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식사의 조건

📱안나의 한페이지 소설

2026.07.16 | 조회 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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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식사의 조건

 

눅눅한 대기가 35도의 기온에 반나절 내내 데워진 여름 날 저녁이었다. 바깥공기는 만두 찜솥 안에 있는 기분을 간접체험 하기에 충분했다. 쾌적하지 않은 것은 집 안도 마찬가지였다. 묵직한 습도를 피해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침실로 들어온 두 사람이 마주앉았다. 여름 한정 인간 기피자와 사시사철 채소 기피자는 저녁 메뉴를 정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했다.

 

이런 문제가 있었다. 인간 기피자는 반신욕조차 못할 만큼 체질적으로 열에 약하고, 채소 기피자는 더위 저항력은 갖췄지만 요리를 못한다. 불 없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아이디어를 짜낸 인간 기피자가 말했다.

전식으로 생오이랑 셀러리를 마요네즈에 찍어 먹고, 메인은 구운 계란 사놓은 걸로 때우자. 후식은 참외. 어때?”

채소 기피자는 자신의 식성은 고려하지 않은 메뉴 선택에 조금 서운해지려고 했다. 하지만 평소 건강을 고려한 자연식으로 식탁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인간 기피자의 노고를 알고 있기에 섭섭한 마음을 접어두고 어떻게든 대안을 떠올리려 애썼다.

비빔면 먹을래? 내가 할게! 그리고 오이랑 구운 계란을 고명으로...”

인간 기피자는 채소 기피자가 가공식품으로 식사를 대신하려는 게 영 못마땅했다. 인간 기피자의 얼굴에 부정적인 감정이 옅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인간 기피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채소 기피자는 인간 기피자의 길어지는 침묵에 다급하게 말했다.

나가서 먹을래?”

두 기피자의 집 근처에는 맛집이 빽빽한 먹자골목이 있다. 퇴근 후 회식하는 사람들, 무리 지어 놀러 나온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이다. 선선한 날엔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즐기며 데이트삼아 외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인간 기피자에게는 높은 기온에 하는 외출이 도전이나 마찬가지인데,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것이었다.

 

먼저 결단을 내린 인간 기피자가 스르륵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리는 인간 기피자를 채소 기피자는 숨죽여 지켜보았다. 인간 기피자는 채소 기피자에게 체념한 얼굴로 말했다.

돼지고기 두부 된장찌개.”

 

에어컨 없는 부엌에서 보낸 시간은 장렬한 전투 같았다. 뜨겁게 식사를 마치고 시원한 침실로 들어가 넷플릭스를 켰다. 채소 기피자와 나란히 누워 요즘 인기 있는 피가 낭자한 드라마를 보았다. 잔인한 장면이 이어졌지만, 방금 전 부엌보단 덜 처절해 보였다.

 


▶ 한페이지 소설은 A4 한 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소설의 기발함과 유쾌함, 그리고 수필의 친근함과 편안함을 담아낸 글입니다.

 

 

 

 


📖감상 한마디

 

 

여름날 피하고 싶은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당장 어제나 오늘, 혹은 내일의 제 저녁 식사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더위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뜨끈한 찌개를 먹기로 선택한 인간 기피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돼지고기가 들어간 된장찌개는 어떤 맛인지 궁금합니다.               

-박현경

 

 

여름 한정 인간 기피자와 사시사철 채소 기피자의 참신하고 독특한 캐릭터가 흥미로웠습니다. 음식조차 만들기 힘든 뜨거운 여름날 저녁,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식성을 두고 벌이는 팽팽한 갈등이 결국 돼지고기 두부 된장찌개로 대동단결되며 해결되어 다행입니다. 무더위가 한창인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끈적이고 지치는 현실이 재미있고 유쾌하게 표현됐구나 싶어 감탄했습니다. 

-조비온

 

 

여름에 시원하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채소기피자에게는 힘든 식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인간기피자가 사시사철이 아니라 여름한정인 게 참 다행이다 싶었는데 결국 인간기피자가 희생하는 엔딩이라 좀 아쉬웠습니다. 두 기피자 모두가 만족할 만한 여름 식사 메뉴는 없을까요? 생각나는 메뉴가 있다면 댓글로 제안해주세요~^^

-S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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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종 의 프로필 이미지

    원종

    1
    약 20시간 전

    여름엔 오두비! 오이두부비빔밥 추천이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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