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초장레터의 2026년 일곱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번 달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초장레터는 매월 마지막 날, 짤막한 환경 에세이를 보내드리고 있어요.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네요 : )
초장레터#22
옷이 버려지는 이야기는 이제 꽤 익숙하다. 헌옷수거함에 쌓이는 옷, 해외로 보내졌다가 바닷가에 산처럼 쌓이는 옷. 그런데 옷과 천이 만들어지는 동안에도 무언가가 버려진다는 사실은 잘 이야기되지 않는다. 재단하고 남은 자투리, 짜다가 흠이 생긴 원단, 다 쓰지 못한 실. 이번 달 초장레터는 그 보이지 않는 쓰레기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다시 살려내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쓰레기
국내에서 버려지는 의류는 2022년 기준 약 11만 톤이다. 2018년 6만 톤 남짓이던 양이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런데 이 숫자에는 공장에서 옷을 만들며 버리는 자투리가 빠져 있다. 섬유 폐기물은 일반 폐기물과 함께 처리되는 탓에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2020년 기준으로 폐원단까지 더하면 한 해 37만 톤에 이른다는 집계도 있으니, 우리가 아는 숫자는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게다가 버려지는 섬유의 상당수는 폴리에스터나 나일론 같은 합성섬유다. 석유에서 온 이 섬유들은 땅에 묻으면 미세플라스틱으로 쪼개지고, 태우면 유해물질을 내뿜는다. 여러 소재가 섞인 경우가 많아 다시 섬유로 되돌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미 만들어진 천이라면, 버리지 않고 끝까지 쓰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이 된다.
이번 달, 이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눈앞에 꺼내 보여준 물건을 만났다. 한 공장에서 버려질 뻔한 색동 조각으로 만든 패브릭 제품들이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니, 색동이라는 색 자체가 원래 이런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각에서 태어난 색
색동은 '색을 동 달았다'는 뜻이다. '동'은 한 칸을 말한다. 여러 색의 천을 한 칸씩 이어 붙인 것이 색동이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옷감이 귀하던 시절, 옷을 짓고 남은 조각을 모아 이어 붙인 데서 시작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버리기 아까운 자투리를 모아 아이 소매에 달아주고, 그 알록달록함에 무병장수와 행복을 비는 마음을 얹었다.
그러니까 색동은 처음부터 '버려질 것을 살려낸 색'이었다. 자투리가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지금과는 정반대로, 조각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던 시절의 색이다.

공장의 색이 되었다가, 사라져가는 색
시간이 흐르면서 색동은 조각을 잇는 것에서 공장에서 짜는 것이 되었다. 충남 공주의 유구읍은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며 북쪽의 직조업자들이 내려와 베틀을 놓으면서 섬유 마을이 되었다. 1960년대 이곳에 문을 연 한 공장에서 색색의 실을 먼저 물들인 뒤 짜는 나일론 선염 색동을 만들어냈다. 비단보다 값이 싸 혼수이불과 아이들 저고리로 널리 팔렸고, 색동을 짜는 공장들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침대가 들어오면서 혼수이불 수요가 줄었고, 2000년대에는 흰 천에 무늬를 인쇄하는 프린트 색동이 실로 짜는 색동을 밀어냈다. 유구 전체도 1990년대 중반부터 값싼 중국산 직물에 밀리고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쇠퇴했다. 한때 수백 개였던 공장은 50여 곳만 남았고, 실을 물들여 색동을 짜는 공장은 이제 단 한 곳뿐이다.
공장이 문을 닫으면 건물만 남는 게 아니다. 기계가 해체되고, 그 기계를 다룰 줄 알던 손기술도 흩어진다. 유구에서는 지금 문 닫은 직물 공장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 중이고, 국토교통부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되어 2029년까지 250억 원을 들여 직조산업을 되살리는 사업도 시작되었다. 한 번 멈춘 것을 되살리는 데는 이만큼 큰돈과 긴 시간이 든다.
하나 남은 공장에서 나오는 조각들
마지막 색동 공장에서는 지금도 오래된 기계를 사람이 곁에서 수동으로 돌린다. 색동에 쓰는 노방 원사는 워낙 가늘어서, 기계가 돌아가는 도중에 자주 끊어진다. 그러면 사람이 끊어진 실을 찾아 손으로 다시 이어 붙인다. 그 자리에는 미세한 스크래치가 남는다. 흠이 생긴 원단은 상품성이 떨어져 제값에 팔리지 못하고, 조각으로 쌓인다.
원단만이 아니다. 이 공장에서는 매일 '실콘'도 버려진다. 실콘은 원뿔 모양 심지에 감긴 실 뭉치인데, 제직이 끝난 뒤에도 실이 꽤 남아 있다. 하지만 꼬임이 없고 장력이 약해 결국 폐기된다.
이 조각과 실에는 이미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실을 색깔별로 물들인 물과 염료, 세로실을 정렬하는 데만 걸리는 일주일, 끊어질 때마다 실을 이어온 사람의 손. 그리고 이 공장의 색동은 주로 폴리에스터와 나일론으로 짠다. 그대로 버려지면, 앞에서 말한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합성섬유 쓰레기가 된다.
조각에 새 쓰임을
그래서 이 조각들에 새 쓰임을 찾아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공장은 매일 버려지던 실콘을 인스타그램으로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남은 실의 쓰임을 찾아 폐기량을 줄이려는 첫걸음이었다.
팔리지 못해 쌓여 있던 흠 있는 조각들로 패브릭 제품을 만든 사람들도 있다. 끊어진 실을 이은 자국이 남은 색동 조각들을 모아, 일상에서 쓰는 물건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시장에서는 그 자국을 흠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누군가 끊어진 실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이었다는 흔적이기도 하다.
남은 조각을 이어 붙인 데서 시작된 색동이, 공장의 천이 되었다가, 다시 버려질 뻔한 조각에서 새 물건으로 돌아왔다.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온 셈이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할 때
처음에 이야기했듯, 만드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섬유는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얼마나 버려지는지 모르니 줄이자는 이야기도 잘 나오지 않는다. 색동 조각도 마찬가지였다. 공장 한쪽에 쌓여 있던 동안에는 누구의 문제도 아니었다. 누군가 그 조각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그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아직 쓰임을 찾지 못한 천이 되었다.
버려지는 것을 되살리는 일은 그렇게 시작된다. 대단한 기술보다 먼저, 그것이 거기 있다는 걸 알아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눈은 만드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물건 뒤편의 이야기를 궁금해할수록, 보이지 않던 조각들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끝)
📍 〈색동 FROM LIFESTOCK〉 | 2026.9.29 ー 2026.11.29 | 디앤디파트먼트 서울 (서교동)
이 조각 색동으로 만든 패브릭 제품들과 유구의 공장을 찾아간 영상은 지금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어요. 디앤디파트먼트는 오랫동안 쓰이고 꾸준히 만들어져 온 물건을 좋은 디자인으로 보는 '롱 라이프 디자인'을 소개하는 곳으로, 올해 7월 서교동 로컬스티치 서교타운 1층에 다시 문을 열었어요.
🌈색동공장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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