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초장레터의 2026년 여섯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번 달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초장레터는 매월 마지막 날, 짤막한 환경 에세이를 보내드리고 있어요.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네요 : )
초장레터#21
물건을 살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뭘까. 가격, 디자인, 기능, 브랜드, 소재. 사람마다 순서가 다르겠지만 나는 단연 소재를 제일 먼저 본다. 이렇게 말하면 꽤 있어 보이는데, 사실 처음부터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미세플라스틱 얘기가 나올 때마다 괜히 신경이 쓰여서 플라스틱을 덜 쓰는 쪽으로 소비하려고 했던, 딱 그 정도의 소비자였다. 지구를 위해서 텀블러 정도는 챙기는, 흔한 부류.
근데 암 진단을 받고 나니 그 신경씀이 완전히 다른 층위로 넘어갔다. 갑자기 지구보단 내 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환경보다도 순전히 나 때문에 소재를 본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물건에 조금이라도 대체할 천연소재 옵션이 있으면 무조건 그쪽을 택한다. 조금 웃기게도, 이렇게 이기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했더니 결과적으로 더 친환경적인 사람이 됐다.
이 아이러니를 이해하려고 소재를 더 꼼꼼히 보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내 몸에 덜 해로운 소재와 환경에 덜 해로운 소재는, 신기하게도 거의 같은 목록이다.
정직한 소재와 얍삽한 소재
플라스틱은 자연에서 분해되는 데 수백 년이 걸린다. 그러다 결국 미세플라스틱이라는 형태로 남아서 생태계와 사람 몸 모두에 스며든다¹. 합성섬유 옷은 더 노골적이다. 세탁할 때마다 미세플라스틱을 흘리는데, 이게 해양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연구도 있다². 심지어 그냥 입고만 있어도 섬유 조각이 계속 떨어져 나가 공기 중으로 퍼진다. 옷장 속에 조용히 걸려 있는 옷도 사실 매일 뭔가를 흘리고 있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소재를 두 부류로 나눠보게 됐다. 잘 분해되고 몸에 닿아도 무해한 '정직한 소재'와, 값싸고 오래가게 만들려고 온갖 첨가물을 넣은 '얍삽한 소재'. 얍삽한 소재는 버려질 때 환경을 괴롭히면서, 쓰이는 동안에는 내 피부와 폐를 괴롭힌다. 참 부지런하게 양쪽 다 괴롭힌다. 한쪽만 착한 소재는 없다. 몸에 나쁜 건 결국 자연에도 나쁘다.
이름은 어려워도 특징은 단순하다
프탈레이트, PVC, 폼알데하이드, 비스페놀A. 이름만 들으면 화학 교과서 같지만 알고 보면 별거 없다. 이름이 어려운 건 대체로 걔네가 자기 정체를 숨기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다.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는 딱딱한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려고 넣는 첨가물이다. 장기간 노출되면 생식계와 뇌신경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특히 아이들의 뇌 발달을 저해하거나 주의력 관련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³. 장난감, 인조가죽 가방, 저가 옷의 프린트나 지퍼 안에 자주 숨어 있다. 말랑말랑하고 촉감이 좋을수록 오히려 의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PVC는 저렴하고 다루기 쉬워서 우비나 샤워커튼, 저가 신발에 많이 쓰이는데, 앞서 말한 프탈레이트를 잔뜩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태울 때는 다이옥신 같은 독성물질까지 내놓는다. 폼알데하이드는 원단 마감 처리에 쓰이는 화학물질로, 피부 알레르기나 호흡기 자극의 흔한 원인이다. 비스페놀A는 플라스틱 용기나 캔 내부 코팅에 들어가는 물질인데, 호르몬을 흉내 내면서 우리 몸의 호르몬 체계를 교란시킨다.
이 네 가지의 공통점은 하나다. 싸고, 가공이 쉽고, 오래간다. 그 편리함의 대가를 몸과 자연이 나눠서 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 소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뭘 사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 카테고리 | 안전한 쪽 | 피할 쪽 |
|---|---|---|
| 의류 | 유기농 면, 리넨, 텐셀 | 폴리에스터·나일론 등 합성섬유 위주 제품 |
| 아이 용품·장난감 | 원목, 식품용 실리콘, 유기농 코튼 | PVC, 저가 플라스틱 완구 |
| 주방·식품 용기 | 유리, 스테인리스, 도자기 | BPA 함유 플라스틱, 저가 코팅 팬 |
| 화장품 | 파라벤·프탈레이트 미함유 표기 제품 | 성분 미표기 초저가 화장품 |
유기농 면이나 텐셀은 피부 자극이 적어서 민감성 피부에 특히 좋고, 만드는 과정에서 쓰이는 화학물질도 적다⁴. 옷 한 장을 만드는 데도 상당한 양의 물이 들어간다는 걸 알고 나면, 많이 사는 것보다 오래 입는 게 결국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². OEKO-TEX Standard 100이나 GOTS 인증, 국내 환경표지 인증을 확인하는 것도 꽤 믿을 만한 힌트가 된다⁵. 인증 마크는 말하자면 소재의 신분증 같은 거다. 신분증 없는 사람을 함부로 안 믿듯이, 표기 없는 제품도 그렇게 대하면 된다.
저렴함이라는 착시
여기까지 쓰고 나니 결국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이거다. 테무나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물건을 싸게 사는 게 왜 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숫자로 답하고 싶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한 해 동안 알리·테무 등에서 팔린 제품 3,876개를 조사했더니 563개, 약 14.5%가 국내 안전기준에 미달했다⁶. 테무에서 판 방향제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원인 물질로 알려진 CMIT·MIT가 검출됐고⁶, 다른 조사에서는 투명 수영 튜브에서 기준치를 295배 초과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나왔다⁷. 아동복 조사에서도 점프슈트 한 벌에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기준치의 약 294배 초과 검출된 사례가 있었고⁸, 반지 하나에서는 1급 발암물질인 카드뮴이 국내 기준치보다 900배 넘게 검출된 적도 있다⁹. 화장품에서도 크롬, 납 같은 중금속이 기준치를 최대 65배 넘긴 사례가 확인됐다⁷.
294배, 295배, 900배. 숫자가 이 정도로 반복되면 이건 재수가 없어서 걸린 불량품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고 봐야 한다. 그 물건을 고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그 정도 위험을 감수하게 만든 시스템의 문제다. 싸게 산 물건은 결국 내 피부에 닿고, 내 아이의 손에 들어가고, 다 쓰고 나면 분해도 되지 않은 채로 어딘가에 남는다. 장바구니에 담을 때 느꼈던 3초의 만족감과, 그 물건이 내 몸과 지구에 남기는 시간은 비교가 안 될 만큼 차이가 크다.

그런데 이 모든 숫자를 걷어내고 나면, 결국 남는 질문은 하나다. 나는 무엇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소재를 고르는 일은 사실 그렇게 거창한 결심이 아니다. 살 물건을 하루 뒤로 미루고 성분표 한 번 들여다보는 정도의 일이다. 그런데 그 작은 지연이, 내 몸에 쌓일 것과 지구에 남을 것을 동시에 줄인다. 오래 두고 쓸 것을 고르는 마음과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결국 같은 곳에서 출발한다.
참고 자료
-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우리가 매일 쓰는 플라스틱, 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2025
- 다시입다연구소, 「나와 지구에 안전한 의류 소재는?」 뉴스레터
-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체 환경호르몬이 뭐길래」, 건강보험공단 매거진
- green-song, 「친환경 소재의 옷을 고르는 법」, 2025
- KCCI, 「지속 가능한 소비: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는 방법」, 2024
- 경향신문, 「알리·테무·쿠팡 등 해외직구 563개 제품서 유해 물질 검출」, 2026.01.29
- 한겨레, 「알리·테무에서 판 화장품·어린이용품서 유해 물질 최대 295배 검출」, 2024.06.14
- 동아일보, 「테무·알리서 산 아이 옷에서 유해물질 최대 622배 초과 검출」(서울시 조사, 점프슈트 프탈레이트 약 294배 초과), 2024.11.22
- 서울와이어, 「알리·테무‧쉬인 판매 장신구, 발암물질 기준치 최대 900배 초과 검출」, 202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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