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은 못 고쳐도 가습기는 켤 수 있지
1년 365일 휴지를 코에서 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비염을 가진 나다. 양쪽 콧구멍으로 숨을 쉰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심해질 때면 눈까지 가렵다. 눈이 가려워지면 병원에 가야한다는 신호이다.
한 시간을 기다린 치료는 1분이면 끝이 난다. 의사는 내 콧구멍을 몇 번 들여다본 후, 환절기라 비염으로 많이 온다며 마스크를 쓰고 실내에선 가습기를 틀라고 한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 올해 독특한 처방이 하나 추가되었다. 결혼을 하면 비염이 낫는단다. 부모님조차 이제는 하지 않는 결혼 이야기를 병원에서 듣게 될 줄이야! 이 기가 막힌 처방을 혼자 알고 있기엔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코를 킁킁거리는 친구를 만날 때면 종종 그 이야기를 공유했다. 놀랍게도 우리는 거의 결혼을 하지 않았고 하나같이 비염을 달고 살고 있었다. 다들 말도 안 된다며 웃어넘길 때, 한 사람이 진지하게 말했다.
“소중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는 딸을 위해 방에 가습기를 튼다고 했다. 내게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나는 늘 스스로를 챙기는 데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정시 퇴근을 하려고 애썼고, 나의 1인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무너지면 내 생활이 다 무너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내 몸은 대충 버티게 내버려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날 나는 처박아놨던 가습기를 꺼냈다. 코가 막히는 밤이면 나 자신을 위해 기꺼이 작동할 수 있도록.
-박현경
📖감상 한마디
비염이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내면서, 병원에서 받은 독특한 처방을 자기 돌봄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습기를 트는 사소한 행동이 자신을 돌보기 위한 첫걸음으로 느껴졌고, 삶의 균형을 잡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그 과정이 담담하고 잔잔하게 그려져 있어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나를 소중히 여기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봐야겠습니다. 가습기를 트는 것처럼 저를 위한 작은 행동 하나를 찾고 싶어졌습니다.
-안나
일단 제목이 아주 마음에 드는 글이었습니다. 저도 비염을 달고 사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라 특히나 더 공감이 가기도 했습니다. 결혼과 1인 가정 사이에서 자신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현실적으로 잘 풀어낸 것 같습니다. 이 글을 통해 결국 자신을 돌보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오광락
상황의 전개와 심리 변화에 대한 문장을 적절하게 배치해서 글의 흐름을 잘 연결시킨 글인 것 같습니다. 이런 짜임새 있는 구성 덕분에, 빠르게 흐르는 물길을 따라가다 나도 모르는 새 종착지에 다다른 것처럼, 마지막 문장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염 이야기에서 자기 돌봄으로 내용이 자연스럽게 전환되면서 결론에 이르게 한 점도 매우 신선했습니다.
-조비온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경험을 가볍고 유쾌하게 표현했지만 그 뒤에 밀려오는 가볍지만은 않은 울림이 있는 글이었습니다. 글의 전개방식이 기-승-전-결로 잘 연결되고 흘러가고 있어서 몰입하며 재미있게 읽혔던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상황과 감정에 대한 기발하면서도 적절한 표현 역시 이 글의 매력으로 작용했습니다. ‘소중한’이라는 단어의 의미, 그리고 내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챙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S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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