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00

일기 쓰기 귀찮아

2023.12.01 | 조회 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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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우쟁

파리로 떠난 우정의 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겨울이 왔어요

재즈바 공연 기다리면서 맥주 한 잔
재즈바 공연 기다리면서 맥주 한 잔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한 요즘이다. 그동안 방문했던 모든 전시관을 파리우쟁에 기록하겠다고 야심차게 다짐했지만, 그건 오히려 마음의 짐이 되어 일기 쓰기를 멈추게 만들었다.  어느새 눈덩이 처럼 불어버린 전시 사진들과 팜플렛 자료들… 언젠가 그때의 여행이 그리워지는 날 꺼내 쓰리라 미뤄두고 +200를 시작한다. 


첫 면접

무슨 일기부터 써야 하나 하다가 일단 ‘일자리 구하기‘에 관한 일기를 옮겨 적어 본다. 해가 쨍 하던 9월 초, 집 앞 공원에서 전화로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다. 왜 이 일이 하고 싶은지, 내가 어떤 일을 잘 하는지 등 모범 답안을 준비했지만 겨우 3분 만에 끝나버렸다. 내가 불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몰랐다며, 손님 중에 프랑스인이 많다며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 첫술에 배부르랴.

 

면접 10분 컷

이력서를 10개 정도 돌리면 1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들뜬 마음으로 사전 준비를 하고 방문했지만 면접은 10분 안에 끝나곤 했다. ‘불어가 안 되시니 어쩔 수 없네요.’ 왜 다들 내가 불어를 겁나 잘 할 거라는 생각을 갖는 걸까. 내가 이력서를 너무 완벽한 프랑스어로 쓴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으나 점차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던 곳에 불안이 들어앉았다. 그래서 매일 쓰던 일기도 그만 뒀다.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우울한 마음을 털어내는 것도, 기운내려 애쓰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다시 한식당?

잠들기 전, 틈만 나면 인디드(알바천국 같은 어플)에 들어가 이력서를 넣었다. 이곳 저곳에서 면접을 봤지만 결국은 아무곳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걸리는 곳에 한식당이 생긴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식당에서 일하기 정말 싫었지만 더는 물러설 곳이 없으므로 곧바로 이력서를 넣었다.

하지만 이 자리도 내 자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장님은 너무 바쁘셨는지 면접 당일날 면접일정을 하루 미루셨고, 미룬 날에도 30분이나 늦게 오셨다. 사정을 들어보니 아직 가게 공사중이어서 굉장히 바빠보였다. 게다가 오픈하려면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장님은 ’연락줄게요.’라는 애매한 답을 주신 후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올리브영? Non. 올리브치킨? Oui.

학원에서 5분 걸어가면 한국 치킨집이 하나 있다. A1 수업이 끝나던 날, 치킨 한 마리 포장해 어학원 친구들이랑 나눠먹고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구직의사를 전했다. 한식당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마당에,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그러나 치킨집도 “팀원들과 의논해보고 연락드릴게요.”라고 하셨지만 끝내 답은 없었다.  

한 달 후, 한인 사이트 프랑스존에 치킨집에서 서빙 알바를 구한다는 채용공고가 올라왔다. 다시 한 번 이력서를 보냈다. 짧게 면접을 보고 3일 인턴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이마저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은 이게 끝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야 일기를 쓴다.  

 

* 한식당은 오픈 바로 전 날 “일 할 수 있어요?”라고 전화가 왔다. 알바가 안 구해져서 최후의 수단으로 연락한 것 같았다. 우선은 인턴으로 치킨집에서 일하게 됐으니, 한식당 일을 피했다.

 


일상이 자리를 잡다

길가다 그냥그래 생각나서 찍음
길가다 그냥그래 생각나서 찍음

6:30 - 새벽 조깅

파리는 8시 30분에 해가 뜬다. 아직 어두운 새벽, Parc de Sceau 주변 공기가 맑다. 런웨이 앱의 가이드를 따라 5km를 뛰면 30분 금방 간다. 종종 남자친구랑 같이 뛴다. 

공원 앞 빵집. 아침 7시에 문을 연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지만 꾹 참긔! 
공원 앞 빵집. 아침 7시에 문을 연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지만 꾹 참긔! 

7:30 - 나갈 준비

뛰어서 그런가 배가 상당히 고프다. 시리얼과 과일을 주로 먹는다. 클로에 먹으라고 산 과일이겠지만 나도 슬쩍…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침을 먹는 동시에 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담는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 일기를 쓴다. 달리면서 든 생각이나 어제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다. 예전만큼 일기 내용이 많지 않다. 주로 투두리스트와 일정 중심으로 빠르게 써 내려 간다.

8:15 - 학원으로 출발 

30분 가량 걸리는 거리지만 아침 시간이라 사람이 너무 많다. 차마 타지 못하고 몇 대를 그냥 보낸다.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으면서 출근하는 건 여기서도 불가능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긴 출근을 30분에서 1시간 정도 늦게 해도 그러려니 한다. '지하철 때문에 늦은 거겠지 뭐...'하고. 

9:00 - 학원 수업

집중력이 극에 달한다. 새벽에 일어났어도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생생하다. 웬만하면 맨 앞자리에 앉는다. A2반으로 올라오니까 한국인도 많고, 프랑스어를 잘 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에서 여행온 지향이도 함께 한 점심
한국에서 여행온 지향이도 함께 한 점심

12:00 - 알바

학원에서 곧바로 가는 거라 지각할 일이 없다. 가는 길에 짧게 문장을 하나 외운다. 이를테면 ’Vous voulais choisir? 고르시겠어요?‘ ’Est-ce que vous voulais commander? 주문하시겠어요?‘ ’Qu’est-ce qui vous ferait plaisir? 무엇을 원하세요?‘ ’Qu’est-ce que je vous apporte? 뭘 갖다드릴까요?‘ 하루에 하나씩 실전에서 써먹는다. 주문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간혹 손님이 뭔가를 물어보면 ’attendez s’il vous plaît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라고 말하고 도움을 구한다. 어서 한 사람 노릇을 하고 싶다. 

15:00 - 도서관에서 공부하기

몸에서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가방에서 점심으로 싸준 치킨 냄새가 올라온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도서관에 자리를 잡는다. 마치 범인이 아니라는 듯. 오늘은 파리우쟁을 쓰고 있지만 보통은 공부를 한다. 매일 해도 모르는 단어 투성이다. 뇌가 굳었어...

18:00 - 클로에 돌보기

어느 날 남자친구가 물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야?” 나는 클로에라고 답했다. (설마 자기라고 대답하길 바란 건 아니겠지?) 주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6살 클로에와 노는 게 재밌어졌다. 처음엔 억지로 웃었었는데, 이젠 깔깔 거리며 활짝 웃고 있는 나를 본다. 이제 어느 정도 대화가 되니까 더 귀엽다. 같이 저녁을 먹고, 샤워시키고, 윗몸일으키기 몇 번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앞니 두 개 빠짐. 귀요웡…. 클로에야 그만 귀여워라…
앞니 두 개 빠짐. 귀요웡…. 클로에야 그만 귀여워라…

21:00 - 듀오링고 하다 잠들기

프랑스어는 동사 변형이 워낙 다양해서 듀오링고가 큰 도움이 된다. 작년부터 꾸준히 해오는 중이다. 아침 등굣길에서도 하고, 잠 자기 전에도 하지만 보통 1등은 못 한다. 어디서나 1등은 힘든 일이다. 

곧 300일 달성 예정!
곧 300일 달성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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