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불청객과의 대면
여름 한정 인간 기피자는 여름이 오면 옷은 물론이고 피부마저 벗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열기와 습기가 살갗에 달라붙는 느낌을 견디지 못했다. 당연히 타인과의 접촉도 꺼렸다. 덥고 습한 상태에서 옷을 갖춰 입어야 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매너 자체가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에어컨 바람 덕분에 사람을 마주할 기운을 얻을 수 있었다.
올여름에도 에어컨이 제 기능을 발휘하길 인간 기피자는 기대했다. 그러나 전원을 켠 순간, 눅눅한 기운을 타고 쿰쿰한 냄새가 퍼졌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에어컨 곰팡이는 예기치 못한 변수였다. 수소문해 찾은 에어컨 청소 기사님은 2주 뒤에나 방문할 수 있단다. 이미 실내 온도는 28도였고, 2주 뒤면 기온이 더 올라가 있을 터였다. 한증막 같은 집 안에서 타인을 맞이할 자신이 없었다. 에어컨을 분해하고, 고압수로 씻어내고, 말리고, 다시 조립하는 기사님의 작업을 계속 지켜보다가, 에어컨 관리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것까지 듣고....... 이 과정을 옷을 갖춰 입은 채 견딜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중간중간 스몰토크도 필요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최소한이라도 체면을 차린 채 이 상황을 넘길 수 있을지 시뮬레이션만 수십 번을 했지만 기사님 방문일이 다가올수록 불안이 극으로 치닫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눈빛이 탁해진 인간 기피자에게 사시사철 채소 기피자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냐고. 인간 기피자가 시무룩하게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채소 기피자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내가 하면 되는데 뭘 그런 걸 걱정하고 있어. 스몰토크가 뭐야, 댄스 배틀도 할 수 있어.”
채소 기피자에겐 미나리 한줄기를 먹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약속의 날. 인간 기피자는 근처 카페로 피신해 있었고 채소 기피자가 기사님을 맞이했다. 몇 시간 뒤 선선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두 기피자의 가정은 평온을 되찾았다. 채소 기피자는 에어컨 청소 과정과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인간 기피자에게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었다. 인간 기피자는 평소라면 말 안 해도 알겠다며 일축할 그 말들을 다 듣고 있었다. 채소 기피자의 아무렇지 않은 모습에 감탄하면서.
📖감상 한마디
반어적인 표현으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약간은 과장된 묘사, 그리고 사이사이 유머러스한 부분들이 적당히 분포되어 있어서 훅 읽혔습니다. 서로 결핍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두 기피자의 모습에 많은 공감이 됐고, 그러면서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배려가 마음을 울렸습니다. 내가 두 기피자 중 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대응할지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오광락
여름 한정 인간 기피자의 고충이 잘 느껴졌고, 특히, 에어컨 청소 기사님을 맞기 전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부분은 많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채소 기피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장면에선 작은 애정도 느껴졌습니다. 더운 날 일어난 작은 사건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엿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박현경
누군가에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불청객과의 대면이 다른 누군가에겐 너무 쉽고 간단한 반가운 대면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위트 있게 표현되어 좋았습니다. 두 기피자의 다정함과 알콩달콩한 분위기는 에어컨이 주는 선선한 바람보다 읽는 이의 마음을 더욱 청량하고 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조비온
▶A4 한 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담아낸, 소설과 수필의 그 중간 지점, 한페이지 소설. 이번 글은 여름철 식사 메뉴로 고민했던 여름한정 인간기피자와 사시사철 채소기피자의 두 번째 에피소드입니다. 이 내용처럼 내게는 너무 힘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뚝딱 해내는 사람이 있죠?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는 없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이런 비슷한 경험들을 댓글로 공유해주세요~
-S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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