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편지

2026.06.24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종종 보는 당신과 오랜 시간 보지 못한 당신도 모두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또한 어떤 날엔  지내고 있고요. 대다수의 날엔 그저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 저에 대한 조금은 충격적인 감상을 들었습니다. 제가 액셀이 고장  급발진이 기본값인  안에서 브레이크를 끝까지 누르고 있는 사람 같다고요. 겉으론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힘을 다해 움직이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말을 듣고선 처음엔 반발심이 들었지만 어쩐지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어쩌면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다고요.

 

저는 스스로를  믿지 못합니다. 제가 내린 선택도, 선택하는  자신도요. 지금은 어느 방향으로든 걸어가고는 있지만 이쪽이 맞는지, 내가 과연  길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자주 의심합니다.

 

아마 그래서일까요. 저는 오래전부터 손대는 것마다 망칠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어야 하는 일들 앞에서 자꾸 주저하게 되고, 결국은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뒤로 물러나는 쪽을 택해왔던  같습니다.

 

이런 식의 생각들에 오래 잠겨있던 요즘이었는데요. 얼마  업무  방문한 남원의  복숭아 밭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름의 복숭아나무는  수확할 열매에  에너지를 집중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윤이 나던 이파리는 쪼글쪼글해지고 새로  가지도  시기에는 거의 자라지 않는다고요. 겉으로 보면 금방이라도 말라버릴  같고, 성장을 멈춘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나무는 지금 자신이 마땅히 해야  일에  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안에서  이상 자라지 않는 가지를 보며 스스로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시간이 무언가를 망치고 있는 시간이 아니라,  중요한 곳에 힘을 모으고 있는 시간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당분간의 시간과 힘을 오롯이 열매를 위해 할애하는 여름의 복숭아나무처럼요.

 

지금의 제가 어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이번 여름만큼은 그렇게 믿어보고 싶네요. 어쩌면 이것마저 도망일까요?

 

2026 6 24

현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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