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와 망원 일대에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볼일이 있어 간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책방 하나씩 들르는 것이 요즘 작은 루틴이 되었다. 책방의 메카라 불리는 동네답게 선택지가 많아 매번 다른 곳을 찾아갈 수 있다.
오늘은 망원동에 있는 '로우 북스'에 들렀다. 들어서니 일반 서점과는 확연히 다른 배치가 눈에 띄었다. 소설, 에세이 같은 장르별 분류가 아니라 비슷한 목적이나 주제의 책들을 함께 묶어둔 것이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작업과 관련된 책들이 한 코너에 모여 있어 관심 있게 살펴봤다.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 『퇴사합니다 독립하려고요』 같은 책들을 보니 내용이 좋아 함께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간신히 참았다. 집에 와서는 엄청 후회했고, 결국 인터넷으로 주문해버렸다.
둘러보고 있는데 점장님이 다가와 추천해드릴 책이나 원하는 내용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이런 상황이면 항상 조금 움츠러들게 된다. 잠시 고민했지만, 혼자 조용히 책들을 천천히 둘러보고 싶어 "괜찮습니다, 천천히 볼게요"라고 답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추천이 너무 좋아서 계획에도 없던 책을 여러 권 사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살짝 아쉬웠지만, 오늘은 누군가와 대화하기보다 혼자만의 시간으로 두고 싶었다.
그러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를 발견했다. 에리히 프롬이라는 이름은 익숙했다. 고등학교 때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 두 권을 읽었는데, 모두 너무 좋아하는 책이었다. 특히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에 집착하여 선호하는 경향"이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지금도 책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버리기 힘들다. 이 책은 처음 보는 제목이었지만 그래서 더 펼쳐보게 되었다.
책을 펴자마자 보인 페이지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피곤한 사람, 절망에 빠진 사람, 염세주의자는 자유에 도달할 수 없다. 피곤할수록, 절망에 젖어 있을수록, 염세적일수록 얻을 수 있는 자유는 줄어든다. '열정적인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내가 요즘 피곤한 사람, 염세주의자인 것 같은데 자유가 줄어든다는 문장에 바로 공감하게 되었다. 앞서 다른 책들은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는데, 이 문장 앞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책을 사와서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했다. 원래는 2호선에서 9호선으로 갈아타야 빨리 집에 갈 수 있는데, 오늘은 2호선을 계속 타면서 책을 더 오래 집중해서 읽고 싶었다. 책에서는 무기력이 단순한 나태함이 아니라, 내가 외부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느라 '진짜 나'를 잃어버린 결과라고 했다. 현대인은 타인의 기대에 따라 정체성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점점 멀어지며 무기력해진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무기력함이 어디서 오는지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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