서 스페인에서 파리까지 가는 비행기는 단돈 80유로. 곧장 여진이 기숙사에 들려 내 가방을 챙겼다. 앞으로 지낼 곳은 파리 남부에 있는 Bourg-la-Reine다. 파리 외곽에 위치해 있지만 지하철로 10분만에 갈 수 있는 곳으로 조용하고 안전한 동네다. 


4월에 구해놓은 방

이제 이곳이 내 방이고 내 집이다.
이제 이곳이 내 방이고 내 집이다.

방을 일찍이 구해놓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한국을 떠나기 전, 프랑스 커뮤니티를 수시로 들어가 프랑스에 어떤 일자리들이 있는지, 일하는 조건은 무엇인지, 월세방의 시세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파악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존’이라는 한인사이트와 ‘프잘사’라는 네이버카페가 있다.)

그러던 어느날, 월 100유로에 방을 빌려준다는 글이 하나 떴다. 파리의 월세는 최소 800유로(100만 원)부터 시작하는데, 단돈 100유로라니 이건 나를 위한 자리였다. 글 내용은 일주일에 5일 간 베이비시터 근무 하는 조건으로 빌려준다는 설명이었다. 곧바로 메일을 보냈다. 

급했다 급했어
급했다 급했어

파리에 가져가는 돈은 1000만 원. 산티아고 순례비와 어학원 비용이 포함된 금액으로 1년 머물 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월세만 내도 길어야 3개월 정도 버틸 수 있을까.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겠지만, 학생비자라서 한계가 있다. 그러니 고정비용인 월세를 아끼는 게 최선이었다. 

조건 퍼펙트
조건 퍼펙트

답장은 하루만에 도착했다. 돌봄시간이 어학원의 수업시간과 겹치지 않는 저녁시간이었고, 집에서 어학원까지는 겨우 6km 거리에 있어 너무나도 완벽했다. ‘온 우주가 나를 위해 돕고 있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화상으로 짧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지내자고 흔쾌히 말씀해주셨다. 잘 부탁드립니다!

보통 프랑스에 오는 한국인들은 집 구하기에 난항을 겪는다. 절차가 낯설기도 하고, 불어가 안 되니 서로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기도 많다는데 이것 저것 리스크가 커서 보통 파리 땅을 밟은 뒤에 집을 구하는 것 같다. 준비성 없고 덜렁대는 내가 이 방을 얻지 못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상당히 큰 대가를 치르며 골머리 꽤나 썩혔을 거다.


Elle s’appelle 클로이

사람들을 좋아하는 장난꾸러기
사람들을 좋아하는 장난꾸러기

파리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부터 베이비시터를 시작했다. 쉴틈 없이 55L짜리 가방 만큼이나 무거운 현실에 입성했다. 하지만 타지의 현실은 아무래도 다르다. 내일이 기대되는 오늘을 보내는 그 자체로 행복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니까

프랑스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몰려와 사는 나라다.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여행자도 많아서 치안이 좋지 않은 듯 하다. 이 와중에 집도 없고, 직업도 없고, 통장계좌도 없고, 휴대폰도 없다면? 신분이 불명확하므로 무엇 하나 할 수가 없다. 뭘 믿고 집을 빌려주고, 일을 주고, 은행계좌를 열어주고, 휴대폰을 개통해주겠나. 아이러니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다행히 나는 방을 미리 구한 덕분에 그나마 사는 곳이라도 확실한 사람이 되었다. ‘거주확인증’을 가지고 학생비자도 프리패스, 은행계좌 만드는 일도 프리패스, 휴대폰 유심도 프리패스로 통과했다. 과정들이 죄다 아슬아슬해서 어찌나 심장이 쫄깃하던지, 큰 문제 없이 정말 잘 지내고 있다.

집 앞 잔디에 모여 노는 아이들. 창문을 향해 이름을 부르면 애들이 한 두명씩 나온다. “클로이야 놀자~”참고로 내 방은 왼쪽 건물의 2층에 있다. 열려있는 창문에서 오른쪽으로 두 칸 옆.
집 앞 잔디에 모여 노는 아이들. 창문을 향해 이름을 부르면 애들이 한 두명씩 나온다. “클로이야 놀자~”
참고로 내 방은 왼쪽 건물의 2층에 있다. 열려있는 창문에서 오른쪽으로 두 칸 옆.
아이 픽업 온 부모들
아이 픽업 온 부모들

마이 시간표

  • 7h 30  기상 : 방으로 해가 잘 들어온다. 눈이 후다닥 떠짐.
  • 8h 30  등교 : 어학원까지 자전거로 30분. 따릉이 같은 공공자전거를 탄다. 한 달 3유로. 
  • 9h 15 - 13h  수업 : 3시간은 정규 수업. 1시간은 특별 수업(발음,문화,문법 같은) 
  • 14h 30  자유시간 :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거나 볼 일보거나 집에서 쉰다.
  • 18h - 21h  근무 :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시간. 이때 아이랑 같이 저녁을 먹는다. 하루 1끼.
  • 22h  취침 : 휴대폰 하다가 자정에 주로 잔다. 내 방에서 자니까 포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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