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템을 이고 지고 출근합니다
오늘도 나의 가방은 무거웠다. 가방을 열고 살펴봤지만 두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현관 앞에 서서 양산을 펼쳤다. 양산 살에 선풍기를 달고, 팔꿈치 안쪽에는 손수건을 끼웠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원망하며 출근길에 올랐다.
평소라면 지하철역까지 바쁘게 걷는 편이지만 이렇게 더운 날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몸에 열을 올리지 않기 위해 천천히 걸어도, 정수리와 이마에선 땀이 조금씩 흘렀다. 양산 아래에 꽂아둔 선풍기가 아니었다면 이미 땀범벅이 되었을 것이다. 지하철역에 들어서며 시원함을 느낀 것도 잠시, 출근 인파에 갑갑함과 열기가 느껴졌다. 나는 손목에 있던 머리끈으로 덜 마른 머리를 대충 묶었다. 양산에 꽂았던 선풍기를 손에 들고 바람 세기를 올렸다. 그럼에도 티셔츠가 젖는 것 같아 손수건으로 목 뒤의 땀을 훔쳤다.
지하철역에서 나오면 또 하나의 고비를 마주하게 된다. 회사까지 가는 길은 모두 오르막.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오르막을 천천히 걸으며, 차가운 커피로 더운 속을 식혔다. 양산을 펴기에 좁은 길이라 부채를 꺼내 들었다. 햇빛이 나면 얼굴을 가리고, 그늘에서는 부채질을 했다. 그래도 땀은 계속 흘렀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데오도란트 티슈로 온몸에 난 땀을 닦았다.
며칠째 더위를 대비하기 위해 들고 다닌 물건 중 안 쓴 건 하나도 없었다. 가방을 가볍게 들고 다니는 건 이번 여름에도 실패인 듯하다. 물건을 줄이는 대신 수납력이 좋고 들고 다니기 편한 가방을 찾아야겠다. 여름은 아직 한참 남았고, 나는 더위를 많이 타니까.
-박현경
📖감상 한마디
요즘 한창인 무더위 속에서 느끼는 감각에 대한 표현들이 많아 글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특히 덜 마른 머리를 묶는다거나 목 뒤에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는 것처럼 저도 자주 하는 행동들에 공감되는 바람에 회사로 가는 여정을 함께 하며 철저하게 준비한 소지품들을 저도 하나씩 꺼내 쓴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선지 미니멀리스트인 저조차도 가방이 무거운 이유를 납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위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야말로 출근 대서사시였습니다.
-안나
무더운 여름에 직장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의 고충이 잘 담겨있어 제 경험이 저절로 떠오르기도 했고, 길 수도 찗을 수도 있는 출근길의 일거수일투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존템이 많아지는 이유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굉장히 고될 수 있는 상황들과 번거로운 일상을 불편함이라는 말 없이 능숙하게 반응하는 모습에 내공이 느껴져 감탄했습니다.
-오광락
글을 읽는 내내 현관문에서 지하철, 가파른 오르막길을 지나 사무실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동선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무더위의 열기와 갑갑함을 온몸으로 실감했습니다. 특히 동선 사이사이에 양산, 휴대용 선풍기, 손수건, 머리 끈, 아이스 아메리카노, 부채, 데오도란트 티슈와 같은 생존 아이템들을 구체적이고 촘촘하게 배치하고 설명함으로써, 왜 이 물건들이 가방 속에 꼭 있어야만 했는가를 잘 보여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덜어내기보다 기꺼이 가방의 무게를 감당하며 여름을 견뎌나가는 방식에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조비온
소소한 일상의 얘기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세세한 묘사를 통해 표현해서 마치 내 모습을 보는 듯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가방과 기후, 자신의 상황을 연결시킨 발상도 기발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계절이 바뀌면서 생존템도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엔 전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양산이 몇 년 전부터 제 생존템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여러분의 생존템도 댓글로 공유해주세요~
-S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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