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은으로부터 8호

Dolce Far Niente, 달콤한 게으름 (3)

2024.05.23 | 조회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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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은

막간.예은으로부터

비행하며 세상을 마음껏 음미하고 있습니다. 사라지는 영감을 글로 기록하고 내용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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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은으로부터 8호

달콤한 게으름의 마지막 이야기를 보냅니다.

 

 

2024-05-23

 

 

우리는 그걸 Dolce Far niente 라고 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 달콤한 게으름.

우리 이탈리아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이죠. 

 

영화 Eat, Pray, Love 지오반니의 대사.

 

 

 

1.

오후 2 13포르토 피노의 광장에서 글을 쓴다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어제 와인을 몇잔 마시고 일찍 잠든 탓 인지 새벽에 일찍 눈이 떠졌다하루 종일 비가 온다던데어두운 방에서 실눈을 뜨고휴대폰 화면을 켠다검색창에 일기 예보를 입력한다. ‘종일 강우가 예상 됩니다.’.  . 요트를 타볼까 했는데. 예보가 맞지 않던 때를 떠올리며 희망을 품어 본다그렇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두시간을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다여행 첫 날 사둔 납작 복숭아를 먹고커피를 내려 마시고, SNS 스토리에 어제의 여정을 적어 내려가며지금 이 글의 초고를 써 내려가며 아침을 맞았다. 

비 오는 이름 아침, 포르토피노의 한적한 골목.
비 오는 이름 아침, 포르토피노의 한적한 골목.

아침 7시쯤 되었을까. 창문을 열어 몸을 내밀어 숙소에서 보이는 포르토 피노의 광장을 내려다 봤다. 어제는 오전부터 오후 내내 사람이 많이도 오갔는데. 붐비던 광장은 이제 비어있다. 둥그런 돌길 사이에 모여있는 것은 빗물 뿐이다. 오전 10, 우산이 없어 비치 타올을 머리에 두른 밖을 나섰다. 정처 없이 한참을 걷다가 열려 있는 식당 곳으로 들어갔다.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비에 젖은 나의 행색을 보고도 나를 다정히도 맞이해준다. 오믈렛과 카푸치노를 시키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는다. 가끔 돌길 위로 커다란 식재료 박스를 쌓고 트롤리를 끄는 어느 식당의 직원들만 오가는 광장을 한번씩 쳐다보기도 한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은 4가지. 읽기, 글쓰기, 멍때리기, 걷기. 어느 하나 오늘은 이것을 반드시 해야 ! 하며 계획하지 않는다. 때때로 두둥실 떠오르는 행동을 하나씩 뿐이다. 글을 쓰고, 질리면 멍을 때리고, 심심해지면 음악을 듣고, 듣다보면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어지면 일어나 마을을 걷는다. 

 

 

2.

오후 2시 30분의 포르토피노 광장
오후 2시 30분의 포르토피노 광장

또다시 조금 늦은 점심 오후 2시 30분쯤. 포르토 피노 광장의 어느 노천 카페에 앉아 있다. 빗소리, 재즈 음악,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섞여 귀를 타고 들려온다. 또 글을 쓴다. 혼자 밥을 먹으면서. 유튜브, 책도 없이 오직 따뜻한 카푸치노와 올리브오일, 빵 다섯 덩어리면 나의 밥 친구로서 충분하다. 비가 내려 몸을 감싸는 촉촉한 기운과 서늘함은 이미 뜨거운 커피와 사람들의 온기로 상쇄된다. 

오늘 아침 비가 내려 마을 역시 조용할까 싶었던 예상과 달리 광장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여정을 사랑하는 이들의 웃음이 눈 앞에 넘실 거린다. 우비를 입고, 우산을 들고, 어떤 이들은 우산 조차 쓰지 않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거리를 즐긴다.

내일은 비가 많이 온대. 요트 투어를 신청할까 싶었는데. 온종일 방에 있게 생겼어.”

어젯밤 토론토에서 친구들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종일 숙소에 있을 같다던 그녀들 역시 말과 달리 비가 들이치는 해변가의 노천 식당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산책하다 만난 그녀들의 얼굴에 반가워 인사하니, 그녀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내게 웃으며 장난을 온다

오니까 오히려 나가고 싶더라고. 이놈에 날씨 어디까지 가보나 보자. 무슨 말인지 알지?”

그래. 중요한 것은 날씨의 좋고 나쁨이 아니다. 오늘의 날씨, 온종일 내리는 비마저, 나의 여행을 채우는 아름다운 소리, 낭만으로 바라보는 태도. 마음과 시선이 있다면 나는 언제든, 어디서든 나의 여정을 사랑할 있겠지. 

 

 

3. 

비 오는 날, 포르토 피노 해안도로의 어느 절벽
비 오는 날, 포르토 피노 해안도로의 어느 절벽

 포르토 피노에서 버스를 타고 Pagigi 해변에서 내렸다. 어제 버스를 타고 오면서 봤던 해안도로를 내렸던 버스정류장에서 포르토피노까지 걸어서 돌아 요량이었다.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코린의 음악을 들으며 걷다 어느 길목에선가 파도가 절벽의 바위를 훑는 소리가 이어폰 너머로 들려온다. - 하고 감겼다 스르륵 모습을 감추는 소리. 멍하게 파도를 바라본다. 꼽아둔 이어폰을 빼고 음악 없이 걷기로 한다. 아니, 우산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와 파도 소리를 산책의 배경 음악으로 삼아 보기로 한다. 나는 우중산책을 사랑한다. 어디서든 내리는 날이면 나를 둘러싼 세상의 내음새나 색을 마른 날보다 풍미 깊게 즐길 있어서다. 예를 들어, 동네 공원의 숲에서 우산을 들고 거닐 때면 머리 위에 드리운 나무는  초록의 색이 화창한 어느 날의 보다 진하게 느껴진다. 특히, 이런 초여름 날씨에 내리는 비는 어린 냄새를 풍부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초록색의 수채화처럼, 빗물이 베인 자연의 힘은 맑은 날만큼 강하며 때로는 진하다. Pagigi에서 포르토 피노로 돌아가는 30분의 산책. 나는 우산을 건너편의 해안에서 우산 없이 걷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모처럼 자유롭고 한가한 여유를 만끽해 본다. 휴대폰을 틀고 느끼는 날것의 감정을 고스란히 기록한다. 

 

무위의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나를 둘러싼 세상의 작은 요소 하나하나 호흡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기. 우산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물기 먹금은 밟는 소리, 파도 소리, 살랑 부는 바람 소리. 나의 호흡 소리. 규칙적인 리듬처럼 오고가는 들숨과 날숨의 작은 소리. 나는 영화 Eat, Pray, Love의 대사를 떠올렸다. Dolce Far Niente, 달콤한 게으름. 이 말을 이번 이탈리아휴일의 제목으로 짓기로 한다

 

 

4.

 보름이 지난 지금, 나는 편지를 띄우기 글을 갈무리 하는 중이다. 나의 스물아홉, 이십대로서 가졌던 마지막 봄의 휴일. 수많은 여행 이번 휴식이 이리도 쉬게 했을까. 써놓은 글을 다시 읽어보며 이유를 돌아본다. 

 

 오롯이 혼자서 떠오르는 생각대로 글을 쓰기도, 산책을 하기도, 지나치던 식당에 발을 들이기도 했던 순간들. ‘내일은 맛집을 가야해. 저녁엔 여기서 사진을 찍어야해.’ 아닌 무엇인가 했다가, 했다가를 반복하던 안의 소리들. 의식에 집중하며 내딛던 걸음은 걸음마다 새로운 세상이 되어 내게 다가왔다. 하고 싶은 것이 없으면 없는 대로, 따분하면 따분한 대로. 그런 나를 그대로 안아 침대에 몸을 뉘어 이불을 덮어줬다. 자신과의 침묵, 공백.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나면 하고 싶은 것들은 하나 머리 속에 떠오르곤 했다. 구태여 해야할 것들을 애써 찾아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순순히 지금의 선택을 믿고 따라 여행해 본다. 의식대로 멈추고. 이어서 다시 해보고. 다시 멈추고, 다시 이어보고. 중요한 것은 억지로 계속 해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호흡을 쉬어갈 확실히 쉬어주는 , 이어갈 리듬의 속도를 올려 박차를 가해보는 것이 이토록 멋진 일이라니.

 

 마지막으로 나는 이제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왔다. 하지만, 달콤한 게으름은 현재 진행중이다. 비행기의 309명의 승객 틈에서, 13시간 비행을 마쳐 혼자 있는 호텔에서, 때로는 날이 흐린 한국의 어느 길목에서. 낭만 있는 유럽의 풍경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유지하려 한다.  세상이 말하는 의미 있고 가치있는 것들을 지금의 내가 하지 않는다고 나를 의심하지 않기로 해본다. 나의 하루를 채우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을 하나하나 있는 그대로 감정의 중심축으로 만들어 보기. 감정의 모습과 형태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기로. 그럼 모두들, Dolce Far Niente! 

 

 

 

 

Question . 구독자 의 하루를 채워준 아주 작고 사소한 것 중 오늘의 중심축은?

 

Answer . 혼자 생각해보기, 글로 써보기, 예은에게 보내주기 등등..

 

 

 

 

 

그럼, 아홉번째 편지에서  만나요 :)

 

 

 

 

24년 05월 23일 목요일.

예은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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